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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23 08:45

남자의 자격 "한 편의 로드무비, 사소한 일에 목숨걸다."

이경규와 김태원에 편중된 분량, 주상욱의 가능성을 탐색하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한 편의 로드무비였다. 떠남과 만남, 우연과 사건들, 그리고 뒤를 쫓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추적자.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놀이'를 자청해서 즐기는가를 알 수 있었다. 어느새 마음을 졸이며 멤버들을 응원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멀쩡히 넓은 길을 놔두고 전봇대와 벽 사이가 있으면 그리로 지나가고 싶은 묘한 충동을. 때로 그 틈이 너무 좁아 상당히 난감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괜히 보도블록 가운데 한 줄만을 따라 걷기도 한다. 조금 난이도가 있으면 난간 위를 걷는 묘기도 부려본다. 아슬아슬함을 즐긴다. 그 칼날 위를 걷는 그 첨예함에 매료되고 중독되고 만다.

물론 고작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으로 가려는 아주 사소한 목표일 것이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그다지 크게 손해보거나 피해입는 것이 없다. 하지만 버스에서 버스로 옮겨타는 매 순간이 그 좁은 틈의 역할을 한다. 시간에 늦지 않을까 버스 안에서 마음 졸이고, 다시 버스에 내려서는 혹시 늦지나 않을까 걸음이 바쁘다. 아예 버스가 도착하자 다음 버스가 정류장에 기다리고 있는 경우마저 있다. 1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버스는 떠나고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 김국진팀의 경우 추풍령 터미널에 겨우 3분 늦은 탓에 영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지 못하고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도전에 실패하고 느끼는 속상함이란 그같은 누적된 시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다. 처음에는 단지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버스로, 다시 버스에서 다른 버스로, 그 시간들이 누적된다. 그 순간의 긴장과 안타까움이 쌓여간다. 성취와 환호마저 쌓여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버스 한두번 타고 가는 정도라면 굳이 도전이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수많은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성공해내는 그 아슬아슬함과 짜릿함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번거롭고 힘만 들고 생기는 것 없는 도전에 달려들도록 하는 것일 게다. 바로 성공한 그 순간의 짜릿함이야 말로 이 사소한 도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공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유였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윗몸이 앞으로 숙여지기 시작했다. TV속으로 아예 들어가 버릴 기세로 매섭게 노려보며 출연자들을 다그치며 응원하고 있었다. 어서 빨리. 더 빨리. 서둘러! 뛰어! 달려! 하필 버스운전기사가 감자를 두 박스나 선물한 탓에 그것까지 들고 뛰어야 했었다. 다리를 다친 이윤석을 버스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윤형빈이 들쳐업고 뛰고 있었다. 늦으면 이대로 버스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면 미션은 끝이다. 추풍령터미널에서 3분 늦은 것으로 그동안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남자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누구나 승자가 되고 싶어하지 패자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작더라도 성공을 거두고 싶어한다.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사이 그 크기마저 점차 커지게 된다.

사람들이 있었다. 연예인인 멤버들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한다. 살갑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환호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노래를 시키고 노래를 부른다. 선물도 받는다. 어느 버스운전기사가 선물이라며 건넨 감자가 짐이 되었다. 들고 뛰느라 젊은 주상욱마저 지치고, 나중에는 이경규와 김태원마저 나서서 그것을 들고 나른다. 어느 시민에게서 받은 빵과 블루베리잼은 이경규의 훌륭한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었다. 매순간마다 이경규의 입에는 잼이 발라진 빵이 물려 있었다. 주상욱을 몰라보던 아주머니에서, 주상욱의 성을 '최'씨로 바꿔 부르던 아주머니, 중국에서 온 젊은 여성은 주상욱이 한자로 이름을 써주자 그제서야 알아본다. 주상욱 수난의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다시 살갑게 어울려주고. 여행이란 만남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나고, 새로운 하늘과 땅,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난다.

아쉬움은 있었다. 거진 방송의 3분의 2가 이경규와 김태원, 주상욱 팀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웃음도 거의 이경규와 김태원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하다못해 버스 안에서 쓰러져 자는 것조차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만든다. 약다린 물과 햄버거와 빵과 공황장애와 조울증의 약들. 짓궂게 주상욱을 놀리고 살갑게 주민들과 어울린다. 아예 버스안 승객 한 사람을 붙잡아 놓고는 고백을 강요하며 연애학강론을 시작한다. 감자박스를 들고 뛰는 것조차 그림이 되고 잇었다. 그러나 반면 김국진, 이윤석, 김준호, 윤형빈 등은 어떠했을까?

지나칠 정도로 이경규와 김태원에 대한 프로그램의 의존도가 높다. 거의 이경규와 김태원이 대부분의 분량을 만든다. 김태원조차 이경규에 의지하는 것이 크니 거의 이경규 원맨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발이 필요하다. 이경규 이외에 다른 공격의 축이 필요하다. 최소한 팀을 둘로 나눈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김준호는 아직 미지수고 주상욱 역시 이경규와 김태원과 함께라면 샌드백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경규와 김태원과 함께 있으니 확실히 주상욱도 분량을 만든다. 그조차 공격수의 역할은 아닐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경규와 김태원만 보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이 두 사람의 콤비가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큰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두 사람만 따로 떼었을 때 나머지의 방송분량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같다. 너무 점잖다. 너무 착하다. 김준호마저 물들었다. 아니 아직은 어색해서 조심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기대한 것은 같은 개그콘서트 출신인 김준호와 윤형빈이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김국진은 공격수 역할이 아니다. 그러나 공격수가 있다면 훌륭히 뒤에서 그것을 조율해낼 수는 있다. 너무 기울었다. 미션을 성공한 것도 이경규조였는데 재미와 분량도 이경규조에 더 있었다. 고민이 필요하다. 멤버든 작가든 스텝이든.

아무튼 버스 안에서 쓰러져 잠든 이경규와 김태원의 모습조차 방송분량이 되는 것이 바로 <남자의 자격>만의 매력일 것이다. 아무것도 않고 쓰러져 방심한 채 자고 있는데 그것이 그리 우습다. 벌써 쉰을 바라본다. 쉰을 넘어섰다. 나이 서른을 넘기면 하루가 다르다. 젊은 주상욱조차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 하물며 이경규와 김태원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분량을 만들려 말과 몸짓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저 대단할 뿐. 주상욱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지치기는 더 지쳤을 테지만 마지막까지 방송을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

만만한 동생이다. 젊다. 잘생겼다. 배우로서 인지도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 헐렁하다. 빈틈이 보인다. 그 빈틈을 형들은 놓치지 않는다. 김준호에게도 주상욱에게와 같은 공격이 필요했다. 어느새 주상욱의 캐릭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굴욕에 익숙하다. 당하는데 익숙하다. 당황하며 짓는 웃음이 역시 배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성공적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 번 요구해 본다.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편중되기는 했지만 대신 매순간 소소하게 꾸준히 웃겨주었다. 피식피식 웃다가 껄껄 소리내어 웃는다. 마음을 조이며 함께 그들과 다음 버스를 향해 달려간다. 김국진조가 아쉽다. 김준호가 아깝다. 그야말로 예능다운 시간이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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