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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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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2 19:29

[권상집 칼럼] 방탄소년단(BTS), 'K-POP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

미국과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스스로 이정표가 되다

▲ 방탄소년단(BTS)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2017년 문화콘텐츠 분야의 최대 이슈는 '방탄소년단(BTS)'이다. 수많은 언론사가 방탄소년단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불고 있는 이들의 돌풍은 마침내 영국과 독일의 차트 톱 100에까지 오를 정도로 유럽에서도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난 1일 홍콩 아시아월드 엑스포 아레나에서 열린 ‘2017 MAMA in HongKong’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받은 방탄소년단에게 아시아는 이미 비좁은 느낌이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에 대해 미국 UCLA의 김석영 교수는 “뮤직 비디오가 정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통해 10대의 강력한 팬덤을 이끌어냈다”라고 얘기했지만 그 정도로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을 밝히기엔 한계가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국 팝 시장은 우리나라 가수들에겐 꿈의 목표 또는 불가능한 도달 지점이었다. 1990년대 전국적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컴백과 은퇴 등이 지상파 9시 뉴스에서 첫 보도가 될 만큼 ‘문화계 대통령’,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도 미국은커녕 일본 진출에서도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국내 활동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90년대 당시 국내 가수의 글로벌 활동에 대한 지원 체계 미흡, 국내 기획사의 부족한 마케팅/홍보 역량 등이 서태지의 글로벌 진출에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후 SM, JYP, YG 등 초대형 기획사가 등장한 후 미국 시장에 국내 아이돌 그룹이 다시 문을 두드렸음에도 언제나 미국 시장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 박진영 ⓒ스타데일리뉴스

미국 시장 진출에 가장 열정을 보인 기획자는 JYP의 수장 박진영이었다. 2007~2008년 ‘텔미’, ‘노바디’등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원더걸스의 국내 활동을 중단시키고 2009년 조나스 브라더스의 북미투어 오프닝 공연에 원더걸스를 참여시키면서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으나 미국 팝 가수들과 다른 원더걸스만의 차별화 효과를 내지 못하며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아시아계 아티스트에 대해 미국 시장은 굉장히 가혹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팝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아시아계 신인들의 데뷔 계획을 모두 백지화시킨 것도 바로 미국 음반사였다. 쉽게 말해 아시아계 가수로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시장 논리이다.

▲ 이수만 ⓒ스타데일리뉴스

이런 흐름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10년 전부터 국내 아티스트의 활동 반경은 미국이 아닌 향후 최대 마켓이 될 중국에 초점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엔 국내 아티스트로 한계가 분명히 있기에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탁월한 전략이라고 이수만 프로듀서는 공언했다. SM은 그 이후부터 줄곧 중국과 일본 시장 진출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보아는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역사에 남은 인물”, “H.O.T는 아시아에 처음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라고 소속 연예인을 칭찬한 이수만 프로듀서는 지금 미국 및 유럽에서 불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신드롬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 보아 ⓒ스타데일리뉴스

2013년에 데뷔한 후 이른바 3대 기획사 출신 연예인도 아니었기에 초창기부터 흙수저 아이돌로 불렸던 방탄소년단의 행보는 가히 놀랍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데뷔 2년이 지난 2015년부터 탁월한 안무 및 노래 실력, 친근한 SNS 소통으로 해외에서 방탄소년단에 대한 열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고의 아이돌 저스틴 비버를 밀어내고 올해 빌보드 Top Social 아티스트상을 받기 시작하더니 아메리칸 뮤직상 시상식에는 단독으로 무대에 올라 K-POP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5년 전, 싸이 역시 ‘강남 스타일’로 아메리칸 뮤직상 시상식에 등장했지만 당시 공동 무대였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위상을 짐작할 만 하다.

아메리칸 뮤직상 공연 후 구글 트랜드 검색어 1위, 전세계 리트윗 기록 1위, 신곡을 통해 미국을 포함 세계 60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 방탄소년단이 만들어 놓은 흔적들은 국내 최초이기도 하지만 아시아계 아티스트를 모두 포괄해서도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강남스타일 열풍 시절, 아시아인을 너무 우스꽝스럽게 묘사해서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아시아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 방탄소년단의 열풍은 미국 및 유럽 사람들에게도 ‘판타지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각인시켜주고 있어 더 놀랍기만 하다. 세계적 듀오인 체인스모커스는 ‘인터내셔널한 슈퍼스타라는 호칭도 이들에게는 부족하다’고 방탄소년단을 평가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사실 1990년대 정통 힙합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국내 시장에서는 초기에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90년대 힙합을 사랑하는 수많은 해외 팬들에게 친숙함과 익숙함을 주었고(해외 팬들은 90년대 힙합 음악이 최고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해외 활동 초기부터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으로 바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실시간 SNS 통로도 전세계 팬들의 지지와 열광을 받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트위터코리아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방탄소년단의 트위터 메시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호주, 남미, 아시아 등 전세계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전달, 공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방탄소년단(BTS) ⓒ스타데일리뉴스

2000년대 이후 해외 공연만 다녀오면 ‘월드스타’라고 방송에서 강조한 스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작 국내에서 ‘월드스타’ 호칭을 받았던 이들 중에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은 가수는 한 명도 없었다. 또한 국내 시장을 장악했으면서도 팬들에게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스스로를 신성화한 아티스트들도 많았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에서는 ‘아티스트의 인기는 팬들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방탄소년단은 실력과 노력을 갈고 닦은 후 이 기본 원칙에 충실하게 행동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 높이 올라서 역사에 이정표를 남기는 게 자신들의 목표”라고 밝힌 방탄소년단. 이들은 지금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자체가 이제는 K-POP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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