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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17 10:21

넝쿨째 굴러온 당신 "장양실의 뻔뻔함과 자기연민, 죄의 무게에 치이다."

방이숙과 방말숙의 반쪽찾기, 방일숙의 위기가 다가오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람은 악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에 악해진다. 약한 것이다. 죄를 마주하기가 두렵기에 차라리 악해지려 한다. 독해지려 하고, 뻔뻔해지려 하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죄가 무겁다. 죄가 무섭다. 차마 감당하기조차 두렵다. 죄가 어지간만 했으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 있었다면. 법이 엄하면 사람은 비굴해진다. 벌이 가혹하면 사람은 오로지 그 벌을 피할 생각만을 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죄가 무겁고 클 때 사람은 아예 용서받을 생각 자체를 않는다. 그래도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받고 싶다. 안 되지 않은가?

그것은 마지막 안간힘이었다.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았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다. 그러나 가엾이 여겨달라. 가엾이 여겨 용서해달라. 하지만 그래서 더 용서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쌍해지기 위해 장양실(나영희 분)은 그 선을 넘어 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졸지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이역만리 미국으로 입양되어야 했던 방귀남(유준상 분)의 처지와 같을까?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취해버린다.

"나는 불쌍해!"
"나는 피해자야!"

그래서 용서는 당연해진다. 용서해주지 않는 상대가 야속해진다. 그러면서 뻔뻔해진다. 비록 용서는 아니지만 일단 묻어두자는 말에 장양실은 용기를 얻는다. 죄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죄의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지키고 싶어한다. 다시 죄와 마주할 수는 없으므로.

거기에는 장양실의 남편 방정훈(송금식 분)의 잘못도 크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를 용서해 줄 수 있었다면. 다만 한 사람만이라도 그녀의 잘못을 이해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정작 용서는 못하더라도 그녀를 보듬고 이해해주어야 할 남편 방정훈이 오히려 먼저 앞장서서 그녀를 오해하고 만다. 터무니없이 오해하고 그녀를 몰아세운다. 그녀는 학습한다. 만일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녀의 진심은 누구로부터도 이해되지도 인정받지도 못할 것이다. 공포는 더욱 그녀를 몰아세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용서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방귀남 자신이 있다. 그로 인해 고통받아 온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송수진(박수진 분)이 데리고 온 아이에게서 방귀남은 그 무렵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행복했을 것이라 말하는 장양실을 과연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더라도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그녀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을 알기에 다시 장양실 역시 용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을 지키는데만 전념하게 된다. 비굴한 것이다. 비겁한 것이다.

오히려 죄가 크기에 용서란 감히 생각조차 못한다. 차라리 죄가 무겁기에 용서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없다. 희망도 없다. 자신의 죄에 절망하며 그로 인해 자포자기하게 된다. 비루한 자신을 부여잡는다. 비굴한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이미 버린 몸이다. 남편으로부터도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는데 더 이상 나빠질 것이 무에 있을까? 사람이 악에 빠져드는 이유다. 방귀남은 평생을 그 죄로 고통속에 살라고 묻어둘 것을 말했지만 인간이란 의외로 뻔뻔하면서도 강하다. 약하기 때문에 더욱 뻔뻔해지고 강해져야 한다.

악역이 되는 것일까? 비로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도 악역이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하기는 이미 장양실의 남편 방정훈은 악인이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태연히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인다. 아내를 버리려 한다. 그것이 더욱 장양실을 절망케 하고 죄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그만한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방이숙(조윤희 분)과 방말숙(오연서 분) 자매가 사랑을 한다. 흔히 사랑을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에 비유한다. 말 그대로다. 방이숙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찾으려 한다. 하필 오빠를 잃어버린 날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의 아닌 타의로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여성이다.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낙천과 희망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방말숙 역시 오빠를 잃어버리고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방치되다시피 했었다. 물론 가족이니까 신경쓴다고 쓰기는 했을 것이다. 관심도 갖는다고 갖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난다. 갓난아기가 젖을 빨듯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들에게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란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이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시기를 잃었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명품과 외모, 그리고 남자들의 관심을 통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을 대신할만한 한 남자를 만났다. 진정한 자신을 되찾게 해 줄, 진정한 자신을 보아줄 사람이다.

그럼에도 방이숙이 규현(강동호 분)에게서 물러서고 마는 이유다. 아직 확신이 없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자신이 없다. 천재용(이희준 분)의 말에 발끈하는 것이 그래서다. 오히려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여기고 있는 부분을 지적받았을 때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방이숙의 열등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에 비하면 방말숙은 무모할 정도로 용기가 있다. 그녀는 기꺼이 차세광(강민혁 분) 앞에서 알몸이 될 수 있다.

이 역시 장양실의 실수가 낳은 죄일 것이다. 더구나 과연 그것은 실수였는가? 방귀남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이 혼란을 더한다. 어쩌면 장양실 자신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가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믿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죄와 마주해야 한다. 아직도 모두는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방일숙(양정아 분)을 불행하게 만든 것도 방귀남을 잃은데 따른 가족의 구속과 억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는 지금도 그녀를 품안에 가둬두려고만 한다.

하여튼 그래서 천재용도 불쌍하다 할 것이다. 항상 그 만큼이 넘친다. 그리고 또한 항상 그 만큼이 모자른다. 넘치면 넘치는대로 실례고, 모자르면 모자르는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더구나 방이숙과 같이 열등감의 덩어리라고 한다면 더욱 고전이 예상된다. 쉽게 상처입고, 그러면서도 두려움에 쉽게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규현은 그런 점에서 10년도 더 된 오랜 사이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그녀는 구분하지 못한다. 어미의 품에서 일찍 떨어진 새끼는 솜의 푹신함과 어미의 포근함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방이숙은 과연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민지영(진경 분)과 차세중(김용희 분)는 그야말로 천생연분 커플이라 할 것이다. 그동안 차세중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러나 차세중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벌받는 도중에도 말을 못하니 손짓으로 사랑을 전하는 차세중과 수줍어 하면서도 몸짓으로 응하는 민지영의 모습이 살떨리도록 부럽다. 결혼은 사랑이 아닌 현실이라는 말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라고나 할까? 의외로 로맨티스트인 민지영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만다.

과연 방장수(장용 분)를 찾아가 차윤희가 하려는 말의 내용은 무얼까? 언제쯤에나 차세광이 밉살맞은 시누이 방말숙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차윤희는 알게 될까? 천재용의 마음은 방이숙에게 전해지게 될까? 무엇보다 장양실은 자신의 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너무 지쳤다. 독해지기에도 이미 너무 지쳐 있다. 그런데도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궁지로 내몰린다.

방일숙의 전남편 남남구(김형범 분)이 새로운 애인과 만나는 모습을 하필 청애가 보게 된다. 방일숙의 꿈과 위기가 함께 찾아온다. 이번만은 차윤희가 막았다. 점입가경을 달린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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