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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0.15 10:20

뱀파이어 검사2 "소녀, 백조의 꿈을 꾸다."

모순과 부조리, 목적도 개연성도 잃은 추리와 수사, 독특한 재미를 느끼다.

▲ 사진제공=OCN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아마도 유정인(이영아 분)을 위한 제작진의 배려였을 것이다. 여성이 배제되어 있던 유정인이 어느새 민태연(연정훈 분)을 이성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여성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모델들과 함께 어울릴 정도로 예뻐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민태연의 표현에 다르면 호박에 줄 긋는 것이 아닌 원래 줄무늬가 가려진 호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유정인의 굴욕은 계속 이어진다.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이 전혀 익숙지 않다. 온갖 예쁜 척을 다 하며 당당하게 돌아서 걸음을 옮겨 보지만 이내 자세가 무너지며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모델들과 있을 때도 그녀의 작은 키가 무척 서럽기만 하다. 여전히 <뱀파이어 검사2>에서도 그녀의 역할은 아직 성별의 구분의 뚜렷해지기 전 소년같은 소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민태연이 여성으로 깨어나게 만든다.

유정인이 겉모습이나마 여성이 되었을 때 민태연 역시 유정인에 대한 마음을 스치듯 슬쩍 내비치게 된다. 평소 유정인의 외모에 대해 상당히 좋게 보고 있었다. 유정인이 위험에 빠진 사실을 알았을 때 냉저을 가장하지만 상당히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유정인이 익숙지 않은 하이힐에 삐끗 자세가 무너지듯 민태연은 좀체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마치 누이동생을 대하는 오라비처럼. 자신은 뱀파이어고 유정인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이다. 둘은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이다. 아직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드라마는 마치 포스트모던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어지는 것이 없다. 모델이 죽었다.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중이던 모델 하나가 자신의 방에서 떨어져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누가 범인인가? 누가 어떤 이유로 그녀를 죽였는가?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녀를 죽이고 말았는가? 처음에는 한 사람의 우승자를 내기 위해 매번 탈락자를 만들어야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구조가 그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불러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예민하게 날이 서 있던 다른 모델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그같은 추측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처럼 보여지고 있었다. 다만 이것은 너무 쉬울 수 있다.

혹시나 디자이너 가브리엘 장(홍석천 분)과 피해자 한민아 사이에 죽음으로밖에 해결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필 가브리엘 장은 한민아를 편애하고 있었고, 한민아의 요청으로 옷까지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것을 다른 출연자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앞서의 이유에 더해 더욱 동기를 강화시켜준다. 그런데 그 순간 느닷없이 들이닥친 보석강도들이라니. 심지어 조정혁(이경영 분)의 부검실에마저 총을 든 강도들이 쳐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런 단서조차 없이 사건은 어느새 보석강도들의 의뢰로 숨겨진 보석을 찾아낸 한민아가 그것을 과연 어디에 숨겼을까 하는 미스테리로 옮겨가고 만다. 보석의 행방이야 말로 진짜 한민아가 살해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기대는 배반당하고 말았다.

한민아가 죽은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가브리엘 장이 한민아에게 옷을 만들어 준 사실을 안 고영란과 강유경이 그녀를 찾아가 따지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기세에 뒤로 물러서던 한민아가 베란다 난간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보석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보석의 존재를 알았고, 실제 보석을 찾기 위해 한민아의 방까지 뒤졌던 김소라 역시 한민아의 죽음은 커녕 보석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고영란과 강유경이 한민아를 찾아가는 계기를 만든 양명희 역시 한민아가 죽는 장면을 본 목격자일 뿐이었다.

물론 처음 수사가 시작된 것은 한민아의 죽음에 대해서였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밝히기 위해 특수수사팀이 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한민아의 죽음에 관련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미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고 만다. 한민아가 찾아낸 보석강도들이 잃어버린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가져갔는가? 어디에 숨겼고 그것은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는가? 여기서도 드라마는 시청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치고 만다. 설마 보석강도가 민태연과 유정일을 향해 쏜 총 안에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을 줄이야. 원래 장전되어 있었어야 할 산탄 대신 다이아몬드가 마치 비처럼 그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쏟아져내린 다이아몬드 비의 가치는 고작 10억에 불과했다. 보석강도들이 찾고 있던 다이아몬드는 무려 50억에 이르는 것이었다. 40억이 빈다. 어디에 갔을까? 사실 여기서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생활속 물건에 숨기'라는 김소라의 조언과 한민아가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며 가브리엘 장에게 부탁해서 만든 드레스의 존재다. 그 드레스도 하필 유정인의 손에 들어갔다. 여기서 다시 반전은 이루어진다. 아직 여성으로서 자각하지 못한 유정인에게 블랙다이아몬드란 옷을 걸레로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난품은 유실되고 유정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다. 끔찍한 살인사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결말이다.

그래서 이번 회차를 유정인을 위한 회차라 말하는 것이다. 유정인을 모델로 만들려 했다. 유정인을 모델로 만들여 여성으로서의 그녀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민완검사로서의 역량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음으로써 유정인에 대한 민태연의 속내를 잠시 드러내 보인다. 목적을 위해 충실하다. 특수수사팀을 사건현장으로 보내고, 그런 가운데 모델들과 어울리기 위해 유정인은 화려한 변신을 한다. 그리고 화려한 변신을 한 유정인이 위험에 놓임으로써 민태연의 마음 역시 시험에 든다. 마지막 순간 민태연을 보며 우는 유정인과 그녀를 안아주는 민태연은 드라마가 의도한 가장 중요한 간 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유정인은 드레스를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아직은 멀었음을 말해준다. 아직 민태연은 장철오도, 그리고 최초의 뱀파이어도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가 답을 얻기까지 민태연은 유정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

허무하다. 허탈하다. 유정인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유정인이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차림을 한, 그런 모습이 더없이 어울렸으면서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마지막 민태연 앞에서 눈물을 보이던. 그래서 황순범(이원종 분)도 최동만(김주영 분)도 그 순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을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철저히 타자로써 그들은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다. 드라마의 의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각일 것이다.

추리란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다. 수사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쫓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무엇으로 분류해야 할까? 추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수사 역시 방향을 잃고 우연에 의해 단지 사건은 해결되고 만다. 그것이 중심이 아니다. 일상이란 그렇게 무의미하며 부조리하기도 하다. 흥미롭다. 역시나 재미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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