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18 23:03

적도의 남자 "죄와 악, 그리고 인간, 5월의 광주를 떠올리며 보다."

이장일과 이용배, 최광춘, 최수미,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슬픈 소회를 떠올리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아마 어느새 5월이 되어 버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드라마 <적도의 남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장일은 어쩌면 당시 신군부에 의해 광주로 내려가야 했던 공수여단과 닮았구나. 그리고 최광춘과 최수미 부녀는 당시 방관자였던 우리 자신을 닮아 있다.

과연 누가 있어 같은 동족을, 국민을 죽이라 하는데 기꺼이 총을 들고 그 명령에 따르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했다. 그렇게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들 자신에 의해 이 땅의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러나 과연 당시 광주에서 진압에 참가했던 군인들 가운데 진심으로 당시의 일을 밝히고 사죄하는 이가 누가 있던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이가 도대체 몇이나 되던가?

오히려 빨갱이가 되었다. 빨갱이가 되어 이후로도 수많은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도 차별을 받았다. 아직도 당시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네 형의 무심한 말을 기억한다. 광주놈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 어디에서 듣고 온 이야기일까?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아는 사람은 또 알아서도, 그렇게 진실은 묻히고 피해자들은 눈이 멀고 입이 막혀 하고 싶은 말조차 못한 채 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었다. 불과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단지 시켜서 했을 뿐이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리했을 뿐이다. 이용배도 그래서 말한다. 모든 것은 진노식이 시켜서 그렇게 한 것 뿐이다. 진노식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진노식이 자신과 아들 이장일의 인생을 망쳤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용배는 이장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진노식의 탓을 하며 이장일의 용서를 강요했는가?

차라리 이장일은 솔직하다. 그래서 말한다. 실제로 빨갱이였다. 폭동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이장일도 김선우 앞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보며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아예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그들은 광주라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518의 가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하기는 한국근현대사의 우울한 한 일관된 흐름이기도 할 것이다. 난징에 있었던 일본인은 용서를 구하지만 제주에서 학살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누구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독일인들은 참회하고 과거를 바로잡기를 바라지만 거창에서 학살을 자행한 한국군 가운데 누구도 참회하거나 과거를 바로잡고자 나선 이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최광춘과 최수미는 어떨까? 그들이 물론 직접 범죄에 가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어느 누구도 해치거나 죽이지 않았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다. 광주에서 직접 자국의 국민을 죽였던 것은 신군부와 소수의 국민들이었다. 하지만 아는 이들은 침묵했다.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채 정부가 원하는대로 그들을 비난하고 차별하며 죽은 이들을 또 한 번 죽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 세월 광주와 518의 의미를 안다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말한다. 내가 무슨 잘못인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다.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용서도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죄도 하지 않는다. 소수 뿐이다. 결국에 최광춘은 김선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최수미는 여전히 어쩔 수 없었노라 김선우에게 용서를 강요한다. 이장일은 차라리 김선우를 죽였어야 했다고 말한다. 진노식은 후회하더라도 김선우를 죽일 것이라 말한다. 이용배는 진실을 밝히려는 최광춘을 공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과연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슬픈 현실이다. 분명 80년의 광주는 역사에 실제 있었던 현장이었다. 5월 18일의 그 뜨겁던 의거와 그보다 더 차가웠던 참혹한 비극은 역사에 기록된 실제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저지른 사람이 없다. 그에 동참했던 사람이 없다. 그에 대해 책임지려는 사람도 없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는데 어느새 용서해주어야 한다.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김선우가 한지원에게 처음 화를 낸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당해보지 않고서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누가 무엇을 얼마나 그렇게 잘알아서 그런 식으로 훈수를 둘 수 있을까?

벌써 30년이지만 당시의 광주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사자들이 살아있고, 책임자들이 건재하다. 직접 실행에 옮긴 이들의 사죄도 반성도 아직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남은 이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데 그들은 따뜻하고 안락한 곳에서 쉽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대한 온갖 부정한 이야기들과 함께. 죽은 이들이 모욕당하고 있다.

하필 어린이날이 5월에 있다. 어버이날도 5월에 있다. 스승의 날도 5월이다. 부부의 날도 5월이다. 자비로 세상을 밝히려던 고타마 싯달타도 음력 4월, 양력으로 5월에 이땅에 왔다. 하지만 5월의 하늘은 그날 이후로 항상 우울하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80년 5월의 그 참혹했던 비극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화라는 말이 어떤 것을 혼란스럽게 망쳤다는 말로 대신 쓰인다. 과연 우리는 일본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다. 이제는 그날의 일을 말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이제 와서 그때 일을 왜 끄집어내느냐고 말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다. 오래전에 공소시효도 끝났다. 차라리 저들처럼 서로 물고뜯으며 그렇게라도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선우에게는 한지원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당시의 피해자들에게는?

죄에 대한 드라마다. 인간이 죄를 짓는 드라마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가? 얼마나 약하고 가련한가? 그래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악으로 물든다. 악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선해서도 죄를 짓는다. 죄를 짓고 악해진다. 이장일은 악인이 아니라 죄인이다. 우리는 어떤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죄란? 인간의 악이란? 그에 대해 현실이 답한다. 우리 자신은 혹시 이장일이 아닌가? 이용배이지는 않은가? 어쩌면 최광춘이 아닐까? 최수미가 아닐까? 지금도 저질러지는 수많은 무도함과 포악함 속에서. 5월의 하늘이 우울하다. 인간이 우울하다. 생각한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