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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23 10:05

넝쿨째 굴러온 당신 "용서라고 하는 무게, 장양실 체념을 선택하다."

해피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 비극이 더 무거워지다.

▲ 사진='넝쿨째 굴러온 당신'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용서란 말만 쉽다. 어디 용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던가? 머리로는 생각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리 다짐하고 결심해도 정작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용서가 용서가 아니다. 용서가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물이 엎질러지면 자연스럽게 물의 일부는 바닥에 스며든다. 아무리 깨끗이 물을 닦아낸다 하더라도 물이 그곳에 엎질러졌다는 흔적만큼은 아예 완전히 지울 수 없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어담을 수 없다. 한 번 저질러진 행위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 행위로 인한 결과가, 그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아픔이 사실을 일깨우는데 그저 머리로만 생각해서 하는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아물게 된다. 상처가 아물고 아픔도 가시게 된다. 최소한 더 이상 전처럼 아프지 않을 만큼 상처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때쯤에는 상처도 한 번 잊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상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새 방이숙(조윤희 분)이 할머니(강부자 분)의 사과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전히 그녀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잊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손녀가 되어 할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사실 비겁한 것이다. 상처는 입힐 만큼 입혀놓았다. 그로 인해 이후 방이숙의 삶이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사랑받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없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대답을 들을 용기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래서 한규현(강동호 분)과도 과거 그렇게 엇갈리고 말았다. 지금 천재용(이희준 분)과의 관계가 자꾸 틀어지는 것도 그녀 자신의 뿌리깊은 열등감과 죄악감 때문이다. 그나마 천재용의 천진스러운 솔직함이 그녀의 닫혔던 마음을 서서히 녹여 연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하지만 어느새 잊혀질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며느리 엄청애(윤여정 분) 역시 마찬가지다. 시어머니 자신이 기력이 떨어지고 전처럼 엄청애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기에는 힘들다. 엄청애도 나이를 먹고 전처럼 함부로 대해도 좋을 상대에서 벗어나 있었다. 방귀남도 찾았으니 갈등의 원인도 해소되었고, 앞으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엄청애와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시간이 흘러 상처는 무뎌지고 기억은 흐려진다. 자신도 시어머니가 되어 시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게도 되었다. 엄청애는 다시 며느리 차윤희(김남주 분)를 대상으로 시어머니가 했던 그대로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용서를 구한다. 화해를 청한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기의 극치일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아무 잘못도 없다고. 자기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문제없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당사자에게서 하지만 용서란 그렇게 쉬운가? 그래서 눈치를 본다. 속이고 감춘다. 거짓을 말하고 기만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단지 용서했다 착각하는 것 뿐이다.

과연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구하는 용서가 용서라 할 수 있는가?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그저 가족이기에 하는 용서 또한 용서라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봉합해 놓았으니까. 당장 보이지 않도록 덮어 감추어 놓았다. 그나마 방이숙은 운이 좋다. 그녀에게는 천재용이 있다. 그의 일방적인 구애가 그녀의 상처입은 채 굳어 있던 마음을 녹여간다. 아직은 멀었지만 이제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아예 의식조차 않던 천재용이게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천재용이 아니었다면 한규현과도 아직까지 그다지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청애는 더 서럽다.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그대로를 돌려주었다. 자기가 겪은 것들을,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고스란히 차윤희에게 돌려주다가 도리어 아들로부터 서운한 말을 들었다. 남편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그 이유를 모른다. 시어머니를 용서하고 대신 며느리를 원망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며느리라고 살갑게 대한다고 그것이 장양실(나영희 분)에 대한 시어머니의 용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시어머니는 그녀를 아예 다시 안보려 한다. 다만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엄청애에 대해 그다지 알려 하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다 자만한다.

지금껏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아갔다. 마음을 다한다면 모든 정성을 다해 대한다면. 그러나 장양실의 그같은 바람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진실이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이제까지의 그녀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시어머니와 동서와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체념이 지금껏 숨겨두고 있던 진실을 밝히도록 만든다. 시어머니와 동서로부터 자기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로부터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지금껏 진실을 감추도록 그녀를 옭죄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났으니 마음이라도 편하고자 감추었던 모든 사실을 속시원히 털어놓으려 한다.

차리리 시어머니 앞에서 사실을 두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순진한 것도 뻔뻔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만큼 간절했을 뿐이다. 모든 진실을 듣고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용서해 주기를 전같이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그것은 방귀남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먼저 솔직하게 방귀남에게도 진실을 밝히고 싶어 했었다. 남편 방정훈이 그것을 말렸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다. 자유롭고 싶다. 아예 미움받고 싶다. 용서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미움받는 쪽이 마음이 편하겠다. 최소한 죄로부터는 홀가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죄만큼 미움받고 원망을 듣는다.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를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 역시 이기다. 자기가 좋으려는 것이다. 자기가 편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차윤희가 직접 장양실을 찾아가 약속을 받아냈던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할머니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최대한 감추라. 그것은 차윤희가 장양실에게 주는 벌이었다. 방귀남(유준상 분)과 방장수(장용 분) 두 부자가 장양실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평생을 죄를 끌어안고, 그 죄를 마주하며, 용서도 받지 못하고 미움도 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라. 기만에 대한 벌이다.

그런데 면죄부를 받았다. 이혼을 하라 한다. 다시 보지 말자고 말한다. 시어머니가 건넨 우황청심원이 장양실의 결심을 돕는다. 방정훈과 이혼하고 엄청애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회사에서 자기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을 미룰 것을 요구하는 남편에 대해서도 더 이상 거짓된 삶은 싫다. 차윤희가 엄청애의 뒤를 따르는 이유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것은 장양실 자신만을 위한 일이다. 엄청애에게 상처가 되고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 그런 장양실의 이기를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차세광(강민혁 분)이나 방말숙(오연서 분)이나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누구나 유치해지는 것일까? 차윤희 앞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비련의 연인을 연기해 보인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함에도 외부의 강압에 의해 그 사랑을 시험받는다. 헤어지라. 만나지 마라. 차윤희는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마녀가 된다. 누구보다 이성에 대해 자유롭고 익숙하던 두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웃긴다.

방일숙(양정아 분)이 드디어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게 되려는 모양이다. 윤빈(김원준 분)이 직접 찾아와 고마움을 표하고 방일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힘이 되었다. 출연료까지 전부 고마움의 표시로 방일숙에게 건네고 있었다. 방일숙이 마침내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엄나에게 건네려 한다. 그제서야 방일숙의 책상에 놓인 매니저가 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엄청애의 눈에 뜨인 것은 무슨 조화일까?

지금의 아이돌의 팬들이 팬에서 자기 아이돌의 매니저가 된 방일숙을 영웅으로 떠받든다. 팬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돌의 몰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돌이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은 팬으로서 끝까지 그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이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그렇게 생각한다. 매니저가 되어 다시 만난다. 꿈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도 변치 않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라는 것은 어제의 용사들이 방일숙을 중심으로 다시 뭉쳐 과거의 순수와 열정을 일깨운다. 현역아이돌의 팬들에게는 미래이며, 어느새 일상에 묻혀 살던 또래들에게는 잊고 있던 과거일 것이다. 윤빈에게도 팬들에게도 방일숙은 더 이상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저 아줌마가 아니다.

역시나 방정배(김상호 분)의 충격요법이 통했다. 심지어 처음 얼굴을 보는 외손주에게마저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이라 말한다. 거절당한다. 거부당한다. 자기가 버렸으니 아직도 딸이고 손주지만, 자기가 버림받았으니 딸도 손주도 아니다. 간절함을 일깨운다. 그녀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할머니였다. 하지만 나서지 못한다. 사람은 때로 서로를 너무 믿어 잔인해지기도 한다. 딸을 버린 것이지 남을 버린 것은 아니다.

방이숙의 천재용에 대한 마음이 미묘해진다. 좋은 것일까? 하지만 좋다고 말조차 못하는 것은 그녀의 뿌리깊은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할머니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할머니 자신의 잘못이라 말해주고 있다. 방이숙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만 쉽게 치유되지는 않는다.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계기는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방장군(곽동연 분)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머리 나쁜 방장군이 좋았다. 누구보다 바르고 성실하지만 공부는 못한다. 여기는 잘하는데 공부는 도저히 안된다. 회사에서도 차윤희의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다툼도 갈등도 한순간에 마무리다.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뜻일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아마도 장양실과의 화해와 용서가 이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차윤희와 방말숙의 겹사돈 관계 또한 방말숙은 차윤희의 친정, 이제는 자신의 시댁이 될 가족들과도 감정을 풀어야 한다.

드라마가 무거워지고 있다. 한없이 가볍다가도 한 순간 묵직한 중력으로 마음을 끌어내리고 있다.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드라마는 더욱 아름답기만 할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하기에 비극의 무게도 더욱 커진다. 다음주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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