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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08 08:50

패션왕 "강영걸이 살아가는 방식, 분노와 연민이 후회와 만나다."

박애주의자 강영걸에 이가영은 원망하고 최안나는 상처받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쩌면 잘못 보았을 수도 있겠다. 단순히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는 최안나(유리 분)의 안목과 인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그것만을 위해 이가영(신세경 분)이 아닌 최안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마저 외면하면 그녀에게는 갈 곳이 없다.

아마 강영걸(유아인 분)이란 박애주의자였을 것이다. 공장 누님들이 이야기하는 그대로 어렸을 적의 상처가 그로 하여금 여성에 대해서는 박애주의자로 만들었다. 모든 여성을 사랑한다. 그리고 가엾게 여긴다. 그러나 믿지는 않는다.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실망 만큼이나 어머니를 떠나게 만들고 자신들마저 저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있을 것이다.

공장 누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과도하게 배려한다. 공장 누님들이 강영걸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젊고 잘생겨서도 있겠지만 애써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들을 책임지려 애쓰는 모습이 꼭 막내 외아들 같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가족과 집안에 대한 책임으로 자못 의젓해지려 하지만 누님들이 보기에는 그래봐야 딱 막내다. 섣부른 오기가 귀엽고 어느새 발견하게 되는 가능성이 대견하기도 하다.

이가영에 대한 강영걸의 관심도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울며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매정한 조순희(장미희 분)에게 울며 애원하다가 끝내 내팽개쳐져 주저앉은 그녀에게서 어린시절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울던 자신과 여동생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여동생은 죽고 세상에 없는데 이가영이 다시 그를 찾아왔을 때 그래서 그는 빚쟁이에게 쫓기면서도 애써 돈을 마련해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려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J패션이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유수의 대기업이고, 정재혁(이제훈 분)은 그 대기업의 후계자였다. 정재혁만 제대로 한다면 더 이상 이가영에 대해 걱정할 것은 없겠다.

반면 최안나의 경우는 처음에는 동경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복수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연민이었다. 그녀는 강영걸 자신이었다. 현실에 배반당한 강영걸 자신의 모습이었다. 외롭던 성장과정과 그렇기에 더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 그러나 그같은 그녀의 노력은 끝내 배반당하고 만다. 그녀에게는 꿈이고 삶의 목적이었겠지만 정재혁에게 그녀는 그저 지나가는 한 과정에 불과했다. 최안나에게는 전부였던 것이 정재혁에게는 일부조차 아니었다. 강영걸의 죽을 것만 같던 배고픔이 정재혁에게는 단지 한 순간의 성가심에 불과했던 것처럼. 그녀가 자신을 의지해 오는데 과연 강영걸의 입장에서 그녀를 저버릴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정작 강영걸은 최안나를 믿는가? 강영걸이 이가영을 붙잡지 못한 이유다. 여전히 강영걸은 이가영을 사랑한다. 이가영과의 인연을 이어주던 팬던트의 큐빅을 모두 다이아몬드로 바꾸려는 의미다. 이가영은 없지만 이가영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정재혁을 만나 담판을 지은 것처럼 이가영에게 아무거라도 해주었으면 싶다. 그래서 이가영이 아닌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준 팬던트를 다이아몬드로 꾸민다. 언제고 다시 이 팬던트를 이가영에게 전할 것을 생각하며. 마치 이가영을 위해 과거 조순희가 그녀의 부모의 재산을 가로채던 과정을 애써 조사한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영걸은 이가영을 잡지 못한다. 믿지 못하니까.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은 대개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소유하고 싶거나, 아니면 그에게 기대고 싶거나. 정재혁에게 최안나가 전자였다면 이가영은 후자다. 최안나는 소유하고 싶었고, 이가영에게는 소유당하고 싶었다. 그러나 강영걸에게는 소유하기에는 최안나나 이가영이나 너무 가엾고, 그렇다고 기대기에도 그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

아니 원래는 이가영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강영걸답지 않게 그녀를 믿고 기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응석도 부렸다. 이가영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멋대로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것이 그녀를 떠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과연 강영걸이 진정으로 이가영을 믿었다면 이가영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렇게 자기멋대로 일을 진행하려 했을까? 이가영의 입장은 묻지 않고 오로지 일방적인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려 했을 뿐이었다. 드물게 보이던 강영걸의 소유욕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가영이 자신을 떠나려 한다. 체념에 익숙해 있던 강영걸이기에 포기도 빠르다. 그것이 다시 이가영과 자신에게 서로 상처가 된다.

미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그러한 미련에 솔직하지 못하다. 이가영을 위해 그랬다. 이가영을 위해 그러려 했다. 그 말을 하기가 무에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강영걸은 아직 너무 서툴다. 자기에 대한 자신이 없다. 이가영에 대한 확신도 없다. 수줍게 혼자 사랑하고 비겁하게 혼자서 분노한다. 이가영에게 거절당한 분노를 그는 사업으로 풀어낸다.

상징적이었다.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고모에게 연락받고 찾아가서 아버지의 소식을 듣는 장면은. 아버지란 강영걸의 앞에 놓인 현실이었다. 무책임하게 자신을 버리고 동생마저 죽게 만들었다. 그런 주제에 잘 살기라도 하지 자기 자신마저 망가뜨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떠난 책임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그는 아버지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화를 내며 고모의 집을 나서는 그의 주위를 둘러싼 달동네의 풍경이 그래서 쓸쓸하고 황량해 보인다. 그가 보는 세상의 모습일까? 정재혁의 아버지 정만호(김일우 분)의 평가가 옳을 것이다. 각박한데다 어설프기까지 한 현실은 그를 분노케 한다. 그로 하여금 성공케 만드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정재혁에게 분노하고, 그러면서도 성공을 거두고서는 굳이 정재혁의 주위를 맴돌며 그에게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려 한다. 정재혁과 같은 아파트에서, 좋은 차에 운전기사까지 두고, 굴욕처럼 남아 있는 전재혁을 두고 떠나는 강영걸의 표정이 자못 통쾌하다. 이가영에게 자신의 호의를 거절당하고 나서도 그래서 그는 그 분노를 최안나와 추진하던 계약을 마무리짓는 것으로 표현한다. 분노야 말로 그가 살아가는 힘이다. 연민으로 사람을 대하고 분노로써 세상과 싸운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사무치는 외로움일 것이다. 그에게도 믿고 기댈 수 있는 곳이 생길 것인가?

그래서 가장 가엾은 것이 최안나인 것이다. 그들은 상성이 좋지 못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좌절과 상처가 너무 깊다. 그렇다고 서로를 보듬기에는 그들은 아직 너무 작고 어리다. 자기의 상처만을 돌보기에도 그들은 아직 너무 버겁다. 강영걸은 자신의 상처만으로도 여전히 허덕이고, 최안나는 그런 강영걸에게 자신의 상처까지 돌아봐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다시 상처가 된다. 최안나가 기대하던 이가영의 팬던트처럼, 결국 최안나에게 전해지는 선물 가운데 강영걸의 진심은 없다. 최안나는 강영걸로부터 어떤 위로도 평안도 얻을 수 없다. 상처를 들쑤신다.

그런 점에서 정재혁과 이가영은 그들과 달리 상성이 매우 좋다 할 것이다. 이가영이 정재혁에게 묻는다. 어째서 자신을 좋아하는가. 정재혁이 답한다. 좋은데 이유가 있느냐고. 정재혁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가영에게 정재혁 역시 이가영의 눈에 비친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만큼 이가영 앞에서 그는 이가영 자신만큼이나 작고 초라하다.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한 남자에 불과하다. 좋아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싫어하지만은 말아달라. 이가영은 그 순간 정재혁과 함께 있는 풍경을 두 사람만 빼 놓은 채 폴라로이드에 담는다. 강영걸과의 소중한 기억을 기록한 바로 그 폴라로이드다.

아직 두 사람은 없다. 아직 사진 속에 정재혁과 이가영은 없다. 대신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아름다운 감정과 기억이 있다. 아직은 미래형이고 가정형이다. 그러나 조짐이 좋다. 정재혁은 그녀를 필요로 하고, 이가영은 항상 의미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있을 곳을 찾고 싶어한다. 강영걸은 해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열정은 항상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다.

비로소 조순희의 과거를 조사하며 강영걸은 자기가 어떻게 이가영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 그다지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한에 불과하리라.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억울함과 분노이리라. 자신도 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면 이가영도 기꺼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으리라. 너무 일방적인 이기였다. 그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가영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자신이 그 상처에 어떤 짓을 했는가를.

그러나  정작 조순희로부터 강영걸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이가영은 도리어 강영걸에 분노하고 만다. 때늦은 원망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어째서 그때 자신은 강영걸을 조금더 믿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다시 찾아주겠다 하지 않았던가? 사업이 성공만 하면 나중에라도 조순희로부터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아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강영걸이 원망스럽다. 보아라. 내 말대로이지 않은가. 이제와서 뒤늦게 이 무슨 수선인가? 그로 인해 조순희로부터 받은 수모마저 그의 탓이 되어 버린다. 이번에는 이가영이 강영걸에게 응석을 부렸다. 강영걸이기에 부릴 수 있는 투정이다. 한 편으로는 화가 날 정도로 강영걸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다.

아무튼 조순희의 심정도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출발은 이가영 부모의 가게였지만 그러나 그녀로 하여금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조순희의 능력이었을 것이다. 실력이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지금과 같은 인맥 또한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이가영 부모의 가게가 좋아서만 그녀는 지금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당시에도 자신의 재능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면 그녀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은 또 어떠했을까? 아직 꼬맹이이던 이가영으로부터도 적잖이 수모를 받았던 듯하다. 부모가 사장이면 자기도 사장인 줄 아는 아이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철모르는 아이라지만 결국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렇더라도 그녀가 저지른 행위가 사기이며 범죄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가영도 그것을 깨닫게 된다. 조순희와 자신의 사이는 어차피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조순희는 이가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고, 조순희에게 이가영은 자신의 굴욕과 죄악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상이었을 터다. 강영걸과의 사이에서도 그들은 그다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사장님이라는 말에는 강영걸에 대한 무한한 친밀감과 신뢰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부하직원을 대하는 정재혁의 폭력적인 모습에서 정이사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좋은 분위기였는데 사진속에 아직 사람의 모습이 담기기 전에 점수만 잃고 말았다.

정재혁에게 아직 남은 과제다. 사랑에 있어서 그는 가지고자 한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최안나의 경우와는 달리 이가영과는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강영걸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고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선다. 지금처럼 강영걸에 대한 적의만을 드러내다가는 자신만 파멸할 뿐이다. 잊어서는 안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영걸이다. 비록 강영걸에게 최안나라는 불안요인이 자리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엇갈린다. 항상 그렇다.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럼에도 또한 사람들은 미련을 갖는다. 갖지 못할 것을 그리며 다시 현실에 익숙해간다. 고마우면서도 화나고 그래서 더욱 원망스러운 감정이란 무엇일까? 강영걸이 애써 정재혁을 의식하며 허세를 부리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공감하게 되는 울컥함을 느끼게 된다.

신세경의 살짝 얽은 뺨에 자꾸 눈이 간다. 이가영 자신일 것이다. 단정하고 고운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J패션이라는 대기업에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는 화려한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상처가 많다. 비록 치유되어 흔적만 남은 상처일 뿐이지만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녀의 일부일 것이다. 공교롭달까? 의도하고 캐스팅한 것은 아닐 텐데 그녀의 얽은 자국을 보면 그것이 이가영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장의 누님들이 서로 강영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살짝 곁눈질하는 모습이 귀엽다. 정재혁에게 문자를 보내기 직전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그녀에게는 세련된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른다. 이가영 자신이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당당한 강함이 있다. 이가영의 캐릭터에 몰입한 모양이다.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소이의 느낌도 남아 있다. 가장 눈이 가는 배우다. 매력과 존재감은 확실하다.

어쨌거나 공교롭게도 김실장(김병옥 분)의 호의가 우연찮게 강영걸과 이가영을 같은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서 가도록 만든다. 한 바탕의 오해와 엇갈림이 있고 겨우 서로 만나게 된 자리다.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서로의 옆자리에 계속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좋은 기회다. 예고편에 그래서 기대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조금은 얽힌 것들이 풀려가려는 모양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최안나의 캐릭터가 갖는 문제가 뭐였는가. 독기는 보이는데 그러나 분노가 없었다. 현실과 싸우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 멈추고 만다. 주위를 돌아보고 기댈 곳을 찾는다. 이번에는 제대로 분노하게 될까? 그녀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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