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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22 09:26

패션왕 "강영걸의 분노,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하는데 쪽팔릴 게 뭐 있냐?"

강영걸의 기대와 전혀 다른 이가영, 아버지에 이은 또다른 상실을 예감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순간 강영걸(유아인 분) 자신이 되어 있었다. 필자 또한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절망과도 같은 질투와 동경이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비슷해 보이는데 이렇게까지 서로는 너무나 달랐다. 어째서 집안과 환경을 어른들은 우선해 판단하는가.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삶이란 것이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절박하다는 것이다. 절박하다는 것은 항상 쫓기고 있다는 것이고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삶에 쫓기고 현실에 몰린다. 그래서 여유가 없다. 급하고 거칠다. 각박하고 사납다. 차라리 체념할 수라도 있으면 비관 속에 여유를 찾을 수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좌절과 절망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항상 느긋할 수 있는 혜택받은 환경의 사람들이란 얼마나 부러운가?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하는데 쪽팔릴 게 뭐 있냐?"

이 얼마나 당당한가 말이다. 그리 망신을 당했다. 엉망으로 취해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안좋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럼에도 자기는 사랑해서 사랑한다 고백한 것 뿐이라 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가 사랑해서 사랑하는 감정을 전한 것 뿐인데 그것이 무에 그리 부끄러울 일인가 말한다. 차라리 그런 순간에조차 정재혁(이제훈 분) 자신을 고민케 하는 것은 고백의 상대인 이가영(신세경 분)에 대한 한 가지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얼마나 그동안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는가 그 순간 읽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강영걸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안좋을 소리를 할 때도 정재혁은 오히려 자기의 일보다 더 화를 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간섭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정재혁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얼마나 자기가 소중한가를 안다. 얼마나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가를 안다. 어쩌면 하찮게 보이는 사랑의 감정조차 어떻게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가를 그는 안다. 그에 비하면 강영걸은 자신의 감정조차 아직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강영걸이 정재혁에게 화내는 이유다. 정확히는 강영걸 자신에게 화내는 것이다. 어째서 자기란 이런 정도밖에 안되는가? 어째서 자기는 정재혁처럼은 안되는가? 부럽고 질투가 난다. 자기도 정재혁처럼 해보고 싶은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가영을 위해 소중히 간진해 온 이가영과의 첫만남의 추억이 담긴 팬던트의 큐빅을 다이아몬드로 바꾸어 선물했다가 실망만 경험했다. 이가영은 그것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물건인지, 그리고 표면에 박힌 보석들이 진짜 다이아몬드인지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가영이 진정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차라리 절망이기도 하다. 정재혁은 할 수 있는데 자신은 할 수 없다.

강영걸이 이가영을 위해 애써 준비한 원래 이가영의 부모의 소유였던 조순희(장미희 분)의 가게 또한 이가영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팬던트가 잊혀진 기억의 편린이듯 이가영에게 조순희의 가게란 이미 흘러지나간 시간의 흔적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부모가 아닌 조순희가 가게의 주인으로 있었고, 이가영 자신에게 있어서도 가게에 대한 기억이란 조순희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원래 부모의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노력해서 가지게 된 자기의 가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 이가영이 강영걸에게 들려주고 있던 진실한 소망이란 강영걸을 통해 가질 수 있었던 희망 그 자체였다. 아마 그것이 눈이 부신 듯 강영걸은 그것을 외면하고 만다. 강영걸 자신이 기대한 조순희에 대한 원망과 증오 대신 그녀가 말하는 것은 그 순간에조차 간절한 희망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강영걸은 이가영에게 화를 내고 만다. 자기는 일껏 진심을 다해 준비했는데 그 성의를 알아주려 하지 않는 이가영을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정재혁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정재혁처럼 사랑고백이라도 했으면 받았을까? 정재혁이 돈이 더 많아서도 아니다. 정재혁이 대기업의 2세이고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에 있어서도 아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정재혁에게 패배감을 느낀다. 과거 돈이 없어 그에게 돈을 빌리려 하고,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먹을 것을 구걸하던 상황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처참한 열패감이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이가영을 원망하며 구걸하듯 애원하게 된다. 이가영과의 거리도 확인한다. 여동생에 이어 아버지마저 떠나보냈듯 어쩌면 이가영마저 떠나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 상실의 예감이었다.

하필 강영걸이 이가영이 아닌 최안나(유리 분)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전한 이유일 것이다. 이가영은 더 이상 자기의 사람이 아니다. 자기의 품을 떠났다. 그녀는 자기와는 다르다. 자기와 다른 세계에 산다. 자기와 다른 세계에서 자기와 다른 것을 보고 살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정재혁이 보고 있는 그것일 터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는 그 순간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더구나 그때 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보다 깊은 절망 속에 몸부림치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소식을 전해들었음에도 한 번 찾아보지 않아 그리 쓸쓸히 허무하게 보내고 말았다. 원망하고 증오했기에 더욱 그 상실감은 크다. 그런데 이가영은 자신의 선물을 돌려주며 자기의 성의를 부정하려 하고 있다. 여동생이 떠나고 아버지가 떠났듯 이가영마저 떠나는 것은 아닐까?

반면 최안나는 안심할 수 있다. 그녀는 강영걸과 동류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더구나 최안나는 사업의 성공과 함께 주위로부터도 인정을 받으며 한층 고무되어 과거의 열등감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강영걸은 오히려 더 깊은 상처와 절망을 안게 되었다. 강영걸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희망을 찾으려 하던 이가영에 비해 강영걸로서는 자신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다만 그것이 친구로서인가? 아니면 인생의 파트너로서인가? 그렇더라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르다. 그런데 그 서로 다른 것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여유가 없는 탓이다. 항상 쫓기며 살았다. 항상 저 위만 보며 살았다.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저 이가영도 자기와 같겠거니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가영과의 인연을 증명해주리라 믿고 있었던 팬던트를 이가영은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고, 이가영이 기쁘게 받아줄 것이라 여겼던 선물은 오히려 거북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자기처럼 원망과 증오 속에 살아온 것이 아니라, 분노와 열등감을 힘으로 견뎌온 것이 아니라, 그저 올곧게 희망을 믿으며 그 자리에 바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더 이상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다.

과연 이제부터 갈림길일 것이다. 강영걸의 아버지의 죽음은 촉매가 되어 주었다. 이제 한 회 남았다. 강영걸의 선택은 무엇인가? 더 깊은 절망과 증오인가? 아니면 그것을 떨쳐버린 달관인가? 그도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될까? 하루하루 삶을 노력하며 사는 과정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정재혁은 강영걸이 가지고 있던 분노와 열등감을 가지게 될까? 간절함과 절박함 가운데 원망과 증오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될까? 어느 쪽이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가영의 선택도 결정되리라. 이가영은 빛속에 머문다. 최안나는 그림자 속에 머문다. 어쩔 수 없이 드라마라는 한계로 인해 선택은 이 두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

정재혁이 이가영을 오해한다. 오해하고 분노한다. 원망과 증오를 쏟아낸다. 예고편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럼에도 정재혁은 세심한 보살핌 속에 살아온 도련님이다. 그는 아직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 정만호(김일우 분)가 그렇게 질책해도 여전히 헐렁할 정도로 낙관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그런 점을 강영걸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강영걸의 어둠이 씻겨나가며 어둠이 시킨 이제까지의 욕망을 저버리거나, 아니면 강영걸의 어둠이 짙어지며 정재혁이 모든 소유와 집착을 포기하거나. 결국은 서로가 가장 소중한 것은 얻는다. 과연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지금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해피엔드를 예감한다. 모두를 위해 서로가 가장 원하는 것을 얻는다. 비극은 지금으로서는 너무 안타깝다.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정재혁이든 아니면 강영걸이든. 이제 와서 불행한 결말을 맞기에는 그동안 겪어온 과정들이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게까지 악취미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동안 충분히 작가의 악취미를 드러내 보였다. 만일 비극의 단초가 숨어 있다면 아버지가 죽고 절망속에 가졌던 친구들과의 흐트러진 술자리가 아닐까? 원망은 배반을 낳고 배반이야 말로 가장 참혹한 비극을 낳는다. 하긴 그 경우도 해피엔드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말했듯 모두는 가장 원했던 것을 갖게 된다.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 미련과 후회하는 가운데서.

이제 한 회 남았다. 급하게 돌아간다. 급하지도 않다. 그동안 누적되어 온 것들이 균열처럼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것이 모두를 허물어뜨리는 대폭발인가? 아니면 예정된 규모의 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인가? 기대하고 본다. 이제 오늘만 참으면 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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