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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29 09:11

추적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어떤 역설..."

불행한 권력에 의해 침범당하는 개인의 행복에 대해 묻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자, 사상가, 지식인들이 그리 말했었다. 정치따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정치가 오히려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곤궁으로 내몬다.

사실 '정의가 강처럼 흐르'지 않아도 어차피 백홍석(손현주 분)의 가족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비록 고단한 삶이지만 백홍석 자신도 경찰로서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같은 백홍석을 아내 송미연(김도연 분)과 딸 백수정(이혜인 분)은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끔찍한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일 없었다면 백수정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 희망으로 백홍석이나 송미연이나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러니일 것이다. 하필 그 순간 강동윤(김상중 분)은 국립묘지에 있었다. 국립묘지란 나라를 위해 희생했거나, 나라를 위해 크게 기여하여 그 공을 인정받은 이들이 묻히는 곳이다. 그야말로 나라를 위해 바친 그들의 삶이 그곳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국립묘지에 묻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이 나라라고 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면 굳이 그곳에 눕지 않아도 되었을 이들이다. 더 나은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시신조차 없이 찾는 이마저 없는 빈무덤에 공허하게 누워 있을 것이 아니라.

결국 욕심이 문제였다. 소련이 욕심을 부렸고 미국이 양보하지 않았다. 북한이 욕심을 부렸고 대한민국 또한 그 뜻에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미국이 양보하고 대한민국이 그 뜻에 따라주었다면 최소한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이의 수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대신 다른 이유로 죽었을 것이다. 그까짓 공산주의 조금 안하면 어떤가? 굳이 김일성이 권력을 쥐어야 하는가? 물론 반대도 성립한다. 그래서 바로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어린아이들마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처참하게 시체가 되어 철저히 잊혀져갔다.

하긴 바로 그런 것이 정치이기는 하다. 정치란 정의다. 옳은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에 우선해야 하는가? 무엇을 우위에 두고 우선할 것인가? 그래서 권력의 권(權)자는 저울의 권자다. 저울로 사물의 무게를 재듯, 그 가치와 순위를 판단하여 결정한다. 그것을 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내가 옳다. 내가 바로 정의다. 그 어떤 신념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권력의지'라고 부른다. 강동윤의 속내야 어떻든 그가 갖는 힘과 지위가 그의 말을 진실로 정의로 만든다. 히틀러에게도 그의 말을 정의라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후대의 평가가 어떠하든 그들에게 있어 히틀러의 말은 곧 정의 자체였다.

누군가의 권력의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영웅들의 무덤과 그리고 그같은 권력의지에 의해 희생되려 하는 한 어린 소녀의 죽음. 혹시 모른다. 강동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대단한 업적들을 이루어낼지도. 그렇다면 백수정의 죽음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희생이 되는 것일까? 백수정의 죽음으로 인해 나라는 부강해졌고 국민은 행복해졌다. 바로 그같은 희생의 제단에 강동윤은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한다. 한 소녀가 그를 위해 죽어간다.

상당히 불손하다. 그리고 불온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를 위해 평생을 애쓰고 희생해 오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기리려 나라에서 한 데 모아 기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그것이 국립묘지다. 그런데 그런 국립묘지를 앞에 두고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한 소녀를 교차시킨다. 이제까지 국립묘지라고 하는 장소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경우가 없었다. 드라마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권력에 의해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빼앗기고, 그 행복을 되찾기 위해 권력과 맞서싸워야 하는 한 평범한 가장을 통해. 국가와 개인, 권력과 자신이라고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아나키즘적이라 하면 너무 성급할까?

그러면 어째서 권력은 그렇게 개인의 일상을 침범하려 하는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롭고자 한다. 그것은 조형사(박효주 분)가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고서도 다시 결혼에 도전하려는 것과 같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계속 결혼에 도전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기준을 세워 행복에 도전한다. 조형사가 만일 결혼을 행복하다 만족스럽게 여겼다면 그렇게 매번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찾으려 시도하고 했을까? 현실이 만족스러운 백홍석은 어쩔 수 없이 승진을 욕심내는 황반장(강신일 분)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정의가 뭐고 가치란 무엇인가?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인간이란 결국 탐욕하는 존재이기에. 탐욕하기에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기에 다시 더욱 탐욕하게 된다. 권력자가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려 한다면 사실 더 이상 사람들이 분주하거나 성가실 일이란 그다지 없을 것이다. 굳이 많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혹시나 전쟁터에 끌려가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국가적인 사업에 동원되어 착취당할 일도 없다. 대신 보다 강한 탐욕을 가진 누군가에게 잡아먹히게 되기 쉬우리라. 한오그룹의 서회장(박근형 분)의 딸 서지수(김성령 분)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막다른 궁지에까지 내몰았던 강동윤에게 도리어 물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탐욕이 사위임에도 강동윤을 남처럼, 심지어 딸과 이혼할 것을 강요하게 만들었고, 그러나 가족에 대한 안주가 강동윤으로 하여금 상황을 역전케 만들었다.

과연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기에 인간은 탐욕하게 되는 것인가? 탐욕하다 보니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인가? 그럼에도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각자가 간절한 탐욕을 마음에 하나씩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대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그에 비하면 서지수는 단지 그의 딸로 태어났고 그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서지수의 삶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쩌면 백수정이 자신의 차에 치여 쓰러진 것을 보았을 때 나서서 백수정을 구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아직 탐욕하는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가장 큰 불행이다.

이상이 바로 권력이 범하는 죄라면 PK준(이용우 분)와 백홍석의 친구 윤창민(최준용 분)이 저지른 죄는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죄일 것이다. 아니 사실은 같다. 결국은 자신을 연민한다.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안타깝게 여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면, 권력에서 소외된 자는 자신을 가장 구석진 곳에 몰아넣고 판단한다. 자신의 양심과, 자신의 우정과, 자신의 명예와 가치, 하지만 당장의 인기와 물질적 욕망 앞에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다. 그리고 그로 인한 죄는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주위마저 파괴하고 만다. 누가 백홍석 가족의 행복을 돌려줄까?

그래서 또 한 번의 역설인 셈이다. 아직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백홍석은 여전히 윤창민을 자신의 친구로만 여기고 있다. 딸을 살리려 최선을 다했던 친구이자 의사다. 그래서 그에게 그가 죽인 딸의 상주를 대신 맡아달라 말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목숨을 끊은 소녀의 장례식에 상주를 맡게 된다. 차라리 악하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얄궂은가. 순간 자신의 죄를 정면에서 내내 마주하며 확인해야 하는 윤창민이 안쓰럽게 여겨졌을 정도다.

PK준의 팬이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생일이었다. PK준이 탄 차에 치이고, PK준에 의해 다시 한 번 죽임을 당한다.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래서 친구의 딸을 살리려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그 딸을 다시 한 번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딸의 장례에 상주를 대신한다. 이보다 지독한 역설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아내이지만 아내가 아닌 장인의 딸이라 하고, 자신의 사위지만 자기의 입장에 의해 딸과의 이혼을 강요하고, 사위라고 불러 대접하는 추어탕이 그같은 모멸적 역설으 대신해 보여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불행한 권력과 행복한 개인, 그러나 현실은 불행한 권력에 의해 행복한 개인이 항상 희생하는 구도다. 아마 인류가 서사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래 반복되어 온 가장 전형적인 구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불행이 탐욕을 만들고, 다시 탐욕이 불행을 만든다. 끝모를 그 탐욕이 주위를 파괴하고 자기 자신마저 파괴하고 만다. 설사 진실이 밝혀지고 범인이 잡히게 되더라도 과연 백홍석의 행복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과정은 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 것인가? 무려 16부작이다. 이런 뻔한 선악의 구도 속에.

손현주의 연기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김상중은 차가운 불꽃을 품고 있는 듯한 배우다. 딸을 잃은 백홍석의 오열에 울컥 눈물이 차오르며, 강동윤의 뻔뻔스럽기까지 한 이중적 모습에 그마저 시리게 식어버린다. 도입부가 강렬하다. 법정까지 쳐들어가 총을 겨누어야 했던 백홍석과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유력한 대선후보 강동윤, 전혀 반대편에서 상대를 향해 돌진해가는 그들의 대결을 기대해 본다. 천번지복의 대결이 될 것이다.

오랜만에 소소하며서도 묵직한 드라마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서러움과 묵직한 서사적 치열함이 작품 안에서 만난다. 잔잔한 듯 보이다가도 어느새 뜨거운 불길을 품고 있다. 설레이게 만드는 드라마다. 벌써부터 확신이 온다. 재미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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