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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2.09.21 10:15

착한 남자 "빼앗는 한재희와 지키려는 서은기, 그리고 강마루..."

한재희가 강한 이유와 서은기가 약한 이유, 그리고 강마루의 이유...

▲ 사진=송중기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빼앗으려 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 그러나 빼앗으려는 이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지키려는 이의 눈은 지켜야 할 것을 향하고 있다. 역사상 유목민족이 약탈자로서 정주민족을 압도했던 이유였다. 더 이상 잃을 것이란 없는 이의 독기는 무섭다. 하지만 정착하거나 소멸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많은 유목민족처럼 그 한계란 명확하다.

서은기(문채원 분)는 한재희(박시연 분)의 말처럼 그저 곱게 자란 아가씨다. 한 눈에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그래서 더욱 사랑받고 싶어한다.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에게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지키고 싶어한다. 자신의 가정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있는 가족을. 한재희에게는 배가 부르다 못해 하품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몸을 팔던 어미와 도박중독인 오라비에 의해 어디론가 팔려가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던 그녀에게는.

그래서 한재희는 많은 것을 버릴 수 있었다. 강마루(송중기 분)를. 정확히는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뿌리를. 자기 자신을. 그래고 탐욕스럽게 내달린다. 살아남기 위해 약탈할 곳을 찾아나서야 했던 유목민족들처럼 그는 자신이 원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고 떠돈다. 잃어버린 가난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을 채 느낄 여유조차 없이 곧 자신의 손에 들어올 따뜻함과 풍요만을 기뻐하고 그리워한다. 처음부터 그녀에게는 돌아갈 곳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강마루 역시 한재희에게는 그저 한때의 따뜻함이고 편안함일 뿐이었다. 유목민이란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가축을 먹일 풀이 다하면 그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다시 초원을 떠돌기 시작한다. 매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들의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바람을 막아주고 땔감과 물을 넉넉히 얻을 수 있다면 그곳에 겨울을 나는 동안 오래 머물러도 좋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기약한 머묾이다. 차라리 한재희에게 서회장(김영철 분)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혹시 모르겠다. 강마루는 그녀에게 머물 땅이 되어주었을지. 그녀가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을지. 하기는 의학도로서도 전도가 유망했었다. 결코 그녀를 가난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서회장이 약속할 수 있는 미래에 비하면 그것은 하찮은 것이었다. 곧 봄이 오고 찬바람이 가시면, 아니 더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 있다면 그때는 미련없이 지금 이곳을 떠나갈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서은기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녀의 땅이다. 그녀의 울타리다. 그녀의 것들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짐짓 강한 자신을 꾸며보이고 있다. 일부러 거칠게, 독하게, 오만하게, 사람들을 굽어보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애써 꾸민 자신을 소중한 것을 지키느라 소모하고 만다. 진정 인정받고 싶은 것은 그녀의 아버지일 테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원래 자신의 것이었을 것들을 고스란히 지키고 싶었던 것일 테지만, 그러나 정작 그 때문에 아버지와 맞서고 그의 눈밖에 나고 만다. 오히려 한재희에게 약점만 노출시킨다. 그녀는 그래서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강마루는 어떨까?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초원을 떠나갔다. 초원의 고단함과 가난함을 견딜 수 없어서. 더 풍요롭고 평화가 깃든 땅을 찾아 떠나갔고 혹은 소멸하거나 혹은 정착하여 정주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유목민족들이 초원을 떠나갔어도 아직도 남아 초원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조상들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거칠고 매마르고 사나우면서도 순박하다. 어떤 땅에서든 살 수 있지만 그러나 작지만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을 안다.

악이란 뒤가 없는 것이다. 뒤를 돌아본다면 악은 저지를 수 없다. 그것을 선이라 믿는다. 선이라 믿도록 내몰린다. 그것이 옳다고. 그것은 절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이 가난한 것이다. 그것이 고단한 것이다. 지친다. 마모된다. 양심과 이성이 그 기능과 역할을 잃는다. 도덕적인 타락이란 단지 도덕이 저렴해지는 것 뿐이다. 마치 재고정리하듯 너무 급하다보니 도덕조차 터무니없이 싼 값에 급하게 처분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강마루의 지친 표정은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 것 같다.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는 공허한 눈빛과 얼굴이 벼랑에 선 그를 보여준다. 그 또한 옳지 않다. 바르지도 않다. 도덕적으로 반드시 선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또한 필요하다면 약탈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같은 현실을 돌아볼 마지막 이성을 지키고 있다. 마지막 이성이 그의 양심을 지켜주고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 뒤가 있다. 그것이 마지막 순간 그의 행동을 결정해 줄 것이다.

한재희는 강하다. 서은기는 약하다. 하지만 한재희는 불안하다. 서은기는 돌아갈 곳이 있다. 온전히 그녀는 강마루를 믿는다. 강마루를 의지하려 한다. 결국은 누가 더 강한가? 한재희는 서회장조차도 안영민(김태훈 분)조차도 진심으로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못한다. 의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절박하게 발버둥치는 그 본능과도 같은 몸짓이다. 의지도 이성도 없는 충동과 욕구다.

미쳐간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는 정상이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어린시절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가가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 개인의 책임만이 아닌 사회 모두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다. 모순되고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하던 이가 그 안에 자신을 담그고 빠르게 물들어간다. 이성과 양심이 충동과 욕망에 삼켜진다. 비단 한재희만의 이야기일까?

마치 다른 세계처럼 그들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 박재길(이광수 분)이 있고, 초코(이유비 분)가 있는 또다른 세계다. 그들도 선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순수하다. 투명한 무채색마냥 강마루를 둘러싼 그들의 이야기가 시원하게 흘러든다. 목소리가 떨려서 오디션을 보지 못하다니. 흔힌 연예인 성공기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흔하다. 하지만 흔한 것이 통속드라마의 매력이라는 것을 필자로서도 부정은 못하겠다. 박재길에 대한 그녀의 짝사랑은 어디로 흘러들어갈 것인가? 강마루가 돌아갈 곳이다. 강마루가 지켜야 할 곳이다. 어쩌면 한재희나 서은기에게도 그리운 어떤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은 흔했다. 그리고 뻔했다. 지루하고 진부했다. 하지만 볼수록 캐릭터에 대한 흥미가 깊어진다. 캐릭터가 갖는 이면과 그들이 갖는 관계의 의미가. 강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서로 만나고 부딪히고 얽히고 헤어진다. 오해하고 갈등하고 화해한다. 드라마는 역시 캐릭터다. 이야기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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