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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18 09:40

추적자 "아빠는 무죄야! 백홍석 웃다."

사라진 강동윤, 세상은 여전히 탈없이 돌아간다.

▲ 사진='추적자'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판사가 백홍석(손현주 분)에 대한 판결문을 읽고 있던 그때 재판정의 문이 열리며 죽은 딸 백수정(이혜인 분)이 백홍석에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말한다. 밝게 웃으며.

"아빠는 무죄야!"

딸을 향한 아빠의 지극한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그 순간 딸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온 아버지의 진심이 그 보답을 얻게 된다. 딸만 알아주면 되었다. 딸이 알아주니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그렇게 서정적이기만 한 장면이었겠는가. 그러기에는 이미 백홍석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겠다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원인이 죄를 짓고서도 벌을 받지 않으려는 데에 있다면서. 그런데도 그는 정작 딸이 무죄라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차라리 부끄러워한다. 소중한 딸이기에 아빠로써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한다. 사랑하는 딸이기에 아빠로써 작은 죄조차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마주보지 못한다. 하물며 사람을 죽였다. 한 사람이 자신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비통해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백홍석이 자신에 대한 모든 변호를 포기하고 순순히 죗값을 치르겠다 했던 것은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기꺼이에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겠다. 죄를 짓고서도 벌을 받지 않으려 한 것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다. 그러는 한 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한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딸 백수정에게 한 점 부끄럼없는 당당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써 딸을 만나고 싶다.

딸이 선물한 면도기로 깨끗이 면도하고 법정에 나선 백홍석의 모습은 그것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딸을 위해 아빠로써 해야 할 일들은 거의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에 대한 것 뿐이다. 모든 죗값을 치르고 다시 깨끗한 몸이 되어 딸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딸과 아내에게로 돌아와 그들을 보고자 한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그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 딸과 아내의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15년이란다. 강동윤(김상중 분)의 판결이 조금 더 빨랐으니 백홍석 또한 유치장에서 강동윤의 판결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사람을 죽였다. 수사도중 도주하기도 했다. 당연히 법정에 총을 들고 난입했으니 법정모독일 것이고, 재판이라는 중요한 절차를 방해했으니 특수공무집행방해일 것이다. 유죄일 것이다. 죗값을 치르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강동윤보다 형량이 더 나오는가? 거의 두 배다. 어째서?

검사 박민찬(송영규 분)의 통쾌한 웃음은 이번 길고 지루했던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박민찬 또한 백홍석과 최정우(류승수 분)를 괴롭히던 이 사회의 부조리의 한 부분이었다. 그가 웃고 있다. 법이 백홍석의 죄가 강동윤보다 더 크다고 선고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몸까지 뒤로 젖히고 웃고 있었다.

딸 백수정이 느닷없이 재판정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사람을 죽였다. 무죄. 법정을 모독했다. 무죄. 공무집행을 방해했다. 무죄. 도주했다. 무죄. 그의 양심이 내린 선고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었다. 아무도 믿지 말라며 아내를 다그치던 그때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딸을 위해서는 그것이 불가피한 최선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법은 언제나 자신의 딸 백수정의 편이 아니었다. 다시 확인한다. 자신이 옳았다.

아들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고, 큰딸은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로 경찰에 체포되고, 작은 딸은 이제 그의 품을 떠나 나가 살려 한다. 홀로 남은 큰 집에서 서회장(박근형 분)은 총리내정자의 전화를 받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고 상심한 가운데서도 서회장은 그를 위해 새로운 한 걸음을 시작한다. 그것은 그가 만든 성이며 그가 스스로 갇힌 감옥이었다.

시린 현실일 것이다. 가족을 위해 꿈조차 갖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돈을 위해 그 가족을 저버리는 서회장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들 서영욱(전노민 분)마저 희생시키려 한다.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손에 넣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바람마저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일까?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남자의 전부라 하면서도 그는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려 돈을 벌고 있는 것일까?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그의 곁에는 지금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어렸을 적 서로 의지하며 가난을 이겨냈던 형제들도, 사랑하는 아들도, 역시 사랑하는 딸들도. 딸이 자기의 앞에서 아들이 가진 회사지분을 넘겨달라 말했을 때 서회장이 느낀 감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는데 눈 앞에서 아들과 딸은 그 돈을 가지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아들은 딸의 남편을 감옥으로 보내고, 딸은 아들을 청문회에 서도록 만들고 차라리 일찌감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동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면 강동윤 역시 죄를 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닭의 목을 비튼다고 새벽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명종을 부숴도 해는 떠오를 것이고 출근시간은 다가올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채로도 서회장은 다시 원래의 자신의 삶을 시작하고, 백홍석 역시 원래의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법은 자신의 편이 아니며,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최정우의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울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최정우는  아니 대한민국의 법은 끝까지 백홍석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법을 믿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법이 유죄로 판결했지만 백홍석의 무의식은 스스로 무죄를 믿고 있었다.

고작 강동윤 하나다. 서영욱조차 따위다. 서지수는 그조차도 되지 못한다. 세상은 그렇게 무심히 흘러간다. 세상을 만든 당사자마저 삼켜가며.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서회장이지만 지금 이 순간 서회장 역시 그 일부가 된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백수정법이 있지만 세상엔 법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간다.

거짓이란 이렇게 허무하다. 거짓이란 허구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써 실재하는 것처럼 꾸민다. 거짓이 거짓을 쌓고, 다시 거짓으로 거짓을 엮는다. 그러나 실재하는 세계에서 거짓이란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거칠 것 없던 신혜라(장신영 분)이건만 최정우 앞에서 꼼짝없이 궁지로 내몰리고 만다. 거짓을 가려주던 권력이 사라지자 무력하게 감추었던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 한 순간에 죄인이 되어 처벌을 두려워하는 처지가 된다.

사람이 권력을 가지려 하는 이유일 것이다. 성벽을 쌓는다. 두터운 그늘을 드리운다. 진실의 빛은 그 안까지 비추지 못한다. 두터운 그늘은 진실마저 거짓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크고 넓고 두껍다. 신혜라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최정우는 그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강동윤이 유력한 대선후보로써 남아있었을 때 최정우와 백홍석 등은 무력감만을 곱씹어야 했었다. 그러나 권력이라고 하는 보호막이 걷혔을 때 알몸으로 진실 앞에 마주한 그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있을 뿐이었다. 강동윤은 징역을 살고 신혜라는 그토록 당당하던 모습에서 쫓기듯 진실을 털어놓고 만다.

사람이 강한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약한 것도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위해 강동윤은 죄를 저질렀다. 신혜라도 곁에서 죄를 짓는 것을 도왔다. 마지막 순간 신혜라는 끝내 최정우에게 굴복하고 만다. 10년 뒤라도 죗값을 치르고 나면 그녀에게도 서회장이 준비한 커다란 보답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러나 그러자면 강동윤이 살아남으라 말한 뜻마저 저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꿈이기에 더욱 강하고, 그렇게 때문에 한결같이 약하다. 장병호(전국환 분)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꿈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

강동윤에게 대사가 없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권력이 사라진 강동윤이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더 이상 누구도 강동윤이 백홍석과 그 딸에게 사과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백홍석 역시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모두가 그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유일하게 그의 존재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 고작 신혜라 정도다.

강동윤이 악이었는가? 그가 이 모든 사건들의 원흉이었는가? 그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지는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마지막회 강동윤은 회상장면을 제외하고 겨우 단 한 번 얼굴을 비추고 말았을 뿐이다. 이름조차 거의 거론되고 있지 않다. 강동윤은 처벌받는다. 무심하게 지나간다. 박민찬이 웃는다. 백홍석이 딸의 모습을 본다.

힘든 싸움이었다. 어렵게 거둔 승리였다. 그러나 승자는 따로 있다. 웃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고개를 넘으니 첩첩이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 것이 보인다. 백홍석은 그조차 보지 못한다. 15년을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싸움은 없다.

재미있었다. 의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무거웠다. 문학적인 작품의 대사가 무거웠고, 배우들의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연기가 무거웠다. 작품이 무거웠다. 여운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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