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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7.08.11 18:34

[권상집 칼럼] 분노만 유발하는 가족 예능, 연예인들의 방송 세습

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의 자녀 또는 누구의 배우자인가

▲ 둥지탈출 출연진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대중은 능력 없는 이들이 세습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사람들이 유독 재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유도 세습 경영을 통해 오너 일가가 손쉽게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로스쿨이 맨 처음 도입되었을 때 반대가 심했던 이유도 사법시험이라는 객관적 노력을 토대로 법조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위공직자들의 자녀가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방송계조차 핏줄 마케팅, 방송 세습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이제는 누구의 자녀, 누구의 배우자 이런 식으로 연예인들의 가족이 손쉽게 국내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 연예인들은 한결같이 자기 자녀 또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연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대중의 시선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사생활에 대해 극도의 피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배우, 개그맨, 프리랜서 아나운서 할 것 없이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들은 자기 자녀 또는 자기 가족까지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심지어 그들의 가족도 스스럼 없이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그 어떤 직업도 연예인보다 막강한 부와 명예를 단시간에 거머쥘 수 있는 직업은 없다. 단 하루 방송 출연으로 일반 직장인들의 한달 월급을 벌 수 있는 세계가 바로 그들의 세계이다.

매일 TV와 인터넷에서는 누가 빌딩을 사고 누가 건물을 구입했느냐를 화제에 올린다. 국내 재벌 기업가들을 제외하고 젊은 나이에 건물을 구입하는 이는 대체적으로 연예인 아니면 운동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막강한 실력을 거둔 운동선수가 세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스포츠 세계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반드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농구선수 조던 또는 축구선수 메시의 2세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스포츠이다. 그런데 방송은 다르다. 기획사에서 희망을 꿈꾸며 매일 보컬 트레이닝을 하는 이들을 우습게 여기듯이 탤런트, 배우, 개그맨의 2세는 손쉽게 그리고 단기간에 TV 스포트라이트 앞에 선다.

방송 세습, 핏줄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인 2년 전, 필자는 이미 본 칼럼을 통해 연예인들의 방송 세습에 대해 역겨운 노골적 특혜라는 점을 들어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2년 전, 모 방송사에서 <아빠와 딸>이라는 콘셉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시청자들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유명 아버지를 두어 방송에 출연,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대중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 개그맨 박명수의 아내는 <무한도전>에서 대놓고 "방송 출연도 하고 싶고 CF를 찍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박명수는 과거 라디오에서 "개천에서 난 용을 만나면 개천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말까지 했다. 그야말로 금수저 세상이다.

금수저, 은수저라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인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 되고 말았다. 로스쿨 지원 시에도 아버지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지를 중시하는 대학이 상당수였고 지금도 국내 유수의 로펌과 컨설팅은 지원자의 전문성과 능력 이전에 지원자의 가족,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상세히 조사한다. 대한민국에서 ‘인맥’ 또는 ‘가족’이라는 백그라운드가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럴 때 실력으로 어려움을 뚫고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들려줘야 할 방송에서 오히려 예능을 통해 또 다시 금수저들의 자녀와 가족을 출연시키며 웃음을 유발한다. 예능이 웃음이 아닌 분노를 유발하는 희한한 세상이다.

방송계에서는 이러한 연예인들의 핏줄 마케팅, 방송 세습 논란에 대해 “가족 예능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긍정적인 기능이 존재한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자녀, 아내, 남편이 출연한다고 해서 해당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몇 년씩 방송 출연을 위해 안무와 노래 연습을 하는 청소년이 전국에 수만 명이고 지금도 대학로에서 배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명 배우가 수백 명이다. 이들 중에서 옥석을 골라야 할 방송사들이 손쉽게 연예인들의 가족을 토대로 출연자를 섭외하는 건 대중의 반발과 분노만 사는 패착이다.

3년 전, M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와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그래도 예능 그 자체의 순수성은 있었다. 어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토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기에 지금과 같은 핏줄 마케팅, 방송 세습 논란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개그맨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방송 출연을 욕심 낸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종편에서 가수 김흥국과 다정한 모습을 보였던 딸은 또 다른 케이블 방송에서 아이돌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급기야 모 방송은 국회의원의 아들, 배우의 아들과 딸, 개그맨의 딸 등을 낯선 네팔로 보내 세상과 소통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홍보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PD는 “일상의 작은 위로가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대중의 마음을 못 읽는다고 해도 이렇게 못 읽기도 참 힘들다.

일부 평론가들은 연예인들과 2세 자녀들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급증하기에 해당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혀 모르는 소리다. 사실 대중은 연예인들의 2세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관심이 없다. 때로는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자녀로 살아가는 게 싫었다는 그들의 배부른 속내를 듣는 것도 이젠 피곤하고 지겹다. 정유라는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하라"고 말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지금의 가족 예능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사실 정유라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는 메아리를 외면한 예능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 웃음이 아니라 분노뿐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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