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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제기차기 역사진화론, 먼 축국으로부터
2012년 08월 08일 (수) 08: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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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news@stardailynews.co.kr

   
▲ 사진출처=중국 baidu 사전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축구에 대한 기록은 아주 오래다. 오래전에는 축구(蹴球)가 아닌 축국(蹴鞠)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전에는 축국(蹙鞠)이라 부르고 있었다. 최초의 기록은 <황제헌원기(黃帝軒轅記)>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황제헌원기> 자체가 진위가 의심되므로 취할 것은 이 한 대목 뿐이다.

"황제는 축국의 놀이를 만들고 이로써 군사를 조련하였다."

실제 진위가 불분명한 <황제헌원기>를 제외하고 축구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이 전한때 반고가 정리한 병법 53가 790편 가운데 병기고 13가 199권 중에 수박, 검도, 포저자, 역법, 사법 등과 더불어 축국 25편이 거론되면서부터였다. 즉 현대에도 전투체육이라는 이름으로 병사들을 단련하는 한 수단으로서 축구가 애용되고 있듯 그 전통은 매우 유구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고안된 축국은 5호 16국과 남북조의 혼란기를 거치고, 더구나 당나라가 건국되고 오랜 풍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보다 대중화되면서 유희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게 된다. 한 마디로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심지어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게 된다. 송나라때에 이르면 경제적 성장과 맞물려 서민문화가 발달하며 축국 역시 즐기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널리 보편화되기에 이른다.

당시의 축국은 지금의 축구와는 사뭇 달라서 오히려 우희용씨에 의해 시작된 축구프리스타일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었다. 공은 주로 짐승의 태반으로 만들고 짐승의 뼈나 깃털로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온갖 기교를 부려 차고 노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교중심이다가 나중에는 팀대항 형식의 오늘날의 축구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북송때에 이미 원사라고 하는 협회가 결성되어 원사에 속한 원우들만이 전문적인 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

스타플레이어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호전>에 나오는 간신 고구가 바로 축국실력 하나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정위와 소슬같은 이름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송을 세운 태조 조광윤 또한 축국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여진과 몽골의 침략으로 그 전통이 단절되지만 않았다면 지금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 축구는 중국에서 그 화려한 꽃을 피웠을 것이다.

전통은 단절되고 공은 유럽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우리가 아는 축구는 그렇게 유럽에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함께 세계로 전파되어 이제는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고 말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중국인이 유럽으로부터 배운 축구를 배워 유럽인의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현대축구를 만든 것은 바로 유럽인들이다. 단지 중국인들은 아주 오랜 원천기술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흥미롭다.

   
▲ 사진제공=imbc
아무튼 바로 이웃한 중국에서, 더구나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문명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당연히 한반도에도 그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이미 삼국시대에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 축국을 계기로 김유신의 여동생과 김춘추가 맺어지며 삼국통일로 이르는 중요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 벌써 신라의 화랑들 또한 군사훈련과 유희적 목적으로 축국을 중국으로부터 배워들여와 즐기고 있었다는 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같은 전통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축국의 대중화로 이어지며 또다른 한반도만의 전통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당장 축국을 즐기려면 공을 만들어야 하는데 짐승의 태반이나 오줌보를 가지고 공의 형태를 만들고 온갖 장식을 다는 것은 일반 서민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는 집안에서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야 워낙 땅덩이도 크고 인구도 많다 보니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었지만 한반도는 더구나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개인이 즐기려 하는데 그같은 장식적인 공이란 사치에 다름 아니었다. 대안이 필요했다. 보다 값싸고, 보다 간편하고,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은 헝겊이 되고, 깃털은 헝겊이나 종이의 짜투리가 되었다.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엽전이었다. 제기였다.

실제 한반도의 전통무예 가운데 하나인 택껸을 보더라도 제기차기와 닮은 것이 적지 않다. 한 다리로 중심을 잡고, 한 다리로 집중해 공을 찬다. 각력과 집중력이 길러지고, 중요한 군사기술 가운데 하나인 각법을 익히게 된다. 다만 원래 축국의 공보다 탄성이 부족한, 부족하다기보다는 아예 없다시피 한 엽전과 헝겊으로 만든 제기를 쓰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퇴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을 대비한 군사훈련의 과목은 아이들 놀이로 보다 수월해지고 단순해지게 된 것이다. 제기차기에서 그래서 원래의 축국의 모습을 보게도 된다.

제기차기의 룰은 상당히 다양하다. 개인별로 차는 것이 있고, 집단이 차는 것이 있다. 서로 제기를 넘겨가며 돌아가며 차는 것도 있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도 있을 테고, 전해져내려오던 것이 제기차기라는 형식에 맞춰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축구프리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 축구프리스타일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축구와 닮았다.

서쪽으로 전해진 축국은 마침내 유럽인에 의해 세계적인 스포츠인 축구가 되었다. 그리고 한반도로 건너와서는 아이들의 놀이인 제기차기가 되어 있었다. 역사를 배우는 한 즐거움일 것이다. 같은 유래를 가지고도 이렇게 서로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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