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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25 09:07

남자의 자격 "한우와 남자들,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 잃었던 길을 다시 찾다."

가장 재미있던 무렵을 떠올리게 만드는 왁자함과 소란함,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최근의 <남자의 자격>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한우홍보를 위한 공익다큐멘터리로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되리라. 그러나 그같은 섣부른 예단이 미안해질 정도로 이번주 <남자의 자격>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짧았다.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물론 정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과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각 멤버 개인의 개성과 더불어 그들의 인간적인 관계가 하나의 서사적 구조를 완성해간다. 마침내 각자가 선택한 부위와 조리법을 가지고 심사위원 앞에서 평가받는 모습은 한 편의 유쾌한 단편드라마의 시끌한 대미였을 것이다. 그렇게 수다스럽고 말이 많았다.

바로 이 맛이었다. 이경규는 큰형이었다. 김태원은 큰형 아래 얄미운 작은형이었다. 큰형에 맞서던 또다른 작은형 김국진은 요즘 헛발질이 잦다. 이경규킬러이지만 성실하고 차분한 외모와는 다르게 의외의 부분에서 허술한 모습을 보인다. 윤형빈은 자학하고, 전현무는 깐족거리고 이윤석은 여전히 그저 성실하기만 하다. 먹는 것 좋아하는 양준혁에게 다시 예전의 대구댁의 별명이 돌아와 붙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만드는 것도 잘한다. 미션에 따라 먹는 것과 관련해서 활약을 기대해 본다.

주고 받고, 치고 받고, 드라마란 주인공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있으면 조연이 있다. 악역도 있고 선역도 있다. 역시 혼자서도 개인플레이가 가능한 것은 이경규와 김태원, 김국진 정도다. 여기에 한 사람 더한다면 이윤석도 추가할 수 있다. 의외로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중요한 여백을 맡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이윤석일 것이다. 가장 성실하고 가장 열심이다. 그다지 큰 웃음을 주지는 못하지만 어떤 땀내나는 열기같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그런 과정조차 어눌하기 이를 데 없다. 어째서 그가 개그맨인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설마 고기를 굽는데 온도계와 초시계까지 동원할 줄이야. 그런 만화가 있었다. 그런 소재의 코미디가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윤석이라면 현실에서도 그렇게 할 것 같다. 전문가가 고기를 굽는 것을 보면서 온도를 재고, 다시 시간을 재고,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해 연습하면서 그 표준을 정한다. 이윤석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하필 경연이 펼쳐지는 장소가 실내가 아닌 야외였다는 것이다. 실내와는 다른 다양한 변수가 이윤석의 노력을 무위로 돌린다. 그러나 그래서 다시 웃을 수 있다. 이윤석의 상상밖의 성실함에 놀라면서, 그런 대단한 성실함조차 방향을 잃고 때와 장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웃음을 흘리고 만다. 무엇보다 내 일이 아니다.

우승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준비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전혀 예기치못한 변수들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안타까운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무엇보다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도 끝까지 요리를 마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었다. 요리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같은 정성과 노력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던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프로요리사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고, 불특정다수의 일반인까지 동원된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저 <남자의 자격> 멤버들끼리 소소하게 겨루는 자리다. 누가 우승하고 못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일곱 멤버 가운데 먹을 수 있게 준비한 것은 양준혁과 이윤석 두 사람 밖에 없었다. 평가는 양준혁이 더 좋았지만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이윤석이었다.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이경규는 오만했다.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그동안 이경규가 보여온 모습이 그랬다. 더구나 요리다. 요리는 이경규의 또다른 전문분야 가운데 하나다. 하기는 아무것도 없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도리어 심사위원을 타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던 김태원은 어떻던가. 김국진도 이윤석 못지 않은 성실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 너무나 서툰 귀엽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만해도 되는 것은 이경규다. 거만해도 밉지 않은 것이 김태원이다. 실수하는 모습조차 김국진은 귀엽다. 그리고 그런 세 핵심멤버를 중심으로 뭉치는 나머지 또다른 셋이 있었다. 자학하는 성실함의 윤형빈과 역시나 말만 앞세우는 허당의 깐족거림 전현무, 그리고 식신 대구댁 양준혁. 물론 마무리는 심사를 하고 남은 재료들로 전문가들이 직접 솜씨를 발휘해 나누어먹는 것이다. 누가 이긴들 어떤가? <남자의 자격>이다.

전문가를 찾아가고, 혼자서 연구를 하고, 지인들과 단골집을 찾아가고, 오랜 인연의 힘을 빌리고, 참 개성들도 다양하다. 그 와중에도 사람을 찾는 것은 김태원답다. 혼자서 연구를 하는 것은 이경규와 이윤석의 집요함이고 성실함이다. 과거 마라톤 미션에서도 두 사람은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고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고 있었다. 앙숙답게 김국진과 전현무 역시 나란히 전문가를 찾아가고, 윤형빈 또한 성실한 인간관계가 장점이다. 홀로 거창한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던 양준혁의 모습에서 얼른 좋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하는 공통된 바람을 가져본다. 화려한 아침상이 쓸쓸하다.

한우에 대한 내용 역시 뻔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맛깔났다. 이제는 지겹까지 한 내용이었다. 하도 반복해서 보고 듣다 보니 이제는 거의 외울 정도까지 되어 버렸다. 한우는 맛있다. 한우는 우수하다. 그러나 역시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고, 보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직접 고기의 부위를 나누고, 그것을 최적의 조리법으로 조리해 먹는다. 굽는 것에도 도가 있다. TV너머로도 한우의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마침 맛있게 구워 먹고 있던 돼지고기가 처량해 보일 정도였다. 물론 돼지고기도 무척 맛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한우 뿐이었다.

오늘은 반드시 한우를 먹으리라. 지갑이 서운하고 뱃살이 서럽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마블링을 만나 마음껏 회포를 풀어보리라. 사람이 살아가며 순수하게 즐기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먹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이며 가장 직접적인 본능이 바로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본능이다. 더구나 누군가 곁에 있다면. 혼자서는 또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 한우이기도 하다. 경연을 마치고 난 뒤의 모습처럼 서로 어울려 구워먹어야 제맛이 난다. 반드시 먹으리라.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무튼 오랜만에 잃었던 <남자의 자격>을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헤어진 친구를 만난 것 마냥 그래서 반가웠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삼 제작진에 더 분발과 노력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만한 저력이 있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살리고 죽이는 것이 그들에 달렸다.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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