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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19 09:15

사랑과 전쟁2 "친정의 가장, 남편의 아내, 결혼이란 선택이며 다짐이다."

엄마의 딸, 동생의 언니, 그리고 남편의 아내, 선택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원래 과거에 급제한 한 사람이 있으면 사돈에 팔촌까지 주위의 모두가 신세가 핀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안을 일으킨다는 말이 나온다. 한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하면 그에 의지해 그 주위가 함께 일어난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모두가 출세하고 성공한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사실 그렇게 대단하게 성공한 것도 아니다. 물론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기는 하다. 수입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딸과 언니만을 바라보고 손놓고 지내는 가족들의 모습으란 우습기조차 하다. 물론 바로 그런 우습기만 한 모습이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기도 하다. 단지 딸이 아들이 되고 언니가 오빠가 된다.

이번에는 단지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바뀌어 아내가 친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가장으로서 친정을 책임진다. 사실 남자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당연한가?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내의 입장은 어떠할까? 마찬가지로 그런 아내를 지켜보아야 하는 남편의 입장은 어떠한가? 부부도 가족인데 오히려 다른 가족들로 인해 소외된다. 오히려 남으로 만났기에 더 상대를 배려하고 위해주어야 하는 것이 부부일 것이다.

아내 유진영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아직 여동생이 대학에 다니고, 따라서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언니로서 친정과 동생을 보살핀다. 하지만 그런 유진영의 순진한 계산과는 달리 이미 친정엄마나 여동생이나 하나같이 유진영만 바라보며 의지해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유진영의 도움 없이 사는 삶이란 아예 처음부터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이미 유진영이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처음에는 고마워하다가도 나중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만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배려에도 미안해하고 황송해하다가도 나중에는 어지간히 큰 도움마저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다는 양 뻔뻔하기조차 하다. 그래서 장사를 해도 서비스는 장사하는 주인이 주어야지 손님이 요구해서 가져가도록 하면 안된다. 나중에는 서비스를 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서운해하고 원망한다. 내가 배려해서 주는 것인데 내가 미안해하고 황송해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 자기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어디까지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가? 최소한 결혼을 하는 순간에는 가족들에게 선언했어야 했다. 이제 결혼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전적으로 친정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다. 이제 어느 정도 친정식구들도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에 따른 도움은 주겠다.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남편과 함께 상의해 주는 제한적인 도움이다. 물론 그것은 시댁식구에게도 적용된다.

부부란 하나의 단위다. 하나의 독립된 가족의 단위다. 하나의 다른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을 따로 일가를 이룬다고 말들 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책임이 있다. 아들이고 딸이고 오라비이고 누이일 테지만, 그러나 새로운 가족에 있어 그들은 가장이 되고 집안살림을 책임지는 안주인이 된다. 장차 부모가 될 것이다. 물론 기존의 가족에 대한 정과 의리를 끊어서는 안되겠지만 무엇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만일 그 선을 지키지 못할 것이면 차라리 서로를 위해 갈라서는 편이 낫다. 서로에게 상처만 될 뿐이다.

너무 서툴렀다. 그리고 너무 순진했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이다. 착한 딸이고 책임감 있는 언니다.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하지만 부부사이에는 다르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없는 가족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곤란한 처지로 내몰린 피해자로 동정의 대상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내로서 그리고 남편의 입장에서 그녀를 보게 된다. 친정식구들에게는 일방적인 피해자이지만 남편과 시댁식구에게는 일방적인 가해자다. 어쩌면 가장 억울할 수 있는 입장인데 자신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친정식구들과 선을 긋고 새로운 가족인 남편과 상의해서 합의아래 도움을 주었어도 주어야 했다.

고마움을 알게 해야 했다.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해야 했다. 지금 받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실을 빚임을 부담으로써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고마움을 모르면 사람은 염치를 잊는다. 미안한 마음을 잃으면 경우가 사라진다. 빚이 아니라 여기면 뻔뻔해진다. 길들여진다. 하물며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미안해해야 하는가? 유진영이 누구의 양해를 얻어 그들에게 그 모든 것들을 베푸는가? 하지만 유진영 자신도 남편 김도연과 상의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이 자초한 결과다. 남편은 물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친정식구들에게도 그녀는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그녀 자신의 순진하고 어리석은 선의가 빚어낸 결과다.

다시 입장을 바꿔보자. 아내인 유진영의 입장에서 그렇다. 남편인 김도연이 보기에 그러했다. 그렇다면 남편인 김도연이 그랬더라면? 아내인 유진영이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면. 그런 경우는 오히려 일상에서 더 흔히 자주 찾아보게 된다. 역시 지금 가장 소중하게 조심하고 긴장해서 대해야 할 상대가 누구인가를 잊은 때문이다. 결혼했으니 내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게 속하거나 내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지사지는 이런 때도 적용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굳이 노인요양병원에 대해 안 좋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패륜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결국 자기의 몸이 고단하고 삶이 곤궁해지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차라리 그보다는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서 전문적인 직원들에게 관리를 받으며 때때로 보고 싶을 때 반갑게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완고한 유교적 가족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노인복지에 관련한 법제가 재가복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모신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 노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모든 것이 자식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부모의 존재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도덕적 관념과 법과 제도의 현실은 그렇게 현실을 따르지 못한다. 요양병원이란 그렇게 외롭고 구차한 곳이 아니라 혼자서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시설이라는 것이다. 유진영이 친정식구를 자신들의 삶에 끌어들이는 것이 무리이듯 김도연 역시 시아버지를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삶에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였다. 이 부분은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더불어 유진영의 여동생과 결혼한 도박중독자에 대해서는 사실 처음부터 답이 없었다. 강제로라도 이혼을 시켜야 했다. 도박은 약이 없다. 도박중독에는 치료방법이 없다. 도박을 하지 못하게 손목을 자르면 잘린 손목으로 어떻게 화투패를 쥔다. 손목이 없으면 발가락으로라도 카드를 쥐고 도박을 한다. 집안을 망치고 가족마저 팔아먹는다. 세상에 상종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도박중독자다. 필자 역시 도박으로 인해 시댁은 물론 친정까지 패가망신하게 된 경우를 알고 있다. 도박에 빠져 있는데 마음을 잡을 것을 믿고 기대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만다. 참 안타깝다.

결국은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족은 하나가 아니다. 가족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단위가 이루는 또 다른 집합이다. 그 개인과 개인이 다시 만나 부부가 되면 그 또한 가족이 된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지금 누구에게 더 큰 책임과 의리가 있는가? 결혼한다는 것은 그런 각오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설사 서로의 가족을 책임지더라도 그 부분까지 기꺼이 감수하겠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과 배려로써 합의아래 해야 하는 일이다. 못한다면 부부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또한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 가운데 하나 크게 성공하면 나머지는 바보가 된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장애인이 된다. 그래서 오히려 그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는다. 악순환이다.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가도 깨닫지 못한다. 이제까지의 익숙함에 길들여져 새로운 소중함을 모른다.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다를 뿐 현실에서는 오히려 너무 많다.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편이 성격이 좋다. 정말 무던하고 좋은 남편이다. 사람은 때로 독해질 필요가 있다. 독하다는 게 악한 것이 아니다. 아내도 친청식구들에게 독하지 못해 오히려 친정식구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들었다. 사람이 착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만든다. 착해서도 사람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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