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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31 09:03

유령 "현대인이 사는 두 개의 세계, 그러나 드라마는 현실에 있다."

신효정을 죽인 것이 현실의 범인이어야 하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현대인은 대개 두 개의 세계에 걸쳐 존재하게 된다. 하나는 숨쉬고 먹고 싸는 현실세계이고, 다른 하나 미디어와 의식이 만들어낸 네트워크의 세계다.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는 보거나 듣지 않은 것마저 실제 보거나 들은 것처럼 실체를 부여한다.

수 백 년 전 죽은 사람이다.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다. 아니 수 만 광년 이상 떨어진 아득한 우주 저편에 살고 있다. 실재하는 존재도 아니다. 허구의 캐릭터다. 소설이나 만화, 혹은 영화속 주인공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인 것마냥 사람들은 느끼고 여기게 된다. 신이 바로 그곳에 머물고 요정과 귀신도 그곳에 산다. 지금은 사람들이 더 많이 그곳에 산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신이 되고 귀신이 되어 같다.

기술의 발달에 비례할 것이다. 처음에는 말이었다. 그 다음에는 문자였다. 문자는 종이라고 하는 수단에 힘입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확산되어갔다. 문자의 확산은 언어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세계의 확장으로 나타났다. 통신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한 달의 시간이 어느새 한 순간으로 순식간에 압축되어 버리고 말았다. 세계는 커지고 빨라지고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보다 구체화되어 일상을 대신하게 되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 - 아니 이미 스스로 네트워크에서 살며 현실을 엿보는 이들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마법일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 악마와 요정이 존재한다. 당연히 마법도 초능력과 함께 존재한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말이란 곧 마법이다. 신의 말씀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듯 사람의 말에 의해 의식의 세계도 만들어진다. 다만 한계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인간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세계이기에 그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물질과 만나는 순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사의 존재인 신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인간 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처음에는 사이버수사대였다. 그러다가 어느새 현실의 살인을 쫓는 스릴러로 바뀌고 만다. 아마도 극중 신효정(이솜 분)의 죽음의 모델이 되었을 현실의 어떤 사건들의 경우 원래는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불특정 다수의 폭력이 그 원인이 되고 있었을 테지만 결국 드라마에서 신효정을 죽이는 것은 어느 알 수 없는 범인이듯 말이다. 드라마란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일 텐데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가상세계의 감각을 온전히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잘 와 닿지도 않는 실체조차 없는 인식이나 의식이 아닌 실체를 갖는 구체적인 대상을 적시한다.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현실에 없는 허구의 자신이 아닌 현실에 실재하는 자신으로써 현실에서 마주한다. 그래서 사이버수사대 김우현(소지섭 분) 하데스와 만나게 되는 것도 그와 처음 만난 네트워크속이 아닌 바로 현실의 공간에서다.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하데스 박기영(최다니엘 분)과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공간에서 직접 만나 대화까지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현재 어느 곳에 존재하는가?

어느새 사이버수사대의 수사목표 역시 네트워크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현실의 살인에 집중한다. 과연 강력반에 권혁주(곽도원 분)가 있는데 굳이 김우현까지 나서서 범인을 쫓을 까닭이 있을까? 살인사건의 수사는 권혁주가 몸담고 있는 강력반이 거의 도맡는다. 사이버수사대에는 그들이 필요한 공간과 역할이 있다. 정작 TV 앞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자신들이 네트워크를 벗어난 현실의 개인들인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또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겠지만 그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이 역시 현실에 있다.

어쩌면 바로 그런 것들로 자신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단순히 사람을 직접 몸으로 들어서 밀어 떨어뜨려야만 살인인가? 신효정을 죽인 것은 알지 못하는 범인 자신 뿐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말로써 자살하도록 몰아세운 당사자들 뿐인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로 마치 이미 확정된 것처럼 판결을 내리고 단죄까지 하려 한다. 그럼에도 실체조차 없다. 과연 누가 그같은 리플을 달고 비난하는 글을 게시판이나 SNS등에 올리고 하겠는가? 그래서 현실에 맞게 네트워크의 세계를 보여준다. 신효정을 죽인 살인자가 존재한다면 그와 함께 악의로써 신효정을 몰아세우던 허구의 인간들이 있다.

과연 묻게 된다.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는가? 사람이 나비의 꿈을 꾸는가? 네트워크가 현실의 꿈을 꾸는가? 현실이 네트워크를 꿈꾸게 되는 것인가? 그곳은 현실이며 또한 네트워크 속이다. 김우현과 빅기영의 우연한 만남처럼 현실이지만 네트워크처럼 그들을 만나고 엇갈린다. 드라마를 보는 재미일 것이다. 그들은 현실을 꿈꾸는가? 네트워크를 꿈꾸는가?

재미있다. 마치 광속의 네트워크처럼 드라마 역시 광속으로 흘러간다. 군더더기란 없다. 잡스런 아무것도 없다. 소지섭과 최다니엘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드라마를 가득 채운다. 현실의 살인이라고 하는 공포와 익숙하지 않은 네트워크라고 하는 신비함이 드라마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현실적인 한계로 후자는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대신 스릴러의 미스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마치 이끌리듯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다.

네트워크가 부리는 마법과 그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 이적과 저주가 그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무엇이 신효정을 죽게 만들었으며 어떻게 그녀는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 네트워크란 여전히 신비하다. 많은 이들이 이미 그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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