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26 08:53

추적자 "친절한 강동윤과 불편한 진실, 이건 어른들의 싸움이야!"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묻혀 사라지다, 진실의 가치를 묻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다른 것이다. 사실은 실재한다. 진실은 존재한다. 그리고 현실에 작용하는 것은 다름아닌 존재다. 무엇이 사실인가? 그보다는 무엇이 진실인가? 아니 누가 진실을 만들어내는가? 짜장면이라고 써왔어도 자장면이어야 하고, 닭도리탕을 먹어왔어도 닭볶음탕이라 해야 한다.

받아쓰기만 하지 후속취재는 하지 않더라. 비단 언론에 대해서만 하는 말일까? 과거 어느 연예인에 대해 씌워졌던 누명이 아직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아이가 쉽게 말을 배우는 것은 판단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외워서 흉내내는 것 뿐이다. 그것이 어느새 진실이 된다. 사람이 처음 받아들인 정보도 마찬가지다. 받아들이고, 외워서 흉내낸다. 다만 두번째부터는 사람도 판단을 하게 된다. 말을 배우기 어려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을 겨누고 있는 백홍석(손현주 분) 앞에서 강동윤(김상중 분)은 당당히 말한다. 물론 거짓이다. 하지만 거짓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백홍석만이 안다. 그리고 백홍석에게는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백홍석이 입을 열기 전에 강동윤이 먼저 알린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 된다. 백홍석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사실과 백홍석이 미처 대답할 수 없는 몇 가지 거짓을 더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실로써 여겨진다. 진실이란 어쩌면 더 능숙한 거짓말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하기는 백홍석의 가족도 그랬다. 누구도 힘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일개 말단형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따위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듣는 것은 전직 대법관이던 장병호(전국환 분)의 전력이었다. 한류스타인 PK준의 명성이었다. 그리고 장병호와 PK준에게는 없는 진실마저 만들어낼 힘이 있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죽음과 함께 묻혔다. 백홍석과 가족들의 행복했던 시절의 소중했던 기억마저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며 모조리 파헤쳐지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이 행복했었다는 기억조차 백홍석 자신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거짓인가? 단지 믿고 싶을 뿐인가? 믿어야만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저 믿고 안 믿고의 문제라면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닐 것이다. 진실이란 인정이다. 여러 근거와 합리적 추론을 통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이성은 의심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이 진실임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가? 세상에 진실이란 너무 쉽고 거짓 또한 너무나 쉽다. 그래서 세상도 너무 쉽다. 살아가는 것도 쉽다. 스스로 백홍석의 처지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백홍석은 운이 없었다.

서회장네 막내 서지원(고준희 분)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강동윤은 역시 좋은 사람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동안 자기에게 진심으로 대해준 처제 서지원에 대한 고마움이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일일이 상세하게 풀어 설명해준다. 거짓된 선의로써 기만하려 하기보다 차라리 잔인한 진실을 그대로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든다. 도대체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강동윤이 그동안 끊임없이 되뇌어왔던 절망과 좌절의, 그로 인한 포기와 체념의 말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것이 당신이 사는 현실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아왔다. 믿고 싶은 것만 보았고 믿어왔다. 이면에 다른 진실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어렴풋 알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웠다. 진실을 알기가. 진실을 알고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래서 도망쳐왔다. 최정우(류승수 분) 검사가 그녀의 출신을 들먹일 때마다 그녀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고 그래서 여전히 그렇게만 믿고 여기고 있었다면 그리 예민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 어리광을 부리려 언니와 형부를 찾아갔고 진실 앞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녀가 믿고 있던 그저 행복하기만 하던 시절의 아름답던 기억이 산산히 부서져간다. 어른이 된다.

어쩌면 상징적이었을 것이다. 드라마가 보내는 질타였을 것이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여기고 있는, 그래서 믿고 있는 그것들은 단지 당신의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이면을 봐야 한다. 옆도 보고 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죄도 악도 온갖 더럽고 추악한 진실도 바로 보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같은 그늘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그같은 그림자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아이가 보는 세계가 평면이라면 어른이 보는 세계는 너무나 깊고 두터운 입체다.

중학교 수준이면 배웠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먼저 배우고 깨달았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여전히 평면의 세계에서 자기가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만을 그저 여기고 살아간다. 그것이 전부라 진실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백홍석과 그 가족들을 절망으로 밀어넣는 바로 그들처럼.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다시 나락으로 밀어떨어뜨리는 그같은 죄없는 다수들처럼. 저들이 거짓을 진실로 만든다면 그 진실을 믿고 또다른 진실을 망각속에 묻어버리는 것도 그들 자신인 것이다. 드라마는 결코 시청자 자신일 대중에 대해서조차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답답해지는 이유일 터다. 친절하지 않은 진실이 이미 알고 있는 아픈 자각을 일깨운다.

분명 순수는 어리석음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순진하다는 것은 착하다는 것이 아니라 죄도 악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다. 선하다는 것은 그것을 모두 아우르고 감당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서지원은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내고 바로 설 수 있을까? 다행히 그녀에게는 그 모든 과정을 아프도록 겪어 온 검사 최정우가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속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순과 부조리들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다수 시청자들에게는 누가 있어줄까? 무엇이 그것을 대신해줄까? 역시 강동윤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누군가 강하게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그가 대신해서 진실을 밝히고 자신들에 들려주기를. 과연 어떨까?

신혜라(장신영 분)가 끝내 강동윤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강동윤은 아니라 하겠지만 그것은 분명 신혜라를 포기하는 결정이었다. 그것은 신혜라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다. 서지수(김성령 분)로 하여금 강동윤을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신혜라는 강동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서지수가 강동윤의 아내로서 강동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또한 신혜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만이 강동윤에게 의미있고 싶다. 오로지 자신만이 강동윤을 위해 중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는 그녀 또한 또다른 수많은 희생양들처럼 강동윤에게 버려지는 것이었다. 신혜라에게는 강동윤이 어쩌면 전부였을 테지만 강동윤에게는 신혜라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신혜라가 사라진 자리를 어느새 새로운 비서가 대신한다. 신혜라 한 사람 없는 것이 신혜라의 생각처럼 강동윤에게 결정적이지는 않다.

물론 강동윤도 신혜라를 살리고자 했다. 그녀를 다시 그곳에서 꺼내주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서회장(박근형 분)과 타협을 시도하는 것도, 법무무장관을 통해 신혜라의 담당검사를 바꿔주는 것도 강동윤으로서는 아직은 무리였다. 참으로 저미는 말이다. 생각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강동윤에게 한 편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백홍석의 딸을 죽이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조차 강동윤은 꿈과 좌절의 경계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에는 서회장은 너무 강한 적이었고, 그가 이루고자 하는 꿈은 너무 간절했다. 그래서 신혜라를 포기한다. 그렇다면 신혜라의 선택은? 예고편이기에 어쩌면 또다른 반전을 생각해 본다. 신혜라는 약하지 않다.

오히려 최정우의 선택을 지켜보게 된다. 서지원과 인연이 있다. 신혜라의 수사를 담당했다. 그런데 신혜라가 풀려나와 있다. 드라마는 그동안 아프도록 적나라한 배신을 수도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진실을 배신한다. 정의를 배신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는 과연 마지막까지 정의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해피엔드 아닌 해피엔드라는 것이 그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동윤이 승리해도, 혹은 강동윤이 패배해도 드라마는 결코 해피엔드일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은 결코 해피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마저 불신에 우울함에 빠져들게 만드는 드라마일 것이다.

아버지보다도 오히려 더 항상 자신의 편이 되어주던 백형사였다고 말한다. 그 정도의 관계일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도 무조건 백홍석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다시는 황반장과 백홍석과 같이 설렁탕을 먹을 일이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조형사(박효주 분)와 박용식(조재윤 분)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 미운 정도 정이라 말한다. 조형사도 마음의 상처가 많다. 하여튼 하필 백홍석과 조형사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박용식과 같은 양아치밖에는 없다. 매우 상징적이다.

하기는 어쩌면 박용식이라는 인물 자체도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고작 술마시고 교장과 다투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뒤가 무서워서 박용식은 도망쳐 범죄자가 되었다. 만일 그때 교장이 관용을 말했다면. 이해와 용서를 말해주었다면. 법이 엄하면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법이 엄하면 죄만 늘어날 뿐이다. 백홍석을 극단으로 몰아간 것도 결국 백홍석과 그 가족에게 한 번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은 이 사회와 이 사회의 법, 제도였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강동윤의 앞에 선 백홍석에게 총을 쏘고 만다. 박용식이 백홍석과 함께 있는 이유다.

서회장은 너무 크고 강하다. 서영욱은 그런 서회장을 등에 업고 있다. 백홍석에게는 저 위에 있는데 강동윤은 서회장 앞에서 저 아래에 있을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백홍석을 동정하면서 강동윤을 연민한다. 모순된 감정의 이유다. 서지원에게도 말했듯 그것이 세상이다. 선이 선이 아니고 악이 악이 아니다. 악이 죄를 저지르는가? 세상이 악을 만드는가? 오랜 물음일 터다.

강동윤에게 다시 위기가 다가온다. 백홍석에게도 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강동윤의 위기가 백홍석에게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 백홍석의 위기도 강동윤에게 기회가 되지 않는다. 기회를 얻는 사람은 따로 있다. 위기에 놓이는 사람도 따로 있다. 서늘하다. 여름도 깊어지고 있다. 무겁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