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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8.13 09:45

넝쿨째 굴러온 당신 "너처럼 하면 드라마 시청률 안 나온다?"

문득 지나가는 여러 연인과 커플처럼, 일생을 보다.

▲ 사진='넝쿨째 굴러온 당신'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디 그 드라마 주인공도 너처럼은 안해! 너처럼 하면 그 드라마 시청률 안 나온다?"

하지만 주위에 보면 방귀남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하게 하며 사는 사람들 많다. 아무래도 한국남자들에게 로맨틱이란 열등감이면서 또한 강박이기도 한 터라. 다만 방귀남(유준상 분)처럼 유난스럽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별다른 느낌이 없다. 저건 다른 세계 사는 사람이다.

어쩌면 지난 49회에서 방귀남이 기획한 리마인드 결혼에 대해 오버스럽다 느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생뚱맞다. 어색하다. 더구나 드라마에서 웬 연설인가? 필자의 경우 드라마든 소설이든 등장인물이 길게 연설하듯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드라마란 서사이고 묘사이지 서술이 아니다. 가치관이 다르다. 따라서 부러울 것도 질투날 것도 없다.

오히려 필자에게 남자답다고 하면 다름아닌 방귀남의 작은아버지 방정배(김상호 분)일 것이다. 어찌보면 주책맞고, 어찌보면 염치없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무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족을 위한 그의 진심은 드라마 가운데서도 단연 발군이다. 방귀남이야 의사에, 존스홉킨스라는 대단한 학력에, 남부럽지 않은 수입에, 그러나 방정배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따지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가족이고, 가장이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다. 아마 여성시청자의 입장은 또 다르리라.

지나치면 오히려 실감이 없다. 그냥 판타지다. 방정배의 대사와는 달리 남성시청자들이 곧잘 방귀남이 주인공인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당장은 방귀남의 이벤트에 당황하더라도 어차피 차세중(김용희 분)처럼 집안일을 도우며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 또 한국 남자들의 삶이다. 너무 거리가 멀면 그러려니 살게 된다. 아마 드라마속 여성들도 굳이 자기 남편이 방귀남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족하다. 판타지도 판타지로 족하다. 하지만 보기에는 무척 재미가 있다. 여성작가가 쓰는 드라마다.

자기를 위해 용서한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용서란 상대를 위하는 것이다. 상대를 편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용서이지 어째서 자기가 편하자고 용서를 하는가? 그러나 죄란 용서를 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해도 죄는 남는다. 다만 그 죄에 대한 미움만은 내게서 사라진다. 미움 또한 악이므로.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다. 미움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다시 또 있을까?

누군가를 간절히 미워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누군가를 지독스럽게 원망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파괴해가는지를. 그래서 종교가 있는 것이다. 미워하지 말라고. 그래서 법이 있다. 원망하지 말라고. 편하게 살라고. 선량하게 살라고. 자신의 죄를 끝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죄를 지은 자신이다. 피해자인 자신은 어느새 그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려 한다. 용서해준다고 장양실(나영희 분)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서해서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기에 용서라는 수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란 굳이 다른 사람의 힘을 빌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가 용서하면 된다.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고 가엾이 여기고 그래서 납득하고 용서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용서를 해도, 용서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간다.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며, 다투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늙어 서로 의지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다. 어느 부부의 일생을 투영하는 듯하다. 방귀남과 차윤희(김남주 분) 부부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처럼. 그런 사람들 가운데 보통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누군가는 방귀남과 차윤희 부부처럼 살아가고 있으리라. 어느 한 순간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니 그저 특별해 보일 뿐 바닷가에 모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도 하나일 뿐이다.

깨달음이고 다짐이었을 것이다. 위로이고 용서다. 상당히 종교적이다. 그들은 자아를 찾아 떠났다. 자신들을 찾아 떠났다. 그들 부부를 찾아. 리마인드 결혼은 태어남이고, 여행은 그들의 삶이며, 그 삶에서 그들은 자신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 순간만 드라마가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제작진의 의도에 감탄을 보낸다. 차라리 그대로 끝냈어도 좋지 않았을까?

사랑을 하면 사람이 바뀐다. 단지 방이숙(조윤희 분)은 마음놓고 기대고 당당해질 수 있는 누군가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꿈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골. 그리고 누구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목공예의 일. 남평과 아이. 그녀는 무척 고립적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쉽게 당당해지지 못하낟. 그러나 천재용(이희준 분)만은 다르다. 그는 그녀의 남자다. 자기의 남자다. 유독 그에게만 스스럼없는 모습이 그런 그녀의 안심을 보여준다.

방말숙(오연서 분)의 경우는 누군가 진심으로 자신을 야단쳐줄 수 있는 상대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울타리다. 자기로 하여금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두고 보호해주는 든든한 울타리다. 그래서 차세광(강민혁 분)에게 유독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를 위해서라면 이제까지의 되바라진 방말숙의 모습은 없다.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차세광이 하는 말에 철저히 순종한다. 부모는 아니었을까? 그것이 자식의 슬픔이다.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같지 않다.

방장군(곽동연 분)도 역시 남자였다. 남자라면 서울대보다는 신세경이다. 미인이 앞에서 함께 연기하기를 바라는데 서울대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방정배의 걱정이 엉뚱한 곳에서 아주 쉽게 해결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하기는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에는 방장군의 캐릭터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그것이 방장군의 매력이기도 하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죄다. 차라리 연예인이기에 조금 인기를 다시 얻게 된 것이 죄가 되려 한다. 그래도 양식있는 기자를 만났다. 섣부르게 기사를 내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이슈가 되었다면 윤빈(김원준 분)의 지금의 인기란 한 순간에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그런 약점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괜히 접근하고, 아무일없이 시비를 걸고, 그리고서 약점을 노려 이익을 취한다.

다만 남남구(김형범 분)가 진짜 바보라는 것은, 그래서 윤빈의 인기가 떨어지면 매니저와 가수 사이가 어떻게 돌변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협박이란 협박의 수단을 손에 쥐고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미 쓰고 나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흔들리던 방일숙(양정아 분)이 단단하게 결심한다. 윤빈을 보호해줄 수 있는 기획사로 떠나보내려 한다. 그때 엄청애(윤여정 분)는 방일숙과 윤빈의 사이를 지레 오해하고 설레발하고 있다. 윤빈의 집안이 밝혀진다. 대단한 집안이다. 엄청애의 설레발만 더 깊어진다.

전반적으로 많이 산만해진 느낌이다. 초반에서와 같이 각 에피소드가 착 달라붙는 느낌이 없다. 별개의 에피소드들을 단순히 대충 맞춰 엮어 놓은 느낌이랄까? 그만큼 초반에는 서로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독립된 단위로 정립되어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가족이란 언제나 함께가 아니다. 함께일 수 없기에 바로 가족인 것이다. 헤어져 있어도 가족은 가족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방정훈이 돌아왔다. 장양실이 멋대로 팔아버린 땅에 흥분하며. 그에게는 아내인 장양실보다 그녀가 판 땅과 돈이 더 중요하다. 그를 위해 그는 태연히 이제까지 감추어 온 장양실의 비밀을 엄청애에게 털어놓는다. 복수하려는 듯. 아무런 배려없이. 어째서 다른 가족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엄청애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묘하게도 전혀 타인인 장양실이 동서이고, 제수이고, 며느리이고, 작은어머니라는 이름의 가족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방정훈이 오히려 혼자서 겉돌고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머니와 제수에 맞서 방말숙을 지키려던 차세광이나, 적당히 어머니와 아내의 눈치를 보며 맞춰가는 차세중이나, 오로지 아내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귀남이나, 그리고 아내조차 안중에 없는 방정훈과 그로부터 장양실을 지키려는 다른 가족들. 그런 의미가 아닐까?

아무튼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부럽거나 질투도 난다. 아마 거의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실감이 없다. 그런 건 동화에나 나오는 주인공 이야기다.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현실에서 보면 조금은 짜증도 날 것이다. 그래도 방귀남이 멋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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