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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15 10:33

사랑비 "서인하의 결심, 그러나 김윤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비극이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고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든다. 고전적 로맨스의 향기를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쩌면 사람이 갖는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이기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이타마저 이기로 바꾼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위한 기쁨이 된다.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직 한 사람만 보이고 그를 사랑하는 자신만 보인다. 다른 사람은 버려진다. 그래서 사랑이란 대개 비극을 동반한다.

얼마나 좋은가? 모두가 축복하는 사랑이란. 내가 좋아하고 상대가 좋아하고 서로의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좋아하며 축하해준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란 물같이 흘러가는 사랑이다. 멈추는 법도 없고 머무는 법도 없다. 물이란 어딘가 부딪혀야 굽이도 만들고 못이 되어 고이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데 상대가 받아주지 않거나, 서로가 좋아하는데 주위에서 방해하거나, 아니면 나 자신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서로 엇갈리며 부딪히는 가운데 포말처럼 화려한 무지개를 이룬다. 물이 깨지고 바위가 부서지며 땅이 그 모양을 바꾸는 가운데 햇살에 비친 포말의 무지개만이 아름답다.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전혀 주위라고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가 사랑을 한다. 아들이 남는다. 아내가 남는다. 어머니가 사랑을 한다. 딸이 남는다. 아들과 딸이 사랑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누군가도 있다. 이미호(박세영 분)와 한태성(김영광 분)처럼. 그들처럼 서준(장근석 분)과 정하나(윤아 분)도 남는 누군가가 된다.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에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지만 그로 인해 자신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서준과 정하나를 위해 아버지 서인하(정진영 분) 역시 아버지로서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한다. 서준의 어머니이자 서인하의 아내였던 백혜정(유혜리 분)은 이미 남겨졌다. 모든 것을 체념한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홀가분하기만하다.

아름답지만 음울하다. 아니 우울하기에 아름답다. 로맨스란 그렇다. 대부분의 로맨스는 슬프다. 슬퍼서 아름답다. 행복해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드물다. 비극의 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상은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감정은 절망에 가까운 슬픔이다. 좌절로 짓이겨진 분노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을 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상처주고 상처입는다. 그조차도 사랑한다. 서인하로 인해 서준이 상처입고, 김윤희(이미숙 분)으로 인해 정하나가 상처입고, 서준으로 인해 다시 이미호가, 정하나로 인해 역시 한태성이 상처입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에 없는데 억지로 끌려다니고 만다면 그 또한 사랑이 아니다. 로맨스란 사랑해서 행복한 이야기다. 그래서 때로 답답하기도 하다.

서준의 솔직한 감정이 시키는 것은 정하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정하나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시키는 것은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정하나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역설이며 모순이다.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서준이 화내는 이유다. 정하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하나를 포기해야 하고, 정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갈 길을 잃은 가운데 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화내는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 앞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보다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은 아직도 정하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비장한 장면일 텐데 의외로 사소하게 넘어가고 있다. 드라마의 중심이 서준과 정하나에서 서인하와 김윤희 커플로 옮겨간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서인하와 김윤희가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서인하와 김윤희의 관계로 인해 서준과 정하나의 사이가 흔들리고 마는 상황인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정으로 인해 그 아들과 딸의 일상이 휘둘리고 만다. 하지만 그래서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서준과 정하나인 것이다. 만일 자식들로 인해 자신들이 휘둘린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 서인하와 김윤희가 주인공이 된다. 서인하가 아들을 위해 30년을 간절히 바라오던 결혼마저 깨고자 하는 의도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예감하는 이유다. 하필 김윤희가 병에 걸렸다. 실명의 위기에 있다.

이미 한 번 병으로 김윤희를 놓아보낸 경험이 있다. 결핵이라는 당시로서는 불치병에 걸린 그녀를 서인하는 무력하게 떠나보내야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마트면 영영 이별이 될 뻔했었다. 아니 한때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김윤희가 미국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혜정과 결혼해서 아들 서준까지 낳고 있었다. 그러고서도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해 결혼까지 깨고 지금까지 빈껍데기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다시 김윤희가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녀를 놓아보낸다?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는데 그런 김윤희를 홀로 내버려둔다? 그것은 서인하의 트라우마다. 서인하가 쉽게 김윤희를 놓지 못할 이유가 된다. 서준과 정하나 사이에도 골은 깊다.

이미호의 집착이 갈수록 노골화된다. 한태성 역시 더 이상 정하나에 대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두 사람의 위기는 다른 두 사람에게 기회가 된다. 그래서 더욱 불타오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할 감정이 서로를 더욱 뜨겁게 들뜨게 만든다. 앞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 있고, 뒤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또다른 사랑의 감정이 있다. 앞뒤로 갇힌 채 그들은 서로를 원하면서도 밀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밀어내려 하면서도 다시 돌아오고 만다. 조수(오승윤 분)나 이선호(김시후 분) 등의 주변인물들의 개입도 있어 혼란은 커진다. 그럼에도 정리되어야 한다.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어머니인가? 딸인가? 서로 부모와 자식간에 연적아닌 연적이 된다.

해외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야 아직 패륜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해외에서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다. 고전적인 로맨틱한 분위기와 영상이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시대에든 사랑이라는 운명 앞에는 항상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랑은 더욱 아름답고 더욱 깊어진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이처럼 관계를 꼬는 것을 좋아한다. 부모의 재혼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남매가 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일본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로맨스의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재혼하는 당사자들인 부모세대의 과거이야기까지 더해지며 오래된 로맨틱한 이야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세대들을 노려볼 수도 있다. 아마 어느 사회에서든 그만한 나이가 되어 그런 정도의 사연을 하나쯤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더구나 딱 그들 또래가 유럽에서도 한창 청년운동에 매진하던 세대이기도 하다.

하여튼 필자가 드라마를 보면서도 항상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전통적인 소재는 거의 갖다 쓰고 있다. 불치병과 이별, 그리고 부모의 재혼으로 인해 꼬이는 관계들, 남자의 절망과 여자의 사랑. 서준과 정하나의 캐릭터마저 전형적이다. 하지만 때로 그래서 재미있는 드라마도 있는 법이다. 장르적 공식이란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함이며 안도감이기도 하다.

서인하와 김윤희가 서로 끝내기에는 3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깊고, 그렇다고 두 사람을 이어주기에는 서준과 정하나의 지금이 나무 아프다. 그들은 부모이고 또한 그들은 자식이다. 누구 하나는 희생해야 한다. 서로 희생이 아닌 답은 없을까? 물론 현행법상으로도 서로 호적에 올라 있지 않은 남녀가 결혼하는데 부모의 결혼이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정서적인 문제가 걸린다. 제작진이 내놓을 답을 기대해 본다.

비극이 깊어질수록 재미있다. 그리고 비극은 당사자들이 선량할 때 더욱 한없이 깊어진다. 이미호도 독하기는 하지만 악하지는 않다. 백혜정 역시 질투로 인해 악해지려던 자신을 이겨내고 있다. 한태성은 사람이 너무 좋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것도 악취미일 텐데. 지켜본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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