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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8.06 08:36

남자의 자격 "정체성을 잃어버린 예능, 앞날이 불안하다."

예민한 때에 공교로운 주제, 달갑지 않은 상상을 하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처음 예고편을 보는 순간 이미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PD가 <해피투게더3>의 PD였다. 아직 리얼버라이어티라고 하는 형식에 익숙지 못하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직접 체험하는 가운데 나오는 웃음과 재미가 리얼버라이어티다.

하다못해 북한의 평양을 가정하고 북한사람이 되어 만남을 가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아니면 서울시내에서 북한식 데이트를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통일이 되고 난 뒤를 가정하고 서울시내에서 남한과 북한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헤프닝들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현실과 그 차이를 이해하고 거리를 좁히는 계기로 삼는다. 더불어 나날이 늘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이해 또한 깊게 한다. 그들은 남이 아닌, 어디 먼 별에서 온 외계인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한 가장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흔한 토크쇼가 되어 있었다. 게스트를 직접 모셔다가 자리에 앉혀놓고는 묻고 답하고, 게스트를 모셔오는 과정에서도 결국 묻고 답하며 시청자에게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양프로그램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었다. 순간 요일과 시간대를 착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요일 몇 시 몇 분?

일요일 오후시간 황금시간대에 시청자들이 TV앞에 앉아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보를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편안한 휴식과 즐거운 웃음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방송 3사에서도 이 시간대에는 주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위주로 주력하여 편성하고 있다.

<남자의 자격> 또한 바로 그런 취지에서 기획되고 방영되어 온 프로그램이었을 터다. 설사 그동안 정보전달의 역할 또한 상당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예능의 일환으로서였지 교양이나 심지어 시사적인 목적을 위해 그리 한 것은 아니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 취지야 이해하더라도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본질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PD가 만들어갈 새로운 <남자의 자격>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동안 <남자의 자격>을 애청해왔던 필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배신과도 같았다. 더 이상 <남자의 자격>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포기해도 좋을 것이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나름대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북한에서 직접 넘어온 탈북자 여성의 입을 통해 들려진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즐기고,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체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의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덜 풍요롭고 덜 자유로울 뿐. 생각 이상으로 사람이란 강한 동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이것은 <남자의 자격>이 아니었다. 굳이 <남자의 자격>이 아니어도 좋았을 것이다.

예민한 시절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북한문제는 항상 선거철이면 가장 중요한 이슈로서 작용해 왔었다.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북한체제에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것을 비판해야 하는 것도 당위일 것이고, 북한체제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온 탈북자에 대한 배려도 형제로써 이웃으로써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때를 잘못 선택해서 오해를 자초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은 못 될 것이다. 원래 참외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묶는 것이 아닌 법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모자를 고쳐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해가 취지를 희석시키고 의도를 왜곡시킨다.

재미란 기대에서 나온다. 기대하고 충족한다. 기대하고 배반한다. 배반이란 양날의 검이다. 충족이 지나치면 진부하다. 배반이 방향을 잃으면 허무하다. 필자가 보고자 한 <남자의 자격>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욱 예민하게 지켜본다. 불안이 커진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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