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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04 10:12

적도의 남자 "김선우의 행운과 이장일의 불운,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이유...

최수미의 거짓말로 인해 이장일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밀리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돌아갈 곳이 있을 때 사람은 용감하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면 사람은 불안해하고 동요하며 결국은 체념하고 만다. 막다른 곳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자포자기하여 자기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아주 작은 가능성이나마 눈에 보인다면 쥐는 고양이와 맞서려 하기보다 차라리 그 가능성을 찾아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무서워서다. 그러나 그보다는 살기 위해서다. 삶이 곧 희망이다. 죽음은 절망이다. 절망을 무릅써야 하는 희망이란 없다. 체념을 전제로 하는 의지라는 것도 없다. 그것은 내몰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김선우(엄태웅 분)와 이장일(이준혁 분)의 운명이 서로 갈리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김선우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이장일에게는 없었다. 김선우에게 아버지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장일에게 아버지란 위태하고 불안한 존재였을 것이다. 항상 김선우가 머물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었다. 항상 이장일을 떠나보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있었다.

돌아보면 항상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품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항상 오로지 자기만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이 있었다. 돌아갈 수 있었다. 오히려 돌아갈 자리를 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음껏 기대고 응석도 부릴 수 있었던 김선우와는 달리 아버지 이용배(이원종 분)를 위해서라도 이장일은 결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항상 밝고 여유넘치던 김선우에 비해 그래서 이장일은 항상 쫓기듯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했다.

이장일이 김선우를 배신한 이유였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가엾고 안쓰럽다. 안타깝고 불안하다. 만에 하나라도 아버지의 죄가 밝혀지게 된다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 아버지가 혼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면 그는 굳이 김선우를 뒤에서 내려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혼자서 얼마든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면 굳이 쓰러진 김선우를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김선우는 지금도 만에 하나라도 아버지 김경필이 자살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인 자신을 두고 혼자서만 비겁하게 죽음으로 도피할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같은 무책임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신앙에 가깝다. 아들이 아버지를 믿는다. 아버지가 아들을 믿기 때문이다. 과연 이장일이라면 어땠을까? 이장일이라면 아버지 이용배에 대해 김선우와 같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김경필만이 아니다. 또다른 아버지 문태주(정호빈 분)도 마찬가지다.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그의 연인 한지원(이보영 분)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김경필을 죽인 것은 당시 김경필이 찾아가 만났던 진노식(김영철 분) 자신이었다. 하지만 문태주는 안다. 진노식은 다름아닌 김선우를 낳아준 친아버지다. 그를 원망해서는 안된다. 그를 증오해서도 안된다. 그에게 복수하려 해서는 더욱 안된다. 문태주 역시 진노식에 대한 원한이 깊을 터임에도 애서 김선우가 더 깊은 원한과 증오를 갖지 않도록 곁에서 제어한다. 오히려 진노식의 죄를 밝히려는 김선우의 노력을 방해하는 듯한 인상마저 줄 정도다. 제아무리 김경필의 복수가 중요하다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다름아닌 김선우의 행복이다. 김선우가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김선우를 원망했었다. 13년이었다. 긴 시간이었다. 기약조차 없는 기다림이었다. 막연한 약속 하나만을 믿고 지금까지 그 긴 세월을 버티며 기다려 왔었다. 그런데 아는 체도 않는다. 눈까지 치료하고 한결 근사해져서 돌아와서는 아예 모르는 사람 대하듯 대한다. 처음에는 정말 몰라서 그랬는 줄 알았는데 이미 처음부터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리 한 것이었다. 지금껏 마음졸이며 안달하던 순간들이 부끄럽고 화가 난다. 더구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눈까지 치료해 돌아왔다. 혹시나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것은 아닐까?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슨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더구나 눈까지 치료해서 돌아왔으니 정말 다행이다. 오히려 눈까지 치료해서 다친 곳 없이 건강히 돌아왔으니 그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녀는 진짜 강하다. 강한 여자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휘둘리지 않는다. 어째서 그토로 화나는가를 이해한다. 어째서 그토록 김선우에게 화나는가를 스스로 인정한다. 김선우를 사랑한다. 몸건강히 돌아온 김선우가 고맙고 반갑다. 물론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곤궁한 처지였어도 한지원의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김선우로서만 그를 보고 김선우로서만 그를 사랑한다. 그 올곧음이 김선우를 지탱해준다.

사랑하기에 증오라는 독을 품은 채 한지원을 만날 수는 없다.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악의를 가슴에 품고 그녀와 함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계속 함께 있고 싶다. 그녀에게 돌아가야 한다. 증오에 물들지 않은 채, 악의에 더렵혀지지 않은 채,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대로 올곧은 순수한 모습 그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한지원과 함께 하는 만큼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한과 자신이 당한 사무치는 배신에 대한 분노조차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돌아갈 곳이 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마냥 자신을 내버려서는 안된다. 문태주 또한 거짓말로 그를 속여가며 그가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준다. 그는 운이 좋다.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그를 지켜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그에 비하면 이장일은 어떤가?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죄를 지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저 앞으로만 나가라 한다. 아버지와 자신이 지은 죄따위 돌아보지 말고 그저 앞으로만 나가면 된다 말한다. 진노식과의 만남을 부추기는 것도 아버지다. 정작 죄를 지은 것은 자신인데 태연히 김선우를 원망하며 그를 비난한다. 마치 김선우가 먼저 모든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듯 기에 대한 악의와 증오를 이용배는 가르친다. 이장일이 도저히 잠시라도 멈추고 뒤를 돌아볼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이 가련한 자신의 아버지 이용배는 어찌할까?

차라리 최수미(임정은 분)라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다면 최소한 자유로울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당황스럽기는 했을 것이다. 당장에 그를 막다른 궁지로 내몰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껏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죄의식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수미의 이장일에 대한 연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대신 그로 하여금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도록 등을 떠민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거짓과 기만 속에 속이고 죄를 지어야 한다. 한지원과 함께 있을 때 심선우는 복수심마저 잠시 접어두는데 최수미의 동정에 이장일은 다시 죄로 떠밀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기는 진노식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문태주를 만나려는 이유다. 굳이 문태주를 찾기 전 죽은 약혼녀의 무덤을 찾은 이유였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도망칠 곳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어쩔 수 없었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야 했다. 그들은 그의 마지막 가족이었다. 그는 항상 배수진을 친다. 퇴로를 막고 막다른 길로 내몬다. 더 이상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가서도 안된다. 그가 악할 수 있는 이유다. 아버지 이용배와 최수미가 이장일의 등을 떠민다면 진노식의 등을 떠미는 것은 진노식이다. 김선우를 일부러 찾아가는 그 순간에조차 그는 김선우를 증오할 이유를 찾는다. 가장 약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악한 인간이다.

특별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모두가 죄를 짓는다. 이장일이 김선우의 뒷머리를 내리치고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그 순간처럼. 그것을 침묵하고 거짓으로 증언하는 최수미의 죄도 있다. 딸을 위해 최광춘(이재용 분)은 역시 김선우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감추는데 한 역할을 한다. 미안해하면서도 끝내 최광춘은 김선우 앞에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는 그 진실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라혀 했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그들은 지금도 고통받는다. 그 어느 것보다도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죄로 인한 그같은 고통일 것이다. 진노식은 차라리 그 통각조차 마비되어 버렸다.

어쩌면 죄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이장일로 하여금 죄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용배의 부성과 최수미의 사랑, 그러면서두 김선우를 구원에 이르게 만드는 김경필과 문태주의 부정과 한지원의 사랑이 있다. 진노식 또한 사랑과 우정이라는 함정에 빠져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장일에게도 구원이 있다면 아버지 이용배와 자기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내는 최수미일 것이다. 진노식의 구원도 그의 사랑에 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구원이란 그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법은 없다. 그것이 또한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일 것이다. 하필 두 사람이 놓인 환경이 이렇게나 대조적이다. 환경에 따른 두 사람의 성격이나 선택이 이토록 대비된다. 한 사람은 죄를 짓고 한 사람은 복수를 한다. 하지만 복수가 증오도 악도 아니도록 하는 무엇을 보게 된다. 아마도 진부한 그 단어가 아닐까. 사랑.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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