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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15 08:42

패션왕 "이가영과 강영걸의 미묘한 거리, 정재혁 상처입다."

이가영의 절망, 제가 아직도 여동생으로만 보이세요?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문득 생각한다. 이 드라마가 미니시리즈가 아닌 40부작이나 50부작쯤 되는 장기시리즈로 기획되었다면 어땠을까? 감정과 감정의, 행동과 행동의 사이에 충분한 사이를 두고, 이유와 사연을 넣고, 개연성을 충분히 쌓아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이렇게까지 정신없었을까?

너무 바쁘게 변한다. 때로 지켜보는 자신조차 따라가지 못해 버벅거린다. 이렇게나 서툰가? 작가가 서툰 것인가? 아니면 드라마속 네 남녀가 서툰 것인가?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래서 후회하고, 그러면서도 미련을 두고 화를 내고, 서로를 상처입히면서 자신도 상처받는다. 바로 일너 걸 질풍노도라 하는구나. 그렇게 살아가기엔 이미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어린아이다. 어린아이에게 칼이 쥐어졌다. 세상이 자기 것 같다. 하지만 온전한 자기 것이란 어디에도 없다. 쉽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함정이다. 오로지 자기만 잘났다. 자기가 잘나서 이 모든 성공을 이루었다. 편을 나눈다. 내 사람과 그 밖의. 심지어 적을 둔다.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내게 그 수모와 서러움을 안겼다. 하지만 그 안에 다른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자기 안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 뿐이다.

이가영(신세경 분)이 강영걸(유아인 분)의 집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다. 강영걸의 집에 그녀가 있을 곳이란 없다. 오로지 강영걸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강영걸이 일방적으로 바라고 욕망하는 강영걸 자신의 이가영이 있을 뿐이다. 강영걸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가영은 자신이 아닌 강영걸의 이가영이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니다. 그래서 묻는다.

"사장님, 제가 아직도 여동생으로만 보이세요?"

그 순간에도 강영걸은 단지 자기의 일방적인 감상과 감정만을 털어놓고 있었을 뿐이다. 강영걸의 고백 속에 정작 이가영은 없었다. 오로지 강영걸이 일방적으로 보고 바라는 이가영만이 있을 뿐이었다. 강영걸이 보기에 어떠했던가? 강영걸이 그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가? 과연 그 순간 이가영이 보는 강영걸이란 어떠했을까? 이가영은 강영걸에게서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보통의 연인같으면 그 순산 서로에 대한 첫인상도 묻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다.

강영걸이 이가영을 위해 해주겠다고 하는 것들 역시 결국은 이가영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들 뿐이었다. 이가영이 그러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이가영 자신의 주장이나 요구란 어디에도 없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순간 무엇을 간절히 해주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강영걸 자신이 해주고 싶다. 강영걸 자신이 그렇게 해주고 싶다. 보통 무언가 해주려 할 때 일방적으로 묻지도 않고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떠안기려 하는가? 강영걸이 그토록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대상도 역시 현실의 이가영이 아닌 강영걸 안의, 그의 욕망이 투사된 또다른 강영걸인 셈이다. 그렇게 그들은 멀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당연하다. 싸움이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강영걸은 이가영을 보지 않고, 이가영은 강영걸에게 보이지 않는다. 일방통행일 뿐이다. 그나마 두 사람의 사이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가영이 바보인 때문이다. 바보같을 정도로 순진하고 올곧다. 어쩌면 사랑보다는 의리일 것이다. 가장 춥고 외로울 때 빛이 되고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었던 강영걸에 대한 각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어느새 이가영의 감정은 막다란 골목에 몰려 있다. 강영걸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자기를 위해 강영걸을 포기하던가. 강영걸 자신이 그것을 강요해 온다. 그도 아니면 어느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강영걸이 뒤늦게 이가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던가.

사실 헤어지는 연인의 당연한 패턴이다. 서로 사랑하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랑이 식었을 때 문제는 드러나고 만다. 그 전까지는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서로의 입장에서 자신에 대해서보다 먼저 배려하고는 한다. 그러다가 사이가 멀어지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느낀 것들. 내가 보고 들은 것들. 내가 겪어야 했던 것들.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추악한 미련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착각한다. 서로가 불행에 빠지게 되는 함정이다. 과연 지금 상태에서 강영걸의 곁에 남는다고 이가영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가영의 본능이 그래서 강영걸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게 만든다.

미안함이 있다. 미련도 있다. 아직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를 똑바로 보아주지 않는다. 미안해서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사랑해서 바라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다. 미련이 있어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어디데도 자기의 자리란 없다. 자기가 떠난 그 순간부터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더해진 것도 고쳐진 것도 없다. 오히려 더 완고해진 강영걸의 일방적 감정과 요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이가영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강영걸이 바뀌거나, 아니면 이가영 자신이 모든 감정과 미련을 접거나.

정재혁(이제훈 분)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강영걸을 좋아한다. 그를 사랑한다. 그런데 자꾸 자기에게 다가오는 정재혁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회사에서 팀장도 되었다. J패션이라면 굴지의 대기업이다.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 자신을 배려해준다. 서툴기만한 일방적인 감정과 행동 속에서 그런 정재혁의 진심이 느껴진다. 하필 회사를 그만두려는 순간 회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정재혁의 말이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무 감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정재혁의 선의를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동요가 있으니 불안도 있고, 확신이 없으니 두려움이 생긴다. 그 순간 역시 교차하는 것은 간절하게 자기에게 강요해 오는 강영걸의 모습이었다. 강영걸도 포기할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이가영으로 인해 정재혁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이가영 자신조차 더 이상 정재혁을 배려할 여지란 없었기에 그 상처는 더욱 치명적이다. 아버지로부터 굴욕에 가까운 야단을 들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이가영이다. 그런데 이가영으로부터 다시 거절당한다. 그 순간의 상처가 정재혁으로 하여금 최안나(유리 분)를 떠올리게 만든다. 새삼 최안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일깨우게 되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서툰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정재혁이 다시 최안나에 대한 감정을 되돌린다면 드라마가 우스워진다. 오히려 최안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최안나에 대한 정재혁의 마지막 정리라 보는 것이 옳다. 정재혁이 그동안 미처 풀지 못한 후회이고 아쉬움이다. 연인이 진정으로 헤어지는 순간이란 정겨워서 오히려 서러운 법이다. 어쩌면 이것이 다시 최안나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강영걸이 최안나에게 건넨 정재혁이 간직하고 있던 그녀의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지금으로서는 확실치 않다. 정재혁이 다시 최안나에게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오히려 그보다는 강영걸에 대한 최안나의 집착에 대해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아직 정재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그런 최안나에 대해 강영걸은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정재혁이 간직하고 있던 최안나의 사진이 지금 딱 두 사람 사이의 거리다. 최안나는 한때 정재혁의 여자였고, 강영걸도 그것을 안다. 그리고 강영걸은 그런 정재혁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다시 강영걸에게서까지 밀려난 최안나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그녀는 다시 돌아오게 될까?

강영걸의 폭주가 심상치 않다. 이가영마저 그대로 튕겨내버릴 기세다. 가장 어렵던 시절 항상 편이 되어주던 친구 장일국(신승환 분) 역시 그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다. 물론 강영걸 역시 크게 성공을 거두고 막대한 돈을 벌게 된 뒤 이것저것 장일국에게 챙겨준 것이 적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의지할 곳 없이 떠돌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단 한 사람의 친구에 비할까? 그런데도 마치 자기가 다 책임지고 먹여살리는 것마냥 그를 무시하고 모욕준다. 조순희를 공격할 가장 강력한 수단을 바로 장일국이 관리하고 있다. 강영걸에게 치명적인 빈틈이 되어주지 않을까? 최안나와의 관계 역시 지금으로서는 아슬아슬하다.

조순희와 정재혁은 적이다. 정재혁은 자기에게 수모를 주었고, 조순희는 여동생 같은 이가영에게 고통을 주었다. 하필 강영걸의 여동생 또한 고모의 집에서 얹혀살다가 병으로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다. 그를 분노케 한 세상에 대한 복수다. 더구나 조순희와 정재혁은 모두 이 사회의 기득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반면 서툴기만 한 그의 방식은 장일국과 이가영이라는 자기 편들마저 억압하며 소유하려 한다. 소유가 아니면 적이다. 어린아이같은 사고방식이지만 정작 강영걸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의 주위에는 그것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기에 소유에 집착한다.

과연 그런 점에서 강영걸과 정재혁은 거울에 비친 서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전혀 동떨어진 이가영과 최안나와는 달리 강영걸과 정재혁을 보고 있으면 서로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필 두 사람 모두 이가영을 좋아하고 이가영에게 호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강영걸은 아버지로부터 버려졌고, 정재혁은 아버지에게 소유되고 있다. 강영걸은 아버지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고, 정재혁은 여전히 아버지의 품에서 아버지의 억압속에 살아간다. 두 사람의 소유에 대한 갈망이 닮았으면서도 다른 이유다. 강영걸은 처절하고 정재혁은 애처롭다. 두 사람 다 무엇 하나 온전히 소유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기에 강영걸은 정재혁을 증오하고, 아버지가 없기에 정재혁은 강영걸에 질투한다. 다 큰 어른들이지만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소리죽여 운다. 정재혁의 아버지는 정작 아들인 정재혁 대신 아버지 없는 강영걸을 인정하고 있다. 형제라 해도 어울리지 않을까?

조순희의 반격이 매섭다. 첫타겟은 최안나다. 최안나는 강영걸 자신이 충분히 흔들고 있다. 장일국도 있다. 장일국과의 사이에서도, 그리고 장일국의 뒤에 있는 황태산과도 강영걸은 사이를 벌리고 있다. 강영걸의 요양소에 있다는 아버지 또한 강영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줄 것이다. 강영걸이 모든 것을 잃고 궁지에 몰렸을 때 그때는 비로소 온전히 이가영을 원하게 될까? 조순희가 행복하게 끝날 리는 없으니 그때는 이가영이 직접 복수의 칼날을 들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가영의 성격에 쿨하게 용서하고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굳이 상대하는 것조차 번거롭다. 아예 망하도록 해서 원망을 사기보다 평생을 굴욕 속에 숨죽이고 살도록 하는 것이 더 큰 복수다. YGM에 대한 이가영의 당당한 집착이 그녀의 성장의 증거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결국 대립한다. 강영걸의 GG와 이가영의 YGM. 물론 처음 만든 것은 강영걸과 이가영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껏 지켜오고 키워온 것은 정재혁과 자신이다. YGM에 대해서만 한정할 때 정재혁과 이가영은 지금껏 YGM을 위해 함께 해 온 동지가 된다. 그런 이가영의 앞에서 정재혁을 비난하는 것은 이가영 자신을 비난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강영걸은 자신의 그같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마음놓고 이가영을 비난하고 이가영을 원망하며 이가영에게 분노한다. 강영걸과 이가영 사이의 균열을 보여준다. 과연 YGM을 되찾으려 하는 강영걸 앞에 이가영은 YGM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인가? 첫싸움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싸워야 관계가 깊어진다.

역시 아직도 혼란스럽다. 너무 모든 것이 급하게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충분한 설명과 설득의 과정 없이 그냥 보여진다. 그냥 말하고 그냥 행동하는 것이 모두 보여진다. 당황스럽다. 과연 이가영은 강영걸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재혁에게 보이던 흔들리는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진심인가? 강영걸의 분노는 결국 자신마저 파괴하게 될 것인가? 최안나의 입장은 어떻게 정리될까? 모두의 안에는 혼돈이 있다. 작가의 머릿속에까지 혼돈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주말드라마로 50부작쯤 편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미묘한 거리가 느껴진다. 강영걸은 이가영을 집으로 데려가려 하고 이가영은 그것을 한사코 거절한다. 이가영이 셔츠의 소매에 새겨준 이름에서 강영걸은 정재혁을 보고 만다. 서로 원망할 수 있게 되었지만 딱 거기까지다. 인생은 혼돈이다. 젊음은 그 혼돈의 한복판이다. 아직은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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