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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0.15 10:25

내 딸 서영이 "이서영이 강우재에게로 울며 도망쳐 숨으려는 이유..."

이서영과 이상우의 아버지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 사진제공=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딸을 잘못 키웠다. 너무 응석받이로 만들고 말았다. 의지할 수 있는 남자라 한다. 그에 기대어 행복을 얻겠다 말하고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를 위해 아버지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는 아버지의 대신이었다.

많은 딸들에게 아버지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남자다. 남자란 바로 아버지에 의해서 정의되고 결정되어진다. 딸들이 아버지에게서 보는 것, 아버지에게서 바라는 것, 하필 이서영(이보영 분)이 가장 예민하던 시절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대상이 바로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와 딸 이서영의 사이는 누구보다도 돈독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도 그러한데 아직 어렸던 이서영은 어떠했을까?

그래서 강우재(이상윤 분)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에게 의지해, 그에게 기대어, 그로부터 행복을 누리고자 바란다. 강우재의 오만할 정도의 당당함은 어쩌면 이서영으로 하여금 그에게서 과거 어린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찾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크고 세상을 가득 채울 듯 든든하다. 못하는 것도 없어 보였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과거 그랬듯 그녀는 다시금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강우재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행복했고 행복하고 싶은 자신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이서영과 이상우(박해진 분)가 서로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들은 대개 아버지에 대해 딸들이 느끼는 것과 절실한 감정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며 자라게 된다. 아버지의 등을 보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 하지만 굳이 아버지와 마주하며 아버지에 의지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이 찾는 것은 어머니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없는 만큼 아들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그리 절실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집착하는 이서영과 이상우는 그래서 다르다.

그래서 이상우는 이서영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저버리는가? 그러나 이서영 또한 이상우를 이해하기 힘들다. 어째서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가.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이렇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데. 아버지를 원망하는 가운데 간간이 드러내는 이서영의 복잡미묘한 감정은 그같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이상우에게 집착한다. 그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남동생인 동시에 아버지의 대신이었으니까. 아버지를 대신해 그로부터는 이해받고 용서받고 싶다.

도망치는 것이다. 현실로부터. 맞서 싸울 수 없는 버거운 지금으로부터. 곧잘 아버지의 품으로 도망쳐 우는 어린아이처럼. 강우재를 쫓는다. 그를 쫓아 현재를 등진다. 설마 그 자리에 아버지가 나타날 줄은 그녀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지독한 작위이며 드라마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였다. 그렇게 아버지와 딸은 전혀 다른 장소에서 가장 잔인한 인연으로 서로 만나야만 했다. 드라마는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야기다. 이별 없이 사랑은 없다.

캔디형이라 생각했었다. 전혀 착각이었다. 그녀는 캔디가 아니었다. 홀로 견디며 세상과 맞서싸우는 여전사가 아니었다. 단지 그저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두른 채 웅크리고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가시를 들췄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겁먹고 울먹이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달콤한 사탕을 바라며 히끅거리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겁먹은 채로 여자아이는 그 손을 잡고 따라나서게 된다. 강우재란 이서영에게 그런 의미였다. 그것은 도피였으며 현실에 대한 외면이었다.

반면 강우재의 경우는 아버지와 대립하며 훼손된 자신의 남성성을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이서영을 택했을지 모른다. 아버지와의 대립은 아이에게 심각한 거세에 대한 공포를 안겨준다. 아버지와 대립하고 극복함으로써 아이는 남자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거세될지 모른다고 하는 근본적 두려움을 가지게 되기 쉽다. 따라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여자이거나 아이다. 여자와 아이 앞에서 남자는 자신이 남성임을 깨닫는다. 하필 이서영은 여자이면서도 아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난다. 사랑인지도 모르고 만나지만 어차피 사랑이란 것이 그렇다. 자기에게 비어있는 부분을 구하는 것이다. 자기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다. 이서영이 바라는 것이 강우재에게 있고, 강우재가 바라는 것이 이서영에게 있다. 반면 이상우가 바라는 것이 최호정(최윤영 분)에게는 없다. 김강순(송옥숙 분)이 딸을 잘못 키웠다. 아니 사랑받으며 자란 이들 특유의 느긋함일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엇갈린다. 과연 3년 뒤에는 최호정에게 이상우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생겨나게 될까?

무언가 애닲다. 사랑이라기에는 너무 간절하고 치열하다. 차라리 발버둥과도 같다. 강우재의 여유로운 표정조차 그래서 전혀 여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남자는 어깨에 힘을 주고 남자인 체 하게 된다. 남자 앞에서 여자는 여자가 된다. 이서영은 여자가 된다. 어떻게 전개될까? 평범한 사랑이야기로 끝내기에는 그들 자신이 결코 평범하지 못하다.

진부하다. 지루하다. 그래서 자꾸 외면하게 된다. 그런데 외면하면서도 자꾸 눈이 돌아간다. 이보영이 우는 장면에서는 왈칵 같이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가장 상처입은 것은 이서영 자신이다. 이상우도 안다. 아니 아버지 이삼재도 안다. 그것이 감정이다. 재미있다.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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