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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17 10:20

적도의 남자 "비루한 죄의 최후, 김선우 선택하다!"

이장일의 절규, 아버지가 나를 망쳤어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인간은 악한 것인가? 약한 것인가? 약해서 죄인가? 약하기 때문에 죄인 것인가? 드라마는 묻는다. 그렇다면 최광춘(이재용 분)은 죄가 없느냐고. 그렇다면 최수미(임정은 분)는 죄가 없어야 한다. 그들은 약했을 뿐이다. 두려웠을 뿐이고,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바로 이장일(이준혁 분)처럼.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살의 현장에 있었다. 강간과 약탈과 파괴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묻는다. 당신이라면 달랐을 것 같느냐고. 모두가 같았을 것이다. 단지 하필 그 순간 그 자리에 자기가 있었을 뿐이다. 하필 그때 하필 그곳에 하필 자신이 있어 그런 험한 꼴을 보았을 뿐이었다. 자신도 역시 피해자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피해자인가?

하필 그곳에 있었을 뿐이었다. 하필 그날 김경필은 진노식(김영철 분)을 찾아갔고 어떤 일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김경필이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이용배(이원종 분)는 처음 당황해하면서도 양심이 시키는대로 119에 전화를 걸려고 했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진노식이 강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거래를 제안해 온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광춘이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차이라면 이용배는 그 자리에서 진노식이 거래를 제안했고 최광춘의 경우는 나중에 자신이 거래를 요구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용배는 끝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김경필을 죽였지만 최광춘은 단지 그것을 지켜만 보았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잘못이 없는가? 단지 이용배가 사람을 죽였으니 지켜보고만 있던 최광춘에게는 죄가 없는 것인가? 아버지와 자신의 장래를 위해 김선우(엄태운 분)를 내리친 이장일과, 이장일과 자신의 감정을 위해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써 가리려 한 최수미의 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죄를 짓는 것이다. 진노식이 김경필을 죽이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자기가 김경필을 죽였다고 여기고 그 시신의 처리를 이용배에게 지시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용배의 책임을 묻기에는 이용배가 마지막 뒷처리를 하던 그 순간 김경필은 이미 진노식에 의해 죽은 사람이었다. 단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처럼 말도 하고 움직임도 보였을 뿐이다. 최광춘은 당연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더구나 이유까지 그럴싸하게 있었다. 진노식은 그 순간 문태주(정호빈 분)에 대한 묵은 감정을 떠올렸으며, 이용배는 아들 이장일을 떠올렸다. 최광춘의 머릿속에도 딸 최수미가 있었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선량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도 그 본질은 항상 선량하다. 다만 어딘가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책임으로 인해 억울하게 자신까지 휘말렸을 뿐이었다. 때로 부모의 탓을 하고, 때로 어린시절 친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헤어진 연인을 비난하고, 혹은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한다. 초패왕 항우가 죽으면서 그렇게 외쳤다던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나를 망치려 함이다. 이장일도 말한다.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정작 죄를 짓는 사람이 없는데 죄란 것이 어디에 있을까? 악이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오히려 공소시효가 끝나면서 저들의 완고한 카르텔에 깊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이유인 것이다. 누구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 대신 죄를 지었다. 억울하다. 결백하다. 주장하고 싶어한다.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에게 씌워진 악의 혐의를 벗기 위해. 아마 공소시효가 남아 있었다면 이장일도 그같은 김선우의 뻔히 보이는 수작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장일은 죄가 없고 진노식에게는 죄가 있다. 이용배가 조금만 영리하게 대처한다면 그는 그같은 믿음을 현실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들의 죄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끝까지 없던 일로 무시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죄가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하지만 결국은 정작 자기가 죄를 짓고 싶지 않아서다. 자기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정작 죄를 마주했을 때 이용배는 아들 이장일을 바라보고 이장일은 아버지 이용배를 비난한다. 모든 것이 이장일 때문이라 말하는 이용배와 이용배가 자신을 망쳤다 말하는 이장일, 차라리 죽을까 하는 말에 이장일은 그러라고 내뱉고 만다. 피곤하다. 새삼 느끼게 된 죄의 무게가 그를 지치게 만든다. 더 이상 김선우에 맞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 어째서 나는 이 모양일까? 그 순간에조차 그는 자신을 연민한다.

드라마의 미덕일 것이다. 지지부진 끄는 것 같더니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완결해 버린다. 죄란 그렇게 취약하다. 악이란 그렇게 미약하기만 한 것이다. 진실이 드러났을 제아무리 지독한 죄이고 악일지라도 밝은 빛속에 버텨낼 재간이 없다. 물론 법과 정의가 바로 서 있을 경우다. 같은 검사지만 이장일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는 사이 존재감조차 희미한 또다른 검사 최윤석(강지섭 분)은 집요하게 감춰진 진실을 들춰낸다. 무모할 정도로 올곧은 그의 존재가 있기에 김선우는 더 이상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도 복수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악은 결코 크지도 강하지도 않다. 죄란 절대 대단하다거나 하지 않다. 최윤석 검사 앞에선 진노식처럼 비루하고 초라할 뿐이다.

죄로부터 도망치는 기간은 길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시간들이란 진노식과 이장일 등이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를 속이고 주위를 속인다. 그렇게 연기를 한다. 아니 실제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필사적이었건만 남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들이 허무할 정도다. 어쩌면 진실 아래 드러난 그들의 기만과 거짓이란 이토록 허무하도록 작고 초라한가.

그래서다.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지원(이보영 분)이 김선우의 복수를 말리는 것은. 김선우 역시 한지원이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을 잃어간다면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 고작 그런 하찮은 것을 위해 자신을 버리지 말라.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기에 서로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어떤 증오와 복수와도 바꾸지 않는다. 이장일이란, 그리고 진노식이란 그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가치조차 없다. 진노식에게 어울리는 것은 그의 얼굴에 끼얹은 한 잔의 물 뿐이다. 나와 내 가족과 내 남자를 모욕하지 말라.

바로 그것이 강하다는 것이다. 긍지라는 이름의 오만과 존엄이라고 하는 이름의 난폭함. 그래서 그녀는 사납다. 강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래서 그녀는 조용할 수 있다. 진노식따위는 발아래로 본다. 진노식에 대한 원한이나 아버지가 일으킨 부경화학에 대한 미련 따위 그에 비하면 그저 하찮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김선우의 곁에서 그를 지탱한다. 비루하게 이장일의 주위를 떠돌며 그를 비웃고 조롱할 뿐인 최수미의 아집과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그림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한지원에게는 자기 자신이 온전히 있다. 그래서 대비된다.

"그 돈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졌겠죠!"

지금에 와서 이장일 역시 간절히 바라는 것이건만. 최수미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혹시나 뒤늦게나마 가질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려 했고, 최수미 역시 그에게 모든 것을 베풀려 했지만, 정작 그로 인해 이장일은 진정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결국 약한 것은 이장일 자신이었다. 친구를 저버려 스스로 외로움을 택한 것도, 아무도 없이 자신을 내몰아 추위로 몰아넣은 것도 결둑 이장일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의식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노골적이라는 것이 어떤 숨겨진 의도를 예감하게 한다. 모두 되돌린다. 모든 시간과 그 과정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되돌린다. 물론 이장일을 용서하지는 않는다. 이장일은 아직 그에게 용서를 빌고 있지 않다. 먼저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미리 용서하는 것은 의미없는 오지랖이다. 어쩌면 이장일마저 지우려 하는 것은 아닌가. 이장일에 대한 친구로서의 우정과 미련마저 그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와 함께 떠나보내려는 것은 아닐까. 김선우에게도 무엇보다 자신과 한지원이 소중하다. 이장일은 이제 그에게 그렇게 가치가 있지 않다.

처벌은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루어진다. 법에 의해.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한때 같은 학교에 다녔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남남이다. 미련을 가질일도 원망으로 미워하며 대할 일도 없다. 이장일은 아마 모든 것을 잃게 될까? 검사로서의 지위와 그동안 쌓아 올린 명예와 그리고 아버지. 친구. 최수미는 결코 이장일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녀는 이장일의 가장 추악한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는 이장일에게 수렁이다.

복수란 차라리 쉽다. 처절하게 응징하여 공포와 고통 속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죄를 통해 더 큰 절망과 좌절 속에 몰아넣는다. 자신의 죄와 마주하는 것보다 더 큰 복수는 없다. 자신을 망치려는 복수가 아니라 앞으로 나가라려는 복수다. 흔한 복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죄로 빠져드는 나약한 인간과 그럼에도 자신을 지키는 강한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또다른 아버지 문태주와 연인 한지원. 죽은 아버지 김경필과 이장일의 아버지 이용배. 진노식이 김선우의 아버지가 아니라 다행이다.

확실히 차라리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세상의 추악함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릴 적에야 세상의 더러움이란 잘 보이지도, 그렇다고 본다고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는다. 가끔 김선우가 느끼는 시각의 어지러움은 바로 그로 인한 것일 게다. 바로 앞을 보기 위해서는 그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평생 성장하는 동물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은 성장한다. 어쩌면 가장 잔인한 복수일 것이다. 이제 이장일이란 김선우에게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한지원만 보인다.

막다른 지점에 와 있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복수인가? 아니면 진정한 자신의 삶인가? 증오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원망과 분노인가? 아니면 자신의 행복인가? 김선우는 강한 남자다. 최소한 이장일보다는 강하다. 적도는 항상 뜨겁다. 적도의 남자는 차고 뜨겁고 강하다. 기대한다.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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