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0.10 10:27

마의 "혁명가 백광현, 그러나 출신과 근본이 다르다."

명문의 출신과 은거고수의 사사, 백광현의 이유를 찾다.

▲ 사진제공=im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물론 드라마란 픽션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다루고 있어도 결국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해 각색이 곁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실재했던 백광현과는 다른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한 또다른 백광현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의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속 백광현은 의서조차 읽지 않고 오로지 말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쌓은 외과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전통적인 한방의학에 외과적인 치료법을 도입하는 혁명을 일구어냈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백광현 이전에도 말을 치료하는 마의는 있었지만 그 치료법을 사람에게까지 적용하려 한 것은 백광현이 처음이었다. 백광현의 가치도 처음으로 전통의 한방의학에 외과적 치료법을 도입했다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그같은 파천황적인 파격에 있을 것이다. 그는 선구자이며 혁명가였다.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에 백광현이 의술을 배우는 스승이 등장하려는 것 같다. 심지어 혼몽중에 아버지 강도준의 모습과 겹쳐보이고 있었다. 백광현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생부인 강도준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야기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백광현이 아무리 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와중이라 하지만 정체도 알 수 없는 인물에게서 강도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드라마적인 장치로써 이것은 매우 운명적인 만남을 예고하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해부하여 그 내부를 탐구하는 침의라. 어쩐지 역사속 백광현의 모습과 겹친다.

출생부터 다르다. 달리 중추원부사에 숭록대부라는 높은 관작을 받을 것이 아니다. 장안의 명문가 강씨집안의 후예로 그 아버지는 재주와 인품이 뛰어났던 강도준이었다. 그런데 의술조차 근본이 있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삶과 죽음을 오가던 백광현을 살려낸 그 솜씨는 과연 진짜라 할 것이다. 백광현의 앞날은 그렇게 결정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와 조상들과 그리고 이제 곧 만나게 될 인연으로 인해서. 백광현이 스스로 한 것은 그같은 튼튼한 뿌리 위에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꽃을 피웠다는 한 가지 뿐일 것이다. 하기는 아무리 백광현이더라도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마의 생활을 시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필 마택일에 어린 백광현(아역 안도규)과 어린 강지녕(아역 노정의)는 서로 스쳐지나간다. 때마침 말이 날뛰며 어린 이성하(아역 남다름)이 부상을 당한다. 이명환(손창민 분)도 그 자리에 와 있다. 운명처럼 우연히 그 자리에는 장인주(유선 분)도 있었다. 바로 얼마전에 그들은 헤어졌을 텐데. 그렇게라도 장래를 기약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십수년의 세월의 공백을 그렇게 인연과 다짐으로 붙잡아매려 한다. 아직 한참 어린시절부터 시작되는 드라마의 숙명이다. 모든 것은 백광현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닌 약속된 결말인 셈이다. 태어남에서부터 성장, 그리고 모든 인연까지.

그나마 이명환의 캐릭터는 흥미가 있다. 그는 매우 이중적인 인물이다. 억울하게 죽은 친구 강도준을 위하려는 그의 진심은 분명 거짓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하게 죽은 친구와 그 딸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용하려는 계산 또한 거짓없는 진심이다. 머리가 좋다. 영리하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는다. 그는 정치를 했어야 했다. 정성조(김창완 분)가 이명환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다. 누군가는 명분을 얻고 누군가는 실리를 얻는다. 누군가는 그래서 실리를 잃고 누군가는 명분을 잃는다. 그러나 이명환은 둘 다를 가지려 한다. 그런 이명환과 어린 백광현이 악연으로 세번째 만나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오히려 선한 진심이 더욱 그를 가증스럽게 만드는 이명환의 역할이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하다. 백광현이 의사로서 자신을 완성해가는 이야기가 아닌 의사로써 복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백광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그 대상이 될 악역 이명환이다.

아역들이 매력이 없다. 어린아이다운 통통튀는 천진스런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판에 박힌 듯 전형적인 캐릭터를 도식적으로 연기할 뿐이다. 그조차도 아이답게 서툴고 어색하다. 어린시절을 굳이 무리해가며 등장시키는 것은 아역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감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해보려는 의도였을 텐데, 그러나 아역을 아역답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 애써 아역을 등장시킨 의미를 퇴색시켜 버렸다. 아역조차 더구나 현재에 살지 않는다. 드라마속 현재에 머무는 것이 아닌 앞으로를 위한 과정 속에 있다. 스쳐지나간다.

안이하다. 어떤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전형적이며 도식적이다. 어느 흔한 무협소설의 설정이라면 그나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생의 비밀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은거고수와 복수의 대상. 복수의 대상 또한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하다. 그래야 한다.

사족이 많다. 군더더기가 많다. 깔끔하지 못하다. 의도가 과하다. 그런데 그 의도가 그다지 선명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이런 드라마는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물며 그에 비해 더 서툴기까지 하다. 어색하고 재미없다. 소재만 훌륭하다. 그것 때문에 본다. 지켜본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