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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9.28 10:33

착한 남자 "한 여자가 악과 죄에 빠져들 때, 한재희를 아쉬워하다."

강마루가 착한 남자인 이유, 그녀의 대척점에서 한재희를 보다.

▲ 사진제공=ihq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박시연의 연기가 아쉽다. 어쩌면 그녀가 연기하는 한재희야 말로 이 드라마의 핵심일 것이다. 의외로 그녀는 악하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여성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들이 그녀로 하여금 죄에 물들고 악에 자신을 맡기도록 만든다.

처음부터 서회장(김영철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절대적인 부와 사회적 지위를 지닌 그로부터 유혹을 받지 않았더라면. 서회장의 전처가 사회장을 등지고 떠나며 그녀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서회장의 자식을 낳은 어머니로써 서회장과 서회장의 딸 서은기(문채원 분)와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이제껏 누릴 수 없었던 행운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우연히 서회장이 서은기에게 하는 말을 엿듣게 되기 전까지는.

서은기의 것이었다. 당연히 서회장의 딸인 서은기에게 돌아갈 몫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서은기로부터 인정받고 화해할 수 있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 은석 또한 서회장의 아들이며, 자신 역시 서회장의 아내로서 서회장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서은기만 밀어낸다면.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유혹에 굳이 맞서려 하지 않는다.

다행히 서은기는 약했다. 약하다기보다는 물렀다.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아서 항상 주위나 뒤만을 돌아보고 있었다. 오로지 앞만을, 위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자신과는 달랐다. 토끼도 방심하면 거북이에게 지는데, 하물며 그녀는 탐욕스러운데다 발까지 빠른 사나운 승냥이였다. 서회장과 서은기 사이의 뿌리깊은 오해와 갈등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커다란 균열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서회장의 곁에 있고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스스로 그러도록 행동하고 있다. 서은기는 더욱 멀리 서회장으로부터 내쳐질 것이다. 그렇게 그녀 자신이 만들 수 있다. 서회장의 모든 것은 이제 모두 자신의 것이 된다.

처음 서은기를 향해 보이던 처절하기까지 한 친절한 미소가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제와서 강마루(송중기 분) 앞에서 서은기에 대해 가엾다고 말하는 속내 역시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눈앞에 욕망이 있다. 욕망보다 더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부여잡으려 한다. 그녀의 변화는 그래서 1회부터 6회까지 참으로 극적이면서 사실적이기까지 하다. 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가. 강마루를 사랑하던 대학시절의 그녀와 강마루 앞에서 사랑 아닌 욕정을 이야기하는 그녀 또한 같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앞에 그녀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궁지로 나락으로 내몰았던 원흉 오라비 한재식(양익준 분)이 나타나려 한다.

때마침 한재식이 나타나려는 순간 그녀는 한재식에게 맞은 바 있는 허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낙인이다. 한재식이 가진 악의가 그녀에게 남긴 깊은 상흔이다. 허리의 통증처럼 그녀는 양심의 통증을 호소한다. 그녀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어떻게 해서든 현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그것은 강마루에 대한 사랑보다도 더 크고 더 깊은 본질적 욕구였다. 살아야 했다. 살아남고자 했다. 그것이 그녀를 치열하게 각박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난 지금 그녀가 다시 강마루에게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곳에 자신의 행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 또한 가장 서러운 운명의 희생자일 것이다. 가장 큰 행복을 눈앞에서 놓아버렸다. 행복하기 위해서.

그래서 '착한 남자'인 것이다. 바로 그 대척점에 강마루가 있는 것이다. 유혹에 지지 않는.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큰 행복을 저버렸던 한재희와는 달리, 그녀는 더 큰 행복을 지키기 위해 당장의 행복을 포기했다. 그때 한재희를 대신해 살인죄만 뒤집어쓰지 않았더라면. 한재희가 살인범이 되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면 촉망받는 의학도였던 그는 지금쯤 실력있는 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마저 그 충격에 죽고, 동생마저 아예 방치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후회가 없었을까? 그는 자신의 양심에 물었다. 지금 자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행동이 무엇이냐고.

한재희는 상관없다. 한재희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강마루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행동했다. 한재희를 사랑한 자신을 위해 그같은 선택을 했었다. 한재희를 위해서였다면 그는 오히려 한재희를 만나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한재희를 사랑한 자신을 사랑했기에 굳이 한재희를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다시 한재희를 만나고 그녀가 다시 돌아오마고 말하는 그 순간에조차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그의 곁에 있는 것은 바보같을 정도로 순수하게 자신을 바라봐주는 여자 서은기다.

순수와 욕망, 시릴 정도로 차갑고 단단한 이성과 쉽게 유혹에 허물어지는 본능, 그렇게 한재희는 강마루와 서은기와 반대편에 선다. 한재희와 같은 편에 서 있는 것은 서은기의 아버지 서회장. 그것이 비극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강마루와 서은기는 함께 한재희와 맞서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그 절묘한 대립구도가 드라마 <착한 남자>의 핵심을 이룰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은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구조 가운데 하나다.

한재식의 존재가 벌써부터 무척 흥미를 잡아끈다. 한재식 또한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다. 그야말로 악 그 자체일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탐욕과 본능 그 자체일 것이다. 그가 나타남으로써 한재희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 한재희의 반대편에서 강마루와 서은기 또한 그 존재를 분명히 한다. 어느 정도 비중으로 그려지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흔한 러브스토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을 벌써부터 예감한다.

과연 한재희일 것인가? 아니면 서은기일 것인가? 어쩌면 의외의 결말일 수도 있겠다. 강마루는 진정 한재희에 대해 혐오와 경멸의 감정만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가 지금 한재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란 분노인가? 원망인가? 아니면 증오인가? 서은기에 대한 것은 연민일까? 아니면 미안함일까? 강마루 자신도 모른다. 아니 안다. 하지만 모른다. 모든 것을 가리고 있는 그의 무표정은 그 자신을 향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는 어떤 '착한 남자'일까?

아무튼 한재희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미흡하다. 더 착했으면 어땠을까? 더 순수하고 성실했으면 어땠을까? 송중기와 같은 미묘한 경계의 표정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와 감독이 설정한 캐릭터의 감정선이 박시연의 아쉬운 연기에도 한재희가 갖는 모순을 절실히 느끼도록 만든다. 문채원은 세상물정 모르는 곱게 자란 아가씨의 모습을 적절히 표현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 복잡하지 않다. 단순해서 오히려 쉽지 않다.

끝으로 과연 지켜야 하는 것이 많은 서은기가 지켜야 할 것이란 없는 한재희에 비해 반드시 열세인가? 노조와의 협상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사랑받고 자란 아가씨의 느긋함이. 한재희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양보를 그녀는 태연히 자신의 개인재산까지 내놓아가며 기꺼이 받아들인다. 돈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가져본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재희는 급하지만 그녀는 느긋하다. 그것이 지금으로서 강마루를 향한 경쟁에서 그녀가 한 걸음 앞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뒤가 없는 이상 한 번 싸움에서 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재희의 위치가 그렇다. 재취에, 원래 서회장의 정부였던 여자다. 주위의 눈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도록 만든다. 그에 비해 서회장의 본처에게서 낳은 큰딸인 서은기는 명분에 있어 누구보다 확실하다. 그녀가 서회장의 뒤를 잇는다면 세습을 인정하는 모두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벌써 그렇게 서은기는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몇 번 쯤 져도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그녀에게는 강마루도 곁에 있다.

점입가경으로 달려간다. 1회에서의 한재희와 6회에서의 한재희, 그리고 이제 7회와 8회, 회를 거듭할수록 달라지는 한재희의 모습에 대한 기대다. 그리고 그녀와 맞서는 강마루의 존재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서은기가 그의 곁에 함께 하고 있다. 아쉽지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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