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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사회
  • 입력 2012.09.08 11:08

성폭력과 포르노의 상관관계 "아동포르노 단속을 환영하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실 이것은 성매매와 성폭력과의 상관관계와도 유사성이 있다.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성욕을 대상에 강제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대상. 그리고 강제. 대상이기에 강제하려 하고, 강제하는 과정에서 위력이 동원된다. 그래서 성폭력이다. 폭력이란 단순히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자 하는 모든 위력을 포함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대상'이 있다.

대상이란 우상이다. 우상이란 허상이다. 관념에 의해 존재하는 허구의 실체다. 어떤 의도나 의지가 그것을 존재하도록 한다. 어떤 목적이 그것을 존재하도록 만든다. 사람은 고기를 먹는다. 닭은 그 고기를 제공한다. 닭이란 곧 고기다. 닭의 입장따위 전혀 상관없이 닭이란 단지 고기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양계장은 단지 그를 위한 효율만을 추구하며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푸와그라를 생산하는 업자들에게 과연 거위란 살아있는 생명일까? 주체로써 생명을 영위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을까? 그러기에는 거위의 주둥이로 강제로 먹이를 주입하는 그 손길은 악의조차 없이 무심하기만 하다. 과거 개를 잡을 때 불에 태우고 몽둘이로 때려 잡은 것은 그 사람들이 잔인하거나 난폭해서가 아니라 개는 그렇게 잡아먹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존재를 정의하고, 그 정의가 본질이 된다. 그것이 그 대상을 정의한다.

이쯤 되었으면 아마 대부분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존엄함을 갖는 존재다. 그렇게 여긴다. 그렇게 배운다. 그런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욕망만을 강요하고 강제한다.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 인간이란 존엄하지 않다. 정확히 인간이 존엄하다면 대상은 존엄하지 않다.

실제 그래서 성매매나 그와 유사한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의 경우 다른 여성들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차피 그런 일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성매매에 대한 멸시에 더해 스스로 도구화된 자신에 대한 일방적 욕구가 바로 성폭력으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한강에 배지나간 자리고,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그런 여자들에 불과하다.

성매매 업소 주위에서 성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을 주고 여성의 성을 산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돈으로 계량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뜻이 된다. 존엄한 여성의 인격을 유린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계량할 수 있는 수단을 단지 강제적인 수단으로 가지려 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닌 단지 성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성이 가진 수단에 대한 약간의 강제력의 행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범죄와는 달리 성범죄의 경우 범죄자의 상당수가 죄의식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성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단이며 도구다.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를 멸시하고 비웃고 조롱한다. 성범죄를 마치 훈장마냥 주위에 자랑하며 과시하기도 한다. 성범죄가 알려지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도리어 피해자를 공격하며 나서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고작 그런 존재다. 그런 가치다. 하물며 이미 정조를 유린당했기에 성적 대상으로서 그 가치는 떨어진다. 피해자도 그래서 사실을 알리기를 꺼려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며,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다시 포르노로 돌아가서, 포르노란 과연 무엇인가? 가장 직설적인 욕망이다. 꾸미거나 가리지 않은 적나라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대중이 갖는 욕망 그 이상을 앞서가서 보여주기도 한다. 욕망의 극단이며 첨단이라 할 것이다. 포르노속의 남녀 또한 바로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인간이 아닌, 인격과 존엄을 갖는 주체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단지 포르노가 추구하는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포르노의 주인공에 대해 그 이름에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야말로 대상일 것이다. 성적 욕망의 대상.

포르노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실의 여성은 존엄과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의 인간의 여성이다. 그런데 포르노를 통해 성적 대상으로 삼았던 배우들이란 존엄도 인격도 없는 단지 수단이며 도구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경우 실제의 여성에 대해 느끼는 자신의 어긋난 욕망에 대해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실제의 여성에 대해서도 포르노속 여성처럼 일방적인 대상으로서 여기려 할 것이다. 포르노와 관련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의 인간 여성과 포르노속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사이에서의 괴리가 정상적인 사고마저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성범죄들에 대해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들에 대한 대책으로 아동포르노를 집중적으로 단속하려 한다는 뉴스를 뒤늦게나마 반기는 이유일 것이다. 성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물며 아동에 대해서다. 아동포르노의 경우는 더구나 의도적으로 보려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포르노 가운데서도 음지에 속한 것들이다. 그것을 일부러 찾아보려는 의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진 포르노를, 그것도 일부러 찾아보는 이들이 느끼는 욕망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현실로 표출되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인가? 실제 아동포르노와 아동성폭력과의 연관성은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막연하기만 한 아동성애의 성향을 포르노가 구체화시켜준다. 아동이 스스로 포르노를 통해 그 대상이 되어 다가온다.

무엇보다 아동포르노의 경우 성인포르노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동에 대한 일방적인 성적 착취를 넘어선 약탈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직 성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아동들이 어른에 의해 유인되어, 혹은 강제되어 포르노에 출연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범죄일 것이다. 그것을 소비한다는 것은 그같은 악의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범죄를 통해 취득한 재화를 알면서도 재취득했을 경우 그것도 범죄가 된다. 아동포르노가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단지 아동포르노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중대한 범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고 있다. 심지어 물건을 훔치러 들어간 도둑이 아동포르노를 발견하고 경찰에 자진해서 신고한 사건이 있을 정도로 사회의 악으로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에 대한 반발여론이 적지 않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갈수록 잦아지고 있는 아동성폭력의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문제의식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범죄자만 엄벌하면 모든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그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성범죄가 갖는 특수성이다. 죄의식조차 없이 오히려 오만하고 당당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대중이 포르노를 소비하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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