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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21 09:28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일과 임신의 경계, 임신이 고난의 시작인 이유..."

민폐와 배려의 사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의 수준을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이를테면 여러해 전 있었던 장애인의 시위와 관련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시위 때문에 길이 막힌다. 불편하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장애인들의 입장도 절박한데 그런 정도 불편함도 참아주지 못하는가?"

민폐를 끼치는 것이 개인의 이기라면 민폐를 참아주지 않는 것은 집단의 이기다. 개인의 사정으로 집단에 폐를 끼치고, 집단의 입장을 내세워 그같은 개인의 사정을 억압한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과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사실 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방말숙(오연서 분)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클럽에 갇히자 바로 차세광(강민혁 분)에게 전화를 건다. 그때 차세광은 자기일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화내는 법 없이 기꺼이 달려와 택시까지 잡아 태워주고 있다. 천재용(이희준 분) 역시 규현(강동호 분)의 연락을 받고 만나러 가는 방이숙(조윤희 분)을 위해 기꺼이 운전기사 노릇을 해준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란 과연 얼마나 서로에 의한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가에 비례한다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시할머니(강부자 분)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차윤희(김남주 분)에게 서운해 몸져누운 상황에서도 차마 억지로 낳으라 강요하지 못하는 것 아니던가 말이다. 엄청애(윤여정 분) 역시 아이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그러겠다 하니 속만 끓인다. 남의 일이라면 당연히 당장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을 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에 대해서도 방귀남(유준상 분)은 매우 신중하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서도 그래서 딸인 일숙(양정아 분), 이숙, 말숙과 며느리인 차윤희는 차이가 난다. 차윤희의 친정에서도 차윤희에 대한 태도와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존중이다. 과연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류로서 애정하고 존중하며 대하는가 하는 여부인 것이다. 개인이기에 억압한다. 소수이기에 강제한다. 다수이거나 혹은 우월한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려 한다. 상대를 동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없어도 된다. 수단이거나 대상이다.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나 권리따위, 개인의 삶이나 절박함따위 다수의 편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

차윤희가 임신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방귀남도 말한다. 그런 현장에서 과연 아이까지 가진 차윤희가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 배려해주어야 한다. 조심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막대한다. 감독은 감독대로, 배우는 또 배우대로, 그리고 스텝은 또 스텝대로. 제작PD이고 더구나 여성이다. 이제 아이까지 가졌다. 번거롭고 성가시다. 차라리 일을 그만두어줬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차윤희도 일을 그만둘 것을 고민한다. 다수가 임신한 차윤희를 배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차윤희가 다수를 배려해서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때로 한국사회에서는 소수의 몇몇을 위해 다수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비효율로, 민폐로 여기기도 한다.

하기는 그러니까 시할머니도 막내작은어머니 고옥(심이영 분)더러 그나마 하던 일마저 그만두라 말하는 것이다. 아이를 가졌기에 임산부로서 조심하기도 해야겠지만 세상이 굳이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는다. 불안하고 꺼려진다. 하물며 차윤희가 일하는 드라마제작현장과 같은 곳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더욱 차윤희로 하여금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배려가 부족한 사회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

사실 드라마니까 많이 유화되어 표현된다. 임신하면 당연히 일을 그만둔다. 상식처럼 되었다. 모두가 불편하다. 모두가 성가시다. 한 사람만 그만두면 된다. 아이를 가졌으면 아이엄마로써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몇 번이나 강조해 말하는 거지만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가 있다. 아니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적령기를 넘어서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결혼이든 출산이든 육아든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아직 우리사회에는 너무 많다. 그것을 기쁨으로 자신의 행복으로 마냥 여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결혼하라 아이를 낳으라 한다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행동하려 한다.

나이를 먹어서... 사실 가장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의 노인복지는 재가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일단 집안에서 가족끼리 해결한다.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그러지 못한 부분만 나라에서 해결해준다. 말하자면 아이란 노후대책의 대신이다. 그래서 시할머니도 말한다. 엄보애(유지인 분) 역시 나중을 말한다. 늙어서 외롭고 곤궁해진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에 그렇게 집착한다. 자식을 부모 대신으로 여긴다. 극성스런 교육열과 사회의 서열화가 그를 통해 다시 부추겨진다. 여전히 개인은 부모에 종속되어 사라진다.

일을 하고 싶다.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일을 해야 한다. 임신이란 그 과정에 사소한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임신한 여자 한 사람 어떻게 책임지지 못할까? 배려하고 위해주지 못할까? 물론 자기 할 일은 어김없이 해낸다고 하는 전제가 붙기는 한다. 일을 열심히 잘하는데 굳이 임산부라고 해서 배제하는 것은 옳은가?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될 터다. 그런데 이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까지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차윤희의 고생은 첩첩산중이 될 것이다. 임신을 거부하려 한 심정을 그래서 이해하게 된다. 임신으로 인해 여성들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

아무튼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제작진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윤빈(김원준 분)의 공항패션 장면은 조금 무리수였다. 웃기는 것을 넘어 민망할 정도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윤빈을 망가뜨려야 했을까? 연예인으로써 재기하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을 통해 재기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신곡을 쓰거나 내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우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지금까지는 스타다운 모습이었다면 언제부터인가 다시 인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흔한 한물간 연예인의 모습이 되어 있다. 그럴 것이라면 굳이 얼마전 PD의 제안은 어째서 거절했던 것일까? 최소한 웃기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방장군(곽동연 분)의 학교생활 역시 사족에 가깝다. 굳이 전교 1등인 여학생이 찾아와 억지스런 사자성어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은 당시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던 노래였다. 그런 유명한 노래를 굳이 '쳐맞은 것처럼'으로 잘못 듣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른 장면들은 일상에 뿌리를 두고 충분한 설득력과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두 장면 만큼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필요한 장면이었을까? 아무리 분량이 넉넉한 주말드라마라고 그다지 필요도 없는 장면을 굳이 할애해 넣어야 할 정도로 방송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부분만 드라마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다.

하여튼 로맨스에는 빠지지 않는 필수요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첫사랑. 더구나 천재용은 차윤희 이후 아마도 한 번도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듯한 연애의 초보다. 방이숙 역시 마찬가지다. 짐짓 연기하듯 조증에 가까운 밝은 모습을 보이는 방이숙과 그것을 알면서도 괜히 신경쓰이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천재용,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중학생들이나 보일 법한 서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것이 차라리 귀엽기조차 하다. 원래 천재용을 연기하는 이희준이 귀여운 외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 <공주의 남자>에서 그는 조석주를 위협하던 왈패로 출연하고 있었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더 방이숙이 일찍 집에 돌아갔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방말숙도 어느새 차세광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다 보여주고 말았다. 이제는 이름도 안다. 화장이 번져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된 것도 들키고 말았다. 그런 모습까지 보고서도 태연히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려보내준다.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단계는 밟아 나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단정한 전통의 가족드라마 가운데 튈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엄청애도 고민이 많다. 특히나 장양실이 별거를 선언하며 더 생각이 많아졌다.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기고 참고 살아온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며느리 차윤희도 자극이 되어준다. 어쩔 수 없이 지고 산다고 여기는 순간 엄청애 또한 차윤희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자유롭고 싶고 당당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의 삶을 놓지는 못한다. 그 묘한 경계가 흥미롭기도 하다. 시아버지 방장수(장용 분)에게도 숙제가 남았다. 진정 말년이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인에게 잘해야 한다.

방귀남의 차윤희에 대한 사랑이 입덧을 대신 하는 것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차윤희의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방귀남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 때문일 것이다. 대신 스트레스를 받고 심지어 대신 입덧까지 하게 된다. 참 이런 남편도 없다. 촬영장에서는 차윤희를 위해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활용해 팔자에 없는 약장수 노릇까지 한다. 의사란 원래 마술사였다. 사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자체가 신비한 마법의 영역이었다. 마치 돌팔이 점장이처럼 모두가 그의 말에 꺼뻑 넘어가고 만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실이 의사라고 하는 권위가 만나면 그 자체로 마법의 주문이 된다. 그에 비하면 입덧을 대신 하는 정도는 대단할 것 없는지 모른다.

조금은 늘어진다. 그리고 약간씩 흐트러지고 있다. 여유를 두고 꼼꼼하게 완성도를 높여가며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차윤희가 일하는 그곳이 지금 차윤희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이다. 어쩔 수 없이 이해를 하며 보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많이 이입해서 보는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집중해서 본다.

차윤희의 고난이 예상된다. 임신한 사실을 시댁식구가 알고 직장에서 알게 된다. 다행히 방귀남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남편 방귀남이 있다. 감히 공중파 드라마이기에 다른 생각은 아예 할 생각도 못한다. 임신했으니 아이는 낳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일도 지켜야 한다. 차윤희의 선택이 제작진의 답이다. 제작진은 무엇이라 답을 내놓게 될까? 역시나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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