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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29 09:39

넝쿨째 굴러온 당신 "역지사지, 한 치 앞도 못보는 삶의 유쾌함에 대해서..."

어느새 소강상태, 차세광과 방말숙이 드라마를 끌어가기 시작하다

▲ 사진='넝쿨째 굴러온 당신'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래서 드라마가 재미있다. 정확히는 삶이란 재미있다.

재미란 감동이다. 감동이란 놀람이다. 울고 웃는다. 화내고 당황한다. 원망하고 미워한다. 반가워하며 두려워한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처럼 재미없는 것도 없다. 다음에 어떤 장면이 이어질 것인가를 안다면 더 이상 이야기는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다. 아무런 감동도 없다.

1초 뒤의 일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서 사고가 일어나고, 알지 못하기에 만남도 이루어진다. 전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 시간들이 이후의 만남을 운명으로 만든다. 전혀 이후의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과 행동이 한바탕 헤프닝으로 이어지고 만다. 비극이 심화되거나 유쾌한 반전을 이룬다.

아니 코미디란 원래 비극일 터다. 사람이 바나나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진다. 넘어지면 당연히 아프다.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죽는 사람도 있다. 하기는 바나나를 밟고 넘어져서 죽었다면 그것도 한바탕 코웃음을 칠 일일 것이다. 죽은 당사자나 주위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무엇보다 큰 비극일 테지만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눈에 때로 그것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도, 그래서 무섭고 슬프고 화나는 상황이 닥쳐도 사람은 웃음이 난다.

"그건 우리 딸이 그런 시부모 만나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저도 그럼 그런 청둥망둥이 같은 여자가 우리 며느리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그러면 그때가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청자는 알고 있다. 정작 엄청애(윤여정 분)의 딸이 어떤 시어머니를 만나려 하는지. 한만희(김영란 분) 또한 어떤 며느리를 맞게 될 것인지.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역설을 이룬다.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있고 그것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반드시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방말숙(오연서 분)은 그런 아내이고 며느리일 수 있겠는가? 그러면 한만희는 자신의 며느리가 될 방말숙에 대해 말처럼 관대해질 수만 있을 것인가?

뻔히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두 사람만 모른다. 이제 곧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인데 두 사람만 당시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대립한다. 비로소 알게 된다. 방말숙이 죽고 못사는 남자가 다름아닌 한만희의 아들 차세광(강민혁 분)이라는 사실을. 차세광이 만나고 있는 여자가 바로 엄청애의 딸 방말숙이었다. 하필 그래서 엄청애도 뒷담화하듯 한만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의 며느리에 대해서는 되게 잡는 모양이라고. 며느리에게 지독스런 시집살이를 시킬 시어머니와 엄청애의 딸이 만난다. 보통은 아닌 성격의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가 뒤에 버티고 있다. 엄청애 자신이 말한 상황에 딸 방말숙이 놓이게 된다.

한만희 또한 마찬가지다. 굳이 요리며 집안일이며 미리 배워서 시집올 필요 없다.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남자가 대신 집안일을 책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차세광이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가 다름 아닌 방말숙인 것이다. 미운털까지 있는대로 박힌 성격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있고, 집안일 역시 결코 익숙하다 말할 수 없는 그녀다. 한만희는 과연 자기의 말처럼 여전히 집안일에 서툴기만 한 방말숙을 시어머니로서 관용으로 보아넘길 수 있을 것인가?

말하는 순간에는 서로가 시어머니이고 친정엄마였다.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말했고, 친정엄마의 입장에서 반론했다. 그런데 입장이 바뀐다. 이제는 엄청애가 친정 엄마고 한만희가 시어머니다. 서로가 말한 그 상황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딸 방말숙을 시집보내야 하는 친정엄마의 입장과 그런 며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어머니의 입장으로. 그리고 그 순간에조차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마조마할 정도다. 만일 차세광과 방말숙의 사이가 두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게 들통났을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친정엄마가 된 엄청애와 시어머니가 된 한만희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그래서는 드라마가 재미없다. 모순과 역설된 상황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짜릿하다.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의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의 친정엄마로서 입장이 바뀌게 된다. 정확히 더해지게 된다. 딸의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친정엄마가 된다. 며느리의 친정엄마가 딸의 시어머니가 된다. 모순이 중첩된다. 딸의 친정엄마로써 이미 해놓은 이야기가 있다. 며느리의 시어머니로서 이미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입장이 바뀐 채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친정 엄마로써 딸을, 시어머니로써 며느리를 그런 서로를. 딸과 며느리의 수난시대이기도 하다. 방말숙이나 차윤희나 성격이 강해 쉽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방귀남(유준상 분)은 모르더라도 차세광은 어떻게 넘어가려는지.

역지사지를 생각케 한다. 시어머니에게는 친정엄마의 입장에서. 친정엄마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역지사지도 행동으로 보여준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생각은 시청자 스스로 한다. 드라마는 단지 보여준다. 그 충돌과 모순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나름의 해답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월드는 어떻게 생겨났고 어디에서 그 모순은 비롯되었는가? 그 모순에 대한 답은 또한 어디에 있는가? 시어머니가 되어서 친정엄마가 되어서 딸과 며느리를 보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드라마다.

아무튼 천재용(이희준 분)이 마침내 방이숙(조윤희 분)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천재용 자신이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한규현(강동호 분)이 방이숙에게 가르쳐주었다. 천재용에게도 직접 자기의 입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전해듣는 천재용의 모습은 여전히 한심스럽다. 자기가 먼저 보자고 해놓고 온통 일방적으로 두들겨맞아 멍투성이 피투성이다. 그런 와중에도 허세를 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서 허세를 빼면 영혼잃은 허수아비다.

방이숙도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역시 그녀의 컴플렉스가 문제였다. 편한 사랑은 어렵다. 일방적으로 사랑받는 지금이 어색하고 불안하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위태하고 가슴아픈 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배워왔다. 다름아닌 가족들에게서. 하필 오빠를 잃어버린 날 태어난 원죄를 안고 자라왔던 탓에. 새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 걸음 내딛기가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이제 한규현으로 인해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 변화라는 게 생길까?

방정배(김상호 분)는 참으로 멋진 남자다. 방귀남이나 형인 방장수(장용 분)에 비해서도 한참 낫다. 중요한 것은 런던과 서울의 시차가 얼마나 나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런던과 서울의 시차가 그렇게 나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그것을 서울에서는 밤에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내인 고옥(심이영 분)의 입장에서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당연히 방정배는 고옥의 남편으로서 그녀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 남편인 자신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편을 들어주겠는가?

무엇이 옳고 그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장 심각하게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때 괜히 가르치려 들거나 다투려 할 필요가 없다. 지난주 방장수와 방귀남 부자가 좋은 뜻에서 엄청애와 차윤희 두 고부사이를 화해시키려다 도리어 원망만 듣고 만 이유다. 누구보다 아내인 자신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남편인 그들 자신이다. 그런데 그 본분을 잊는다. 느닷없이 서럽다. 그러나 방정배는 굳이 아내의 무지나 어수룩함을 지적하거나 일깨우려 하지 않는다. 그대로도 좋다. 그대로도 방정배는 고옥을 사랑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방귀남보다 남자로서 더 멋지다.

엄친아가 유행이더니만 이제는 아친남이 다시 유행하려는 모양이다. 엄마 친구 아들. 아내 친구 남편. 어떻게 엄마나 아내는, 아니 여자친구도 어떻게 꼭 그런 아들과 남편과 남자친구를 가진 친구만 골라 사귀는 것일까? 하기는 방귀남이 있다. 국민 남편이다. 남편의 모범이다. 때로 짜증이 난다. 저렇게 살기도 쉽지 않다. 압박감마저 든다. 그다지 남자들에게 환영받기 힘든 캐릭터다. 밥먹으면서도 그리 티를 내야 하는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이룬다. 공공의 적이다. 아친남 방귀남.

가끔 넘어서는 것이 보인다. 방장군(곽동연 분)이 대본을 통해 공부하는 장면이나, 방귀남이 굳이 고아원까지 찾아가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이다.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아이에게도 그다지 깊이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지나치게 방귀남 자신이 감상에 취해 있었다. 방귀남을 동정할지언정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윤빈(김원준 분)과 방일숙(양정아 분)의 관계도 이제는 사족에 가깝다. 그저 잊지 않을 정도로만 다루고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엄마와 딸이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를 위해 방송국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무척 흥미로웠다.

엄마들에게도 딸들과 같이 오빠를 쫓아 다니며 그에 목을 매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세대에도 할머니세대 나름의 아이돌이 있었다. 그것이 때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렇게 세대를 이어간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당연스런 것들이 때로 이렇게 색다르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무척 당연한 것이다.

차윤희의 분량이 거의 없었다. 장양실(나영희 분)의 고백으로부터 엄청애를 구해낸 것 말고는 거의 비중이 사라지다시피했다.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용서받으려 하지 말라. 편해지려 하지 말라. 역시나 독한 여자다. 말 몇 마디로 용서받고, 몇 마디 말로 고백함으로써 후련해지고, 그러나 죄란 그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용서하고 용서받아도 죄는 남아있다. 그것이 양심이라는 것이다. 다시 편해지자고 엄청애에게 스스로 먼저 고백해서 엄청애가 상처받는다면 그 상처는 다시 누구에게 돌아갈까?

죄가 무서운 이유다. 죄가 무서워서도 있지만 한 번 지은 죄는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살아있는 한 때로 잊을 수 있고, 때로 웃어넘길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죄인 한에는 그는 죄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용서조차 마음대로 구할 수 없다. 고백조차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그조차 그의 원죄에 속한다.

차라리 고백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비난듣는 쪽이 편했다. 죄를 갚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대로 진실을 감춘 채 거짓으로만 일관하려면 죄는 여전히 고인 채 썩어가기 시작한다. 속이 썩어들어간다. 장양실은 결코 편하지 않다. 용서하더라도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차윤희가 자신이 당한 그대로 시월드로써 경고하고 있음에도 방말숙은 차라리 시월드를 감당하더라도 차세광과 함께 있기만을 소원한다. 진심이다. 차윤희가 그것을 보았다. 차윤희가 지금의 시월드를 참아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이 시누이와 올케는 올케와 시누이가 되어 비로소 화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고 있다. 잠잠해진 부분도 있다. 방장군의 경우도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듯하고, 방일숙과 윤빈은 소강상태다. 방귀남도 차윤희도 잠잠한 지금 드라마를 끌어가는 것은 차세광과 방말숙 두 커플이다. 어찌되려는가? 쉽지만은 않은 커플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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