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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8.10 10:16

유령 "용두사미, 경찰이 된 영웅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다."

경찰은 법을 지키고 집행하는 존재다. 그 당연한 전제를 묻다.

▲ 사진='유령'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섬뜩함을 느꼈다. 죄를 지었다. 그런데 법이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사적으로 그를 제제하려 나선다. 그를 파멸케하고 마침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을 무심히 지켜본다. 그가 다시 경찰이 된다. 그런 그가 경찰이 되어 있었다.

경찰이란 법을 집행하는 존재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의 규범인 법을 지킬 것을 강제하기 위해 경찰이란 존재한다. 따라서 당연히 경찰이란 법의 엄정함 위에 존재하고, 그것을 전제함으로써 존재의미를 갖는다. 법의 엄정함을 전제하지 않는 경찰이란 얼마나 섬뜩한 존재인가? 개인적인 정의감으로 악을 응징하는 것은 정체를 숨긴 영웅들이나 하는 짓이다.

차라리 박기영(소지섭 분)이 경찰이기를 포기하는 쪽이 나았다. 법이 조현민(엄기준 분)을 처벌하지 못하니 개인으로 돌아가 조현민을 응징하려 한다. 법의 판단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면 그는 더 이상 경찰일 수 없다. 결과가 자기가 생각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따로 개인으로서 행동에 나설 것이면 그는 경찰이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는 지금 김우현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상태다. 자살이야 조현민 자신의 선택이더라도 죽음을 선택한 조현민을 보는 조금의 당황이나 연민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표정이 그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죄를 처벌하기 위해 스스로 죄를 짓는다. 법에 의해 처벌받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법을 어겨가며 죄를 짓고 만다. 재판정에 제출할 가짜증거를 위해 협박을 하고, 그 과정에서 범죄사실을 숨겨주겠다 은폐하고, 심지어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증거물 자신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빼돌리고 있었다. 즉 그가 진정으로 분노한 것은 조현민이 지은 죄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증오한 것은 조현민 자신이다. 그래서 조현민의 죄가 아닌 조현민 자신을 응징하기 위해서 스스로 죄를 짓고 만다. 과연 아무리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를 증오하여 증거까지 조작하고, 심지어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직접 찾아가 압박을 가하는 그를 정상적인 경찰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경찰이 지금도 일선에서 증오할 범죄자를 찾아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모르겠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경찰상이라고 하는 것도 모르겠다. 안다면 그것은 매우 끔찍할 것이다. 스스로 죄를 저지르면서 죄를 지은 이를 처벌하려 한다. 경찰이 되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신분마저 위조하면서. 하기는 그런 박기영을 방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 같은 경찰인 권혁주(곽도원 분)와 유강미(이연희 분), 변상우(임지규 분), 이태균(지오 분) 등 사이버수사 1팀 형사들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찰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따위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미국의 영웅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법적인 영웅을 대한민국 경찰 속에 집어넣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러나 영웅은 영웅이지 경찰이 아니다.

벌써부터 뒷머리가 간지러워온다. 혹시라도 어쩌나? 오해를 사서 범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게 된다면? 증거를 조작해서 가져올 것이고, 증인은 협박해서라도 만들어 올 것이고, 재판이 끝나고도 사적으로 찾아오려 할 것이다. 자신도 죄를 짓고 있으면서 태연히 그 죄를 무시하고 있다. 드라마인 것이 다행이다. 설마 현실에는 그런 경찰이 없기만을 바란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팀 하나가 전부 그런다. 화가 난다는 수준이 아니다. 차라리 박기영이 자신은 경찰이 될 수 없음을 알고 김우현의 신분을 버린 채 음지로 숨어 영웅으로 살아간다는 결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 뻔했다. 최소한 박기영과 같은 이가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찰에게는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까지도 무척 중요하다. 박기영과는 맞지 않는다.

아무튼 참으로 상투적인 결말이었다. 아니기를 바랐다. 최강의 적이었던 만큼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유있는 냉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혹은 음지에 숨어 역시 마찬가지로 음지로 숨은 박기영과 대결하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효정의 죽음이 안타깝고, 신효정과 함께 죽은 뱃속의 태아에게도 죄스럽지만, 그러나 그동안 조현민은 적지 않은 죄를 지어온 악인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럽지 않은가? 모두의 안에는 누구나 선량한 본질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거기서 조현민이 자살하다니. 너무 허무해서 어이가 다 없을 정도다. 악인은 끝까지 악인인 것으로 좋다. 설사 법에 의해 처벌을 받더라도.

용두사미였다. 하기는 그동안에도 느껴오고 있었다. 작가가 버거워하고 있다.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자기가 직접 나서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조현민이 괜히 스케일만 키운 대사를 한다고 설득력이 있을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습기도 하다. 날로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범죄와 그를 쫓는 사이버수사대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애초의 의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런 드라마를 자신이 끝까지 보고 있었다.

새삼 쫓기듯 바쁘게 돌아가는 드라마제작현장의 관행적 모습을 원망하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 좋았다. 중반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의도와 노력한 부분은 인정한다. 명품이 나올 뻔했다. 미치지 못하지만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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