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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27 13:00

넝쿨째 굴러온 당신 "방귀남이 차윤희더러 일을 그만두라 말하는 이유..."

어느새 동영상으로 올려져 조롱당하는 방정배, 인터넷 대중권력을 비웃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아니나 다를까. 아마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일이란 단지 생계를 위한 방편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하물며 여자는 남자에 비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로부터도 자유롭다.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고 문제가 될 수 없다.

물론 모성으로써 건강한 아이를 낳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건강한 아이를 낳아 어머니로서 훌륭하게 기른다. 하지만 과연 여성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역할만이 있는 것인가? 여성이란 어머니로서의 의미나 가치만을 갖는가? 과연 인간 차윤희(김남주 분)는 어디로 가는가? 개인으로서 차윤희의 존엄과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와 작가, 감독, 더구나 제작사와 방송국, 스폰서 등 여러 입장과 이해가 그녀를 중심으로 충돌하며 엇갈린다. 몸으로 뛰고 감정으로 부딪히고 머리로써 부대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현장에 남아 있다. 현장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꿈꾸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야 말리라. 그 꿈이 지금 바로 손에 닿는 곳까지 다가와 있다.

그녀가 아직도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이유다. 배우의 잔심부름을 하고, 감독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고, 예민한 작가를 달래주고, 하지만 바로 그것이 차윤희 자신의 보람이니까. 그렇게 한 편 한 편 드라마가 쌓이고 자신의 꿈이 가까워온다. 단순히 돈이 목적이었다면 미국에서도 명문의대 출신으로 잘나가는 의사인 남편 방귀남이 그녀 하나 부양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 그녀더러 일을 그만두라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하기는 이해한다. 차윤희 자신도 목격한다. 차라리 임신한 여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하느니 가차없이 그만두게 해야 한단다. 세상이 그렇다. 사회가 그렇다. 당연히 임신을 하면 일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고 그것을 모두는 너무나 잘안다. 그래서 차윤희도 임신을 꺼려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임신이란 없을 것이라 생각해 왔었다.

아이를 낳으라면서도 정작 여성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활동이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회적 존재로써 그것은 또 하나의 소외이며 도태다. 최소한 유능한 드라마 제작PD로서의 차윤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연 여성이기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일이란 인간의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이야 말로 인간의 가치인 때문이다. 일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한다. 보람이야 말로 존엄의 다른 말이다. 내가 있어 뿌듯하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렇다면 그를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일 수 없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과 동참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귀남이 끝내 차윤희의 반대편에서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라 말하는 이유다. 도저히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임신까지 한 차윤희를 계속 일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사실 임신하지 않았어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입장에서도 그런 자리란 매우 불편하다. 내가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 술을 아주 안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술을 자제하거나 아예 마시지 말아야 하는 때가 있다. 차를 가지고 와 운전해야 하는데도 그래도 술을 먹인다. 분위기 망친다고. 모두에게 폐가 된다고. 그렇다면 모두는 왜 술을 꺼려하는 한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 그를 배려해주지 않는가?

흔히 말하는 군대문화의 폐해일 것이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개인을 집단을 위해 희생한다. 집단에 속한 자신을 위해 개인은 마땅히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술이야. 하물며 술자리야. 임신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불편하니까. 그래서 민폐라 부른다. 민폐야 말로 그같은 집단이기의 단면인 셈이다. 자신들의 이기에 호응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것이 부도덕이고 불선이다. 악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데 그에 맞춰주지 못하는 사람은 필요없다. 가치없다. 민폐다. 그래서 억지로 따라가야 한다.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소외된다.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왕따문제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임신까지 하고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차윤희는 과연 전처럼 현장에서 남아 일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차윤희의 입장에 동의하고는 있지만 방이숙(조윤희 분)도 방일숙(양정아 분)도 기본적으로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와 시할머니(강부자 분)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 방장수(장용 분)나 방정배(김상호 분) 역시 같다. 그것이 일반적이다. 차윤희의 사정따위 고려될 여지가 없다.

답답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의 미덕이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막히는 것 없이 통쾌하다. 답이 보인다. 과연 지금의 위기를 차윤희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남편 방귀남까지 돌아섰는데 차윤희는 어떻게 자신을 지킬까? 필자 개인으로서도 무척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차윤희 같은 사람은 현장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당연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 인터넷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쉽게 동영상을 올리고 퍼나른다. 그리고 너무나 간단히 리플을 단다. 그러나 정작 그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어딘가 살고 있을 자신인 것이다. 정작 자신이 그 대상이 되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운가? 그럼에도 아버지를 자랑스럽다 당당히 리플로써 응원해주는 방장군(곽동연 분)을 보고 있으면 방정배가 얼마나 훌륭한 가장인가를 알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장 앞에서 너무나 쉽게 리플을 달고 말을 하는 인터넷속 대중의 정의란 얼마나 같잖고 비열한가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일이 아니니 그렇다.

너무 심한 것이다. 그래도 남의 사생활인데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그것을 다시 퍼나르고. 심지어 개인의 신상까지 캔다. 과거 독재정권 아래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없었다. 존엄이니 권리니 하는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대중이 권력이 되어 있다. 인터넷이 그 권력을 위한 수단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방정배는 멋지다. 멋대로 리플을 달아대는 네티즌이 우스울 뿐이다.

천재용(이희준 분)도 참 한심한 캐릭터일 것이다. 하기는 원래 로맨틱코미디란 그렇다. 첫사랑이 있으면 그 첫사랑으로 인해 고민하는 현재의 사랑이 있다. 대개는 첫사랑에 대한 미련에 비례해 현재의 사랑은 앞에 놓인 허들이 높고도 길다. 언제 자기의 마음이나마 방이숙에게 전한단 말인가? 둔한 것도 천성인지 아무리 힌트를 주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드러내려 해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따로 로맨틱코미디로 만들어 보아도 좋았을 것 같다. 손해보기 딱 좋은 위악적인 순진남 캐릭터로 천재용은 일정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방이숙은 그에 어울리는 둔감녀다. 최근 이들 커플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 필자도 눈여겨 보고 있다.

방말숙(오연서 분)을 위한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하필 차세광(강민혁 분)이 올케인 차윤희의 집에서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되었다. 방말숙은 아직 차세광을 사랑한다. 차세광도 방말숙을 사랑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방말숙은 차윤희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미운털이 하나 박혔으니 그녀의 시집살이를 기대하게 된다.

만화스런 연출이 유쾌하고 좋다. 항상 강조하는 이 드라마의 최고의 미덕이다. 심각한 문제를 전혀 심각하지 않게 푼다. 진지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진지해지지 않는다. 항상 적당히 오락드라마로서 사람들을 이완시키며 즐기도록 만든다. 심각하려면 시사프로그램을 본다. 진지하려면 다큐멘터리를 본다. 이것은 드라마다. 그리고 판타지다. 차윤희는 시집살이라고 하는 한국의 현실이 만들어낸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반지원정대가 되어 시집살이라고 하는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먼 여행을 떠난다. 그조차도 즐겁고 유쾌하게.

방귀남의 변신이 극적이다. 하지만 결국 방귀남이 차윤희의 편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다만 그 과정이 문제다. 어쩌면 그 과정에 답이 있다. 방귀남이 차윤희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불리한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차윤희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어야 그는 차윤희의 편에서 계속 일을 해도 좋다 말해줄 수 있다.

아직 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과 관련한 진실을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단편적이지만 단편이란 항상 사람을 오해하게 만든다. 사람의 기억이 많은 오류를 낳는 이유다. 장양실이 간직한 진실이란? 그녀의 죄의식의 정체는? 아직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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