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8.12 10:13

넝쿨째 굴러온 당신 "장양실이 남은 이유와 방귀남이 용서한 이유..."

먼저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사진='넝쿨째 굴러온 당신'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게임이 그래서 좋은 것이다. 세이브가 있다. 로드가 있다. 후회하는 순간 되돌릴 수 있다. 실수하기 전으로. 결과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과거의 순간으로 리셋한다. 하기는 그래도 여전히 후회는 남는다. 왜 조금 더 자주 세이브해두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람인 모양이다.

온라인 게임을 싫어한다. 온라인 게임은 세이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새로 키우는 것은 가능하다. 실수가 쌓인다. 잘못된 선택들이 중첩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워낙에 현시르이 삶도 실수와 잘못된 선택들 투성이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지우고 새로 만든다. 거의 강박에 가깝다. 게임을 하면서도 그렇게 세이브를 하고 로드를 반복하며 완벽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게임에서라도 그러기를 바라는 무의식이었을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하고 바란다. 지나온 과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오면 이제 다가올 미래보다 이미 지나온 과거가 더 크게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놓아두곤 시간들이, 그 시간들에 함께 놓아두고 온 자신의 기억이 서서히 자신을 붙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래서 기대보다 후회가 커지고, 희망보다는 미련이 더 커지게 되면 그것이 나이를 먹은 증거라 말한다. 혹은 너무 큰 것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놓아두고 온 것이거나.

하지만 그럼에도 삶이 잔인하다는 것이 그래도 살아있기에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물론 끝내 견디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편한 것이다. 죽을 결심으로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하지만 삶이란 죽을 용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갈 용기가 없으니 죽음이라는 극단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모든 후회와 미련을 끌어안고서. 그 모든 상처와 아픔들을 감당해가며. 당장 서 있을 힘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마지막 걸음을 떼어놓는다.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도 살려달라 말하는 그 처절함은 무슨 까닭일까? 그래서 다시 후회를, 미련을, 미안함을, 분노와 원망을 남기는 것이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장양실(나영희 분)도 다시 살려 한다.

비로소 방귀남(유준상 분)도 그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의 나약함과, 그럼에도 그 모든 죄를 끌어안고서도 후회와 고통속에 살아고자 하는 그 용기와 의지를. 비로소 유산이라는 것을 경험해보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도, 아내 차윤희(김남주 분)도, 그때 장양실이 그랬을지 모르는 후회와 절망속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산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죄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고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평생을 짊어질 상처와 후회를 낳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낳았다.

그래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용서하겠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다. 정확히는 자신과 아내를 위해서다.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용서받을 자격을 얻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용서했듯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있다. 태명조차 받지 못한 채 빛도 못보고 사라져버린 아이에 대한 아내의 깊은 절망을 그렇게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 용서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역시나 살아가기 위해서다. 남의 일이니 용서하네 용서하지 못하네 따지고 들 뿐이다.

시어머니이기에. 아니 그래서 장양실도 떠나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룬다. 작은어머니인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냉대에도, 시아주머니의 무시에도,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방귀남의 원망과 비난에도, 그러나 이 순간 조카며느리 차윤희를 위해 무어라도 해줄 수 있는 것은 같은 유산을 경험했던 자신밖에 없다. 차마 볼 면목이 서지 않아 주저거리면서도 그래서 장양실은 방귀남에게 자신이 만든 죽과 자신이 그때 간절히 필요로 했던 것들을 전하고 만다. 방귀남을 볼 때마다 일깨워지는 죄의 무게보다 가족이라는 것이 갖는 인정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그래서 시어머니(강부자 분)도 그런 장양실의 죄를 시어머니인 자기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말하고 있었던 것일 터다. 살라고. 살아달라고. 아무리 자신의 죄가 무겁고 무섭더라도 그것까지 모두 감수해가며 그래도 살아달라고. 어쩌면 방귀남 또한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가족이라고 하는 자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피를 나누었을 뿐인 천륜이 아닌, 죄조차 이길 수 있는 인정의 무게와 깊이를. 그 또한 절망스러웠고 고통스러웠기에 그것이 더욱 간절히 다가온다. 장양실을 용서할 수 있으면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죄가 없다. 선천적으로 자궁에 기형이 있다고 한다. 타고나기를 자궁이 아이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게 태어났다. 그렇다고 친정엄마인 한만희(김영란 분)에게 탓을 돌릴 것인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이치로 따지자면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재난이지만 자신의 아이이고 엄마이기에 그조차도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 도저히 해줄 수 없는 일조차 해주고 싶고 해주어야 하는 것 같은 것이 가족인 때문이다. 장양실도 그래서 차마 앞에 나설 용기조차 나지 않음에도 조카와 조카며느리를 위해 무어라도 해주려 했던 것 아니던가.

차윤희의 유산은 바로 그것을 위한 계기였다. 가족이기에 갖는 원죄다. 가족이기에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또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죄스럽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가족은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 아무리 밉고 싫은 상대라 할지라도, 그 어떤 원망과 분노가 있더라도. 더구나 어느새 가엾은 처지가 되어 있기에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된다. 장양실이 그동안 홀로 짊어져왔던 죄의 무게마저 우연히 들어 알게 되었다. 용서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러나 솔직히 조금 오글거렸다. 굳이 리마인드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려야만 했었는가? 더구나 그 방법이 연설이라고 하는 지나치게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일방적으로 방귀남의 생각을 강요당하듯 듣고 있어야 했었다. 주제는 좋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좋지 못했다. 조금 더 드라마스럽게 그것을 포장해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동안 방귀남의 비중이 너무 없었던 데 따른 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시청자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들까지 모두 구경꾼으로 전락한 - 심지어 차윤희마저 방관자로 남아 있어야 했던 마지막 연출은 최악이었다. 마지막회라면 차라리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시어머니가 작은며느리 장양실을 이해하고, 조카 방귀남이 작은어머니 장양실을 용서한다. 서로 대립하던 엄청애(윤여정 분)와 한만희 두 사돈 역시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어느새 화해하게 된다. 아직은 어수선하기만 한 차세광(강민혁 분)과 방말숙(오연서 분)의 관계 또한 그것을 계기로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차윤희의 올케이자 차세광의 형수인 민지영(진경 분)과 작은아버지 방정배(김상호 분) 사이에는 작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 얼핏 무리수로도 보이지만 이 하나의 사건으로 모든 과정들이 한 번에 정리되어 버렸다. 작위가 허용되는 드라마만의 장점이다. 드라마라는 말처럼 모든 것들이 그를 통해 더욱 고조되어 간다.

결국은 그런 인식들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다. 같이 자주 돌아다닌다.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함께 밥먹고 쇼핑한 것 뿐임에도. 하기는 천재용(이희준 분) 입장에서는 그 정도만 되어도 대단히 행복한 상황일 것이다. 그 정도면 이미 깊어도 한참 깊어진 사이라고. 그래서 남남구(김형범 분)도 방일숙(양정아 분)을 협박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물어볼까?"

당장 이모인 엄순애(양희경 분)가 그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었다. 참 당사자들과 상관없이 스캔들도 쉽게 나고, 쉽게 믿어지고, 또한 쉽게 잊혀진다. 쉽게 잊혀지면서도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결국은 윤빈(김원준 분)에게 공이 넘어갔다. 방일숙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연인이라기에는 지금의 매니저와 가수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너무나 단단하다. 오랜 팬과 스타로서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흔한 남녀사이로는 너무 아깝지 않을까?

비록 리마인드 웨딩이라고 하는 무리한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그런 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더 남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큰 줄기는 얼추 정리되었다. 그 계기가 마련되었다. 급하지 않게. 거칠거나 허술하지 않게. 그런 점에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방귀남의 연설도 용서가 된다. 어차피 닭살돋도록 살겠다 맹세하는 자리이지 않았는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차윤희의 울음이 자꾸 먹힌다. 울고 있고 슬퍼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꾸 겉돈다. 아마도 지쳐버린 때문일 것이다. 차윤희 자신이나, 아니면 김남주 자신이나. 차라리 너무 슬퍼서 슬픔조차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게 받아들인다. 재미있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