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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31 10:50

각시탈 "항일과 반일, 21세기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시탈과 쇠퉁소 서로 하나이던 것이 수십년만에 다시 하나로 합쳐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려서 만화책을 무척 좋아했었다. 만화방이라 불리던 대본소는 필자의 놀이터였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으면 가지고 있는 돈 만큼 거의 만화방에서 살았었다. 그래고 그때 필자에게 허영만이라는 이름을 가르려 준 만화가 바로 <각시탈>이었다.

사실 모호하다. 워낙 오래전에 읽었다. 더구나 순서대로 읽은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각시탈>이라는 제목의 만화를 만화방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고 거의 동네를 휩쓸다시피 하면서 나머지 시리즈를 다 찾아 보았다. <각시탈>의 첫권을 한참 나중에서야 구석진 만화방에서 찾아서 읽었을 정도로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거기다 하필 그 언저리에 같은 만화가의 <쇠퉁소>라는 만화가 소년잡지에 연재되고 있었다. <각시탈>과도 상당부분 설정을 공유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두 작품에 대해 헷갈려한다. 드라마에서도 일부 두 작품의 설정을 섞어서 쓰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각시탈이 들고 있는 쇠퉁소의 존재가 그렇다.

원래 <각시탈>까지만 하더라도 허영만 만화의 주인공은 이강토가 아닌 '영'이었다. <각시탈>의 주인공도 그래서 이름이 '영'이었다. 이강토는 <각시탈> 시리즈의 후반 어느 압록강 기슭 마을에서 만나는 노인의 손자로 작품속에 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비록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살육을 저질러 온 자신에 대한 회의를 경험하게 된다. 아마 그같은 반성이 이후 <쇠퉁소>에까지 이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각시탈>에서는 형인 '인'(드라마에서는 이강산)이 맡던 역할을 <쇠퉁소>에서는 일본인 친구 이노우에가 맡는다. 드라마에서는 이강토의 친구 기무라 슌지(박기웅 분)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고자 했던 이강토에 비해 기무라 슌지는 조선인보다 더 조선의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각시탈>은 원초적인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일의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조선을 침탈한 일본과 일본인은 악이다. 마땅히 그 악은 무찔러야 한다. 반면 <쇠퉁소>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무언가를 묻기 시작한다. 하필 극중 목담사리(전노민 분)가 주장하는 것이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섰으며 끝내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던 아나키스트들의 그것을 닮아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모든 부당한 권위와 지배에 폭력으로 항거하려던 그 순수한 올곧음이 목담사리와 각시탈을 통해 보여진다. 형과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현실의 좌절과 분노를 대신해 친일에 앞장서는 이강토(주원 분) 역시 마찬가지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도 끝내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다. 현실은 그렇게 가혹하다.

선량한 일본인 친구와 그와 대비되는 비열한 조선인 변절자들,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닌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하고 불의한 지배에 항거하려는 의사들과 현실을 위해 그에 협력하려는 주인공,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조차 외면한 채 딸을 버려두고 다시 싸우러 나서고, 딸은 그런 아버지를 살리려 목숨을 걸고 덤벼든다. 가장 절망스럽던 시대의 가장 처절한 치열함의 이야기. 오히려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더 디테일해진 삶과 사람의 모습이 리얼리티를 더한다. 단순히 조선을 지배했기에 악이 아니라 과연 무엇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이유가 되고 잇는가? 이미 망해버린 나라 조선이 아닌 각시탈이 지켜야 하는, 그래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무엇을 보게 된다. <각시탈>과 <쇠퉁소>가 서로 다른 이유였다. 시간이 의식을 성숙시킨 때문이다. 2012년 과연 지금의 드라마는 어떤 의식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흥미로웠다. <각시탈>의 이영은 단지 일본 경찰의 앞잡이일 뿐이었다. <쇠퉁소>에서 이강토는 본격적으로 일본경찰에 가담하게 된다. 일본인 친구와 검술을 겨루는 모습도 역시 마찬가지다. <각시탈>의 이영은 택껸을 썼다. 아버지도 형도 모두 택껸의 고수다. 반면 <쇠퉁소>에서 이강토는 검도의 고수다. 일본의 검도를 배워 일본인과 싸운다. 일본인 친구와 검술을 겨루는 장면이나 각시탈의 손에 들린 쇠퉁소가 그런 부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각시탈>에 비해 <쇠퉁소>의 경우 그 변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한 바 없었다. 쇠퉁소가 각시탈이 되어도 상관없다. 2012년 더욱 성숙한 의식으로 둘이 하나가 된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시간이 흘러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일러에 가까우므로 이쯤에서 줄이기로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야 드라마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모두 알면 재미가 없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로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인가? 원래 항일투사 목담사리의 딸 목단(진세연 분)은 어느 작품에도 없던 인물이었다. 비장함과 강인함이 있다. 아름다움과 처절함이 있다. 그야말로 조선의 한 그 자체다. 그럽에도 타협하지 않는 올곧음이 어떻게 이강토의 비겁함과 만날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결말도 다를 것이다. <각시탈>과도 <쇠퉁소>와도. 각시탈을 쫓던 기무라의 캐릭터도 달라져 있다. 새로운 것은 항상 사람을 흥분케 한다.

조선은 더 이상 없다. 대한민국도 아직 없다. 조선 땅에 조선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을 일본인들이 와서 지배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그것이 시대다. 시대와 사람이 만남으로써 드라마는 만들어진다. 어떤 시대를 만나는가에 따라 다른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조선도 대한민국도 여전히 식민지 조선에 있었다. 목담사리의 캐릭터야 말로 어쩌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닌가. 각시탈 이강토가 아닌 각시탈이 되어야 하는 이강토가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좋아하는 만화이기에 더없이 반갑다. 만화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점들이 또한 즐겁다. 주원의캐릭터가 상당히 괜찮다. 묘한 슬픔과 모순된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탐욕과 오만 속에 가려져 있다. 순수가 사람을 타락케 한다. 바보가 되어 버린 형이나 일제의 앞잡이로 오명을 뒤집어쓴 이강토(주원 분) 자신이나 비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이강토의 어머니(송옥숙 분)와 이강산(신현준 분)만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시장사람들도 있다. 다시 먼 시간이 흘러 보게 되는 시대와 사람이란 이렇게나 다르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재미있다.

출발은 좋다. 연출도 깔끔하고 인물들도 어색함이나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조금 심심한 느낌도 없지는 않다. 그것이 여백으로 느껴질 수 있다면 비로소 <각시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택껸이 아닌 흔한 액션용 무술이라는 점은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기대를 걸어본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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