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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25 07:33

남자의 자격 - 또 몰래카메라인가?

예능과 몰래카메라의 관계...

 
실망이었다. 무인도 미션이 사실은 이경규 몰래카메라로 기획된 것이었다니. 제작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달까?

몰래카메라란 이를테면 예능에서 치트와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웃음이란 다른 사람을 골리고 난처하게 만드는 것에서 나온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웃는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왁자하게 떠드는 이야기의 태반이 서로를 놀리고 비하하고 괴롭히는 내용들이다. 몰래카메라는 그러한 웃음의 첨단에 존재하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작당을 한다. 음모를 꾸미고, 준비를 하고, 연기를 하고, 그렇게 몰아간다. 마지막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사자의 허탈해 하는 모습이란. 완전히 바보가 되어 농락당하는 모습에서 마치 악동의 그것과 같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없는 보장된 예능의 코드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문제다. 어지간해서는 실패하는 일이 드물다. 그리고 의외로 한 사람을 속여먹자고 여럿이 작당하기로 하면 속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쉬우면서도 효과는 확실하다. 소재가 떨어지고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 때 곧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유혹이다.

실제 그래서 예능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프로그램 치고 몰래카메라 한두 번 시도해보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아니 말 그대로 소재 떨어지고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이 없을 때 가장 손쉽게 시도하고 하는 것이 바로 몰래카메라다. 그래서 사실 지금에 와서는 많이 식상하기도 하다. 또 몰래카메라인가?

지난주 양준혁 몰래카메라에서도 또 몰래카메라인가 하는 말이 나왔었다. 작년에도 한 번 했는데 올해도 또인가?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더니만 벌써 몰래카메라만 두 번 하고 있는가. 그런데 하물며 그 대상이 이경규라면.

말했듯 몰래카메라라는 자체가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적 충동을 자극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속이고 골탕먹이고 바보로 만들어 그 당황하고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자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괴롭히자는 것이다. 마음껏 놀리고 괴롭혀 그것으로 웃음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하게 되면 어떨까? 다른 출연자는 없는데 한 사람에 대해서만 유독 두 번 몰래카메라를 한다.

작년 1주년 특집으로 몰래카메라를 했을 때도 그래서 말이 많았었다. 어째서 이경규인가? 나이도 적지 않은 이경규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굶도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다. 취지는 좋지만 - 아니 취지조차도 안이하게 몰래카메라라는 포멧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 몰래카메라다. 그것도 이경규를 대상으로. 어떤 느낌이겠는가?

차라리 이경규가 전처럼 강성캐릭터였다면 모르겠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모두가 합심해 속여넘겨야 할 정도로 기존의 권위적인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가끔은 숨통을 트이는 의미에서 기념삼아 한 번 더 몰래카메라를 찍어 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니까.

많이 약해졌다. 많이 순해졌다. 이제는 제법 동생들에게도 당할 줄 안다. 스스럼없이 당해주고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리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지난주, 지지난주 양준혁 몰래카메라에서 나타난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난장판의 몰래카메라가 그 한 예였다. 예전이라면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몰래카메라를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도 없다. 그런데 굳이 이제 와서 또 한 번의 몰래카메라라?

자칫 이경규를 따돌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것도 최연장자다. 가장 나이가 많고 연예계에서도 선배다. 그런데 이경규만 유독 몇 번이나 반복해서 몰래카메라를 하는 것은 불손가에 보일 수 있다. 예의없고 경우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김태원의 악의어린 짓궂은 웃음은 한 번으로 족했다.

그런데도 또 한 번의 몰래카메라. 그것도 1주년에 이은 2주년. 타겟은 역시 이경규. 이윤석이 중간에 흘리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간만에 사람들로 하여금 배꼽을 쥐게 만들었던 지난주, 지지난주의 난장판 몰래카메라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이제는 진부해져버린 이경규 몰래카메라 뿐. 과연 시청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감이 떨어진 것일까? 한 번 통했으니 두 번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남자의 자격>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다. <남자의 자격>이 몰래카메라만을 위한 예능인가?

"야, 남격이 뭐 매주 몰카만 하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통했다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통하리라는 보장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럴수록 조심하고 자제해야 한다. 제작진도 알지 않은가? 그동안 줄곧 <하모니2>의 기획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신원호PD라면. 그나마 양준혁 몰래카메라는 신입멤버인 양준혁의 신고식으로서 그나마 신선하고 의미가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다. 양준혁 몰래카메라가 아니더라도 또 다시 몰래카메라인가? 다시 한 번 또 몰래카메라를 보아야 하는가? 하마트면. 그것밖에는 안 되는가?

하지만 그밖에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특히 무인도에 가게 되면 가지고 가고 싶은 물건 세 가지. 일상에서도 적잖이 듣게 되는 물음이다. 만일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고 싶은가? 일상이고 습관이고 지향이고 가치이고 정서다. 거기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물론 무인도에서의 생활과는 전혀 거리가 먼 관념에 대한 이야기다.

책과 책갈피와 도서상품권을 가지고 무인도로 갈 것이라 대답한 이윤석의 경우가 그런 예다. 실제의 무인도가 아니다. 먼 바다와 어디에도 인적이 보이지 않은 외딴 백사장,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그곳에서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습관처럼 나오는 것이 이윤석의 책이고 김태원의 기타이고 윤형빈의 정경미였다. 더구나 양준혁을 제외하고 <남자의 자격> 방송 초기이니 그다지 실체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프로필의 하나로써 여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한 세 가지만을 가지고 무인도에서 생활하라고 한다. 그나마 낚시대는 낫다. 이정진의 침낭이라든가, 김국진의 랜턴, 양준혁의 칼과 냄비, 그러나 이경규의 일기장이나 김태원의 TV를 가지고는 거기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벌써부터 머릿속이 있는대로 꼬이는 것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려 한다. 더불어 쓸데없이 진지하거나 비장하지 않게 적절하게 두 시간 단위로 하나씩 요구하는 물품을 제공하겠다는 룰이 한 몫 했다.

그것은 게임이었다. 두 시간에 한 번 제작진의 배가 들어온다. 무엇을 원하는가? 정경미를 집으로 보낼 것인가? 텐트를 받을 것인가? 양은냄비와 라면과 그리고... 그 한 가지를 무엇으로 정하느냐에 긴장이 고조된다. 그렇지 않아도 쓸모없는 것들만 잔뜩 가지고 온 터였다. 과연 무인도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결국 결론은,

"말조심하자!"
"어디서나 함부로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는다."

말이 씨가 된다. 언제 내가 내뱉은 말이 어떻게 돌아올 지 모른다.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주제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나 역시 과연 세 가지 무인도에 가져갈 것을 이야기하게 하고 그것들만 가지고 실제 무인도로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더불어 묘하게 분주하면서도 한가한 모습이 보기 좋다. 생존의 절박함과 그런 가운데 일상에서 벗어난 넉넉함이 있다. 새 알을 보고 놀라고, 파도를 보며 봉으로 물고기를 때려잡을 생각을 하고, 의외로 이정진이 이런 데 강하다. 아무거든 주워서 살피고 쓸모있는 것들을 찾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까이에 제작진도 있고, 보급도 이루어지고 있고, 다음날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잠깐의 일탈인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의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또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재미있었다. 첫번째 미션인데 양준혁의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이 어느새 캐릭터가 잡혀가는 것 같고. 한 마디로 웃긴다. 이정진도 윤형빈도 이번에는 다들 작게나마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에도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다 하고 있었다.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이름 그대로 주어진 상황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비니를 벗은 김태원의 모습도 독특한 매력이었다. 조금 더 머리숱이 늘어나고 머리가 길어지면 과거 11집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살짝 정신줄을 놓은 듯한 김국진의 리액션도 흥미로웠다. 남은 것은 대통령일까?

과연 일곱 남자들의 좌충우돌 무인도 도전기는 어떻게 끝을 맺으려는가? 역시 한 주 더 지켜봐야겠지만. 보급도 이뤄지고 퇴장의 조건도 더없이 명확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더 이상 몰래카메라 같은 뻔한 수단에 의존하지 말 것을 권하며. 치트는 결코 내실을 채워주지 않는다. 겉보기만 좋을 뿐이다. 명심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반성하기 바란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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