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08 09:11

유령 "악플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악의없는 죄와 죄 없는 일상이 현실의 살인과 만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악플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살인은 아냐. 살인은 미친 짓이야!"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악플. 기껏해야 게시물. 고작해야 말이고 글이지 않은가. 어차피 악플을 단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다. 신효정(이솜 분)이 죽임을 당하고 태연히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던 '신진요'의 회원들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다지 진지할 것도 심각할 것도 없는 그저 한 순간의 유희였을 뿐이다. 그렇게 가방을 사고,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맛집에서 맛난 것을 먹고,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만남을 기뻐한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살인자도 명확하지 않은가?

하지만 과연 사람의 목숨을 끊어야 그들은 살인자인 것일까? 그토록 간절하던 꿈이었다. 그토록 간절히 이루고자 했던 꿈이었다. 그 꿈 앞에서 신효정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었기에 양승재(강성민 분)는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신효정을 죽이기 전에 먼저 그녀의 꿈을 끊어 놓았다. 그녀의 자존을, 존엄을, 희망을 짓밟았다. 그것은 무죄인가?

하필 인터넷신문사의 기자라는 신분이었을 게다. 죽은 박기영(최다니엘 분)이 최승연(송하윤 분)에게 그렇게 말한 적 있었다. 차라리 소설을 쓰라. 무책임하게 생산되는 기사란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도 언론의 자유라는 이유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 표현의 자유란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도. 기사는 잊혀진다. 말이란 흘러간다. 그래서 사람이 죽더라도 죽은 사람 자신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자살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타살로 설정한 부분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나마 자살이었다면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늘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살로 죽었다면 조금은 미안해하고 죄책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들의 진정한 속내는 감추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살인자가 있기에 그들은 솔직해질 수 있다. 악인조차 아닌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만 살인이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악의없이도 얼마든지 죄를 저지른다. 죄가 악한 것이지 사람이 악한 것은 아니다. 악의를 가지고 했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면 악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아니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그러나 그로 인해 상처입는 사람이 어딘가는 있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아주 어렸을 적 누군가 무심코 내게 던진 한 마디를. 그 순간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함께 한다. 차라리 맞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상처입은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날까? 하물며 악플은 수십수백이다. 하기는 나는 한 사람일 것이다. 악플을 다는 나는 고작 한 사람이다. 그게 뭐 대단한가? 하지만 그 한 사람이 수십수백이 되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악의를 드러낸다.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래봐야 인터넷에 올라온 '글' 아닌가.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인터넷창을 내리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얼굴을 알지 못하기에 불특정다수의 대중과 만날 때마다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플에 상처받고 문밖을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글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가진 악의니까.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 할 텐가?

인터넷에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인신을 공격하여 모욕하고, 심지어 그 가족마저 제물로 삼는다. 하지만 그다지 크게 죄가 되지 않는다. 특히 연예인의 경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다 보니 대중을 상대로 싸우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다. 가해자가 있어도 이렇다 할 처벌을 받는 경우조차 드물다. 그러나 그를 단죄한 양승재는 현장에서 사살당하고 만다.

죄의 무게를 본다. 결국 사람은 현실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일 게다. 어차피 사람들이 악플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것을 올리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누군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가 프로그램된 대로 써대는 악플따위 두려울 까닭이 없다. 결국은 현실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악의다.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지만 작용한다. 그야말로 유령이라고나 할까? 양승재의 죄가 슬픈 이유다.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기에. 누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을까?

법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든다. 김우현(소지섭 분)은 경찰이다. 박기영은 해커다. 그런데 현재 김우현은 박기영이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면서 동시에 법을 우습게 농락하는 해커인 것이다. 복제폰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다. 악성코드로 다른 컴퓨터에 침투하는 것도 불법이다. 하지만 때로 합법적인 수단만으로는 아쉬울 때가 있다. <더티해리>와는 또다른 경계에 선 경찰일 것이다. 사이버세계에는 사이버세계에 어울리는 악질경찰이 있다.

단지 아바타인 줄로만 알았던 김우현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병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혼자서 키우고 있는 아들과 그가 때때로 찾아가던 어느 아파트의 주인과. 아련해야 하는데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다름아닌 이연희(유강미 역)의 독특한 발성 때문일 것이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인해 그저 분위기는 겉돌고 만다. 불륜은 아니다. 김우현이 이미 이혼한 지 오래이므로. 하지만 그 한 번의 결혼이 벽이 되어 죽음 이후에나 그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던 김우현과 그 김우현의 탈을 쓴 박기영이 그녀를 만난다.

아마도 신효정을 죽인 진범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다만 주의해야 한다. 스릴러는 일반적으로 함정을 여럿 판다. 반전이야 말로 스릴러의 재미다. 과연 권혁주(곽도연 분)가 양승재를 사살하게 된 것이 피해자를 살려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이었을까? 바로 이런 것들에서 사람을 당황하고 놀라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4회의 말미에 거창하게 모습을 드러낸 조현민(엄기준 분) 역시 작가의 정직하지 못한 장난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선호한다. 놀라고 당황하고 그래서 작가를 욕할 정도가 되어야 스릴러라 할 수 있다.

몇 차례의 함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 조각씩의 맞춰볼 수 있는 퍼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마술사의 꿈>이라는 연극의 초대권을 받고 갔다가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연극 <마술사의 꿈>의 관계자 가운데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종호라는 주연배우의 이름이 드러난다. 과거 뮤지컬극단 '더뮤지컬'에서 신효정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하필 피해자들이 연극을 보러 온 날도 더블캐스팅이던 하종호가 무대에 서던 날들이었다. 원래는 양승재는 신효정의 전매니저로써 그녀의 성접대루머를 퍼뜨린 당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모든 가정들은 하종호의 뒤에 하종호의 매니저 양승재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한 순간에 뒤집혀 버리고 만다. 전혀 엉뚱하게 잘못 짚고 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유강미가 범인에 의해 노려진다고 하는 김현우의 추리마저 경찰청 복도에서 양승재와 마주친 장면으로 인해 최승연이 위험해지는 당위가 바뀌어 버린다. 악의적인 함정과 친절한 단서, 그래서 순간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납득하고 만다. 다만 너무나 정석적이라는 것이 흥미를 떨어뜨린다. 어쩌면 가장 크게 납득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양승재가 범인이어야 한다.

조금은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그보다는 처음의 기세가 너무 거셌다. 독특한 설정과 그를 위한 놀라운 반전들, 흥미를 잡아끄는 구성들, 그러나 결국 드라마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편의 영화를 내보내야 하는 미니시리즈다. 안정기가 필요하다. 보편의 이야기를 내보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수사팀이 꾸려졌으니 수사를 한다. 그것까지 놀라울 필요는 없다. 재미있다.

전형이란 오랜 세월 수많은 대가들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대중이 동의했고 그래서 확립되었다. 전형적이란 그래서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독특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단한 기술적 완성도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마음놓고 기대하고 보아도 좋다. 잘 만든 드라마다. 좋다. 훌륭하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