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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7.10.23 09:22

[S리뷰] '빅토리아&압둘' 123년 만에 공개된 英여왕의 마지막

극중 빅토리아 여왕 맡은 주디 덴치의 절제된 연기 압권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오는 25일 개봉하는 '빅토리아&압둘'(감독 스티븐 프리어즈)은 123년전 대영제국의 통치자 빅토리아 여왕과 인도에서 온 무슬림 압둘의 만남과 우정을 다뤘다.

지난 2010년 무려 123년 만에 공개된 빅토리아와 압둘 카림의 실화가 바탕인 이 작품은 제작 전부터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대상이 19세기 영국과 전세계를 군림했던 빅토리아 여왕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영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 개봉한 '빅토리아 & 압둘'은 전반부에서 인도의 아그라(Agra) 교도소 서기 압둘 카림(알리 파잘)의 차별로 범벅이 된 하루를 비추고, 그뒤 빅토리아 여왕(주디 덴치)의 사생활조차 없는 피곤한 일상을 묘사한다.

▲ '빅토리아 & 압둘'스틸컷(UPI코리아 제공)

'빅토리아 & 압둘' 시대풍자가 돋보이며 묵직한 울림이 있다

UPI코리아가 수입/배급하는 '빅토리아 & 압둘'(12세 이상 관람가)은 러닝타임 112분으로 연인은 물론 가족들도 볼 수 있는 영화다.  

간략한 스토리를 보면, 인도에 사는 압둘 카림이 영국 여왕을 만나게 된 계기는 1887년 6월 어느날 윈저궁 아침 만찬에서 작은 이벤트로 개최된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주화 모후르 전달식 때문이었다.

24살 압둘, 그는 주화를 전달한뒤 금기나 다름없는 여왕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다 쫓겨난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에 지친 81세 빅토리아 여왕은 다른 세상을 본 듯 다시 불러들여 시종으로 두고 압둘의 고향인 인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영화는 당시의 웃지못할 시대상을 풍자하며 익살 맞게 각색했고, 극 중반을 넘긴 뒤에는 묵직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나름의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물론, 과거 남의 나라를 침략 수탈한 영국 여왕의 마지막을 동화처럼 꾸몄다고 볼수도 있다. 비록 통치권이 총리와 의회로 넘어간 영국이지만, 나름의 권력과 세를 유지하는 왕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왜? 123년 동안 꽁꽁 숨겨있던 빅토리아 여왕과 압둘 카림의 이야기가 이제서야 공개됐는지를 알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을 중심으로 탐욕스럽고, 옹졸한 영국 왕실의 비화가 하나 둘씩 드러난다. 

한편, 실화가 바탕인 이 작품은 명작 '빌리 엘리어트'(2000)의 각본을 담당했던 리 홀이 각본과 기획을 맡았다. 감독은 '위험한 관계'(1988), '더 퀸'(2006)등 숱한 명작을 연출한 스티븐 프리어즈.

촬영은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 '룸', '플로렌스' 등 화제작을 뽑아낸 베테랑 촬영 감독 데니 코엔. 음악감독은 토마스 뉴먼이 맡았다. 뉴먼의 대표작으로는 '작은 아씨들', '쇼생크 탈출', '여인의 향기', '에린 브로코비치', '아메리칸 뷰티', '조 블랙의 사랑', '로드 투 퍼디션', '007:스카이폴' 등이 있다.

캐스팅은 누가 봐도 신의 한수다. 영국출신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영미권 연극, 영화계의 거인으로 군림한 주디 덴치가 빅토리아 여왕을 맡아 열연했다. 이어 인도의 빅스타 알리 파잘이 주인공 압둘을 맡았고, 에디 이자드가 여왕의 아들 버티 웨일즈 왕자로 분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누구?

독일 북부 바이에른에 위치한 소도시 코부르크(Coburg)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성(古城)이 있다. 로제나우 성(Schloss Rosenau)이다. 내부에는 큼지막한 흑백 사진이 하나 걸려있는데, 사진속 인물들은 다름아닌 근현대 세계사를 관통하는 빅토리아 여왕(Queen Alexandrina Victoria Hanover)과 가족들이다. 당시 9명의 자녀와 42명의 손자녀를 둔 여왕의 위세가 드러난다.

로제나우 성의 주인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이다. 그의 성(姓)씨는 작센 코부르크 잘펠트. 이 가문은 독일에서도 크지 않은 패밀리다. 하지만 알버트의 숙부 레오폴트는 훗날 벨기에 국왕이 됐고, 고모는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였다.   

다른 이야기지만, 영국을 흔히 앵글로색슨(Anglo-Saxon)이라고 부를 때 색슨이 독일어로 작센이다. 잉글랜드를 세운 이들이 덴마크와 북부 독일인(게르만)들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독일어와 같은 게르만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1714년 독일 중부 하노버공국의 조지 1세가 휘그당에 지원으로 영국 국왕에 오른뒤 독일계 귀족들이 영국왕실을 이어갔다.

빅토리아 여왕의 모친은 독일의 작센 코부르크 잘펠드(Sachsen-Coburg-Saalfeld)의 공주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왕자는 독일 작센-코부르크 고타(Sachsen-Coburg U. Gotha)의 영주였다.

"설마 그 표독스러운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 하노버 공국의 후손 빅토리아 여왕(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하노버)은 1837년 18살의 나이로 여왕에 즉위, 재위 64년 동안 영국과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걸쳐 확장된 식민지를 하나로 통합하고, 위세를 떨쳤던 인물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을 건설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근현대사에 '빅토리아 시대'(Victoria Era)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

반면, 당시 영국의 식민 통치 아래에 놓였던 원주민들의 피폐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을만큼 비루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래서 안하무인에 거만하고, 심지어 피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제국의 압제와 착취의 또 다른 상징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기록됐다.

▲ '빅토리아 & 압둘' 주디 덴치 캐릭터 포스터(UPI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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