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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03 09:20

적도의 남자 "한지원의 원망과 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장일의 선택..."

김선우의 이기와 이장일의 이타, 그러나 그들이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당신은 예전의 김선우가 아니야!"

예전의 김선우(엄태웅 분)는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당당히 한지원(이보영 분)에게 자신의 눈이 되어달라 말하고 있었다. 수줍고 조심스럽지만 그녀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오로지 한지원만을 보고 있었다. 한지원이 지금껏 그를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김선우는 달라졌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때로 그것은 한지원 자신을 우선한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던 것일까? 한지원 자신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간절히 그를 그리며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머뭇거린다. 차라리 자기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면 이해는 할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그조차도 아니면서 그는 끝내 자신을 앞에 둔 채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한지원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한지원을 앞에 두고서도 김선우는 자기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자기 입장만을 생각했다. 혹시라도 자기의 진심을 전했는데 한지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는가? 이미 오래전에 한지원의 마음이 바뀌어 더 이상 그를 기억하고 있지 않다. 한지원에게 이미 김선우란 지나간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만일 김선우가 진심으로 한지원을 사랑했다면 먼저 솔직한 자기의 진심을 전하고 그녀의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결국 한지원을 떠난 것은 자신이고,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한지원 자신의 판단이고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연의 아픔이야 김선우 자신이 감당할 몫이다.

물론 세상 일이란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마음이 너무 지극해서 솔직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강한 진심이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만의 하나라도 그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혹시나 자기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론이 내려진다면 어찌하는가? 그래도 나는 태연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에고다. 자기가 상처입기 싫은 것이다.

한지원은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다. 가진 것도 지킬 것도 너무 많다. 전처럼 전적으로 자기만 보아주지 않는다. 못한다. 그것이 실망스럽다. 그것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화난다. 더 화가 나는 것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토록 설레고 떨리고 긴장해 있었다. 간절히 그를 바라고 있었다. 김선우는 그것을 모른다.

사실 아직은 모른다. 진짜 김선우가 바뀌었는지. 그는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심판을 하려는 것일까? 악의로써 악의를 갚으려는 것일까? 선의로써 단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는 것일까? 제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어 그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타인을 해하고자 하는 악의란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된다. 이용배(이원종 분)는 아들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이장일(이준혁 분) 역시 아버지를 위해 김선우를 죽이려 했다. 이제 복수를 위해 김선우는 그들을 죽이려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한지원의 말은 그 너머를 보고 잇는 것이리라. 어쩌면 한지원이란 김선우를 죄와 악의 구렁텅이로부터 구원해내는 모성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달라졌지만, 그래서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돌아갈 품이 있다.

문태주(정호빈 분)가 의외로 그런 김선우를 잘 통제하고 있다. 분명 문태주 역시 진노식(김영철 분)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이 사랑하던 진노식의 약혼녀마저 배신했다. 그녀는 비참하게 죽었고 그 자식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 아이를 데려다 키운 김경필마저 진노식에 의해 죽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선우는 진노식의 아들이다. 진노식을 용서해서가 아니라 김선우를 사랑해서다. 김선우의 어머니를 사랑해서다.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는 진정 김선우의 아버지다. 김경필 역시 자신의 아들이 친아버지를 공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한다.

이용배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자식을 위해 죄를 짓는다. 자식의 죄를 알면서도 그 피해자를 원망한다. 그것이 자식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지 그는 몰랐던 것일까? 분명 몰랐다. 마르크스는 일찌기 말한 바 있다. 사회하부구조가 사회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맹자 역시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말했다. 물질세계에서 물적토대는 정신의 영역까지 지배한다. 가난한 자가 도덕적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과거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을 팔고, 어린 자식들을 심지어 범죄로 내몰았다. 지금도 그는 태연히 이장일에게 죄에 물들라 말하고 있다. 그가 아는 세계란 양심이 지켜주는 세계가 아닌 오로지 물질이 자신을 지켜주는 세계다. 이장일의 불행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는 너무 가난했고 그래서 그 또한 자신의 양심과 존엄을 지키기에 너무 가난했다.

어쩌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일 것이다. 자신의 죄에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죄의 원인이랄 수 있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그를 불쌍히여긴다. 자신을 불쌍히여긴다. 이장일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검사라는 자신의 신분이 너무 무겁다. 자기로 인해 억울함을 풀고 고마워하는 피해자의 가족이 부담스럽고, 검찰청 옥상에서 보는 하늘과 햇살은 차라리 서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를 포기하지 못한다. 친구인 김선우를 대신해 선택한 아버지다. 그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양심마저 저버렸다. 그리고 그런 자신도 그는 포기하지 못한다.

한 인간이 악에 물들어가는 과정이 디테일하다. 과연 사람이 악해서 죄를 짓는가? 죄를 지었기에 악한 것인가? 특별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 선을 넘는 순간 그는 죄를 짓는다. 전혀 아무런 악의 없이도 잠시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는 평생 남을 죄를 짓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 죄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여 바로잡는가? 아니면 끝내 그 죄를 감추고 그 죄를 합리화하고자 노력하는가?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도 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컴퓨터 할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친구를 배신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검사의 자리이건만 그는 검사라는 자신의 직분마저 끝내 배신하고 만다. 진노식이 그를 유혹한다. 그는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장일을 연민하게 되는 이유다. 연민과 용서는 다르다. 죄인을 가엾이 여기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용서할 수는 없다. 악인을 가엾게 여긴다고 해도 그들이 저지른 악업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아니 무엇으로 치를 수 있을까?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듯 죄 역시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차라리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무리 후회하고 원망해도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댓가를 치러야 한다. 아무리 자학하며 죄를 뉘우치고 있어도 먼저 죄의 댓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그는 용서를 말할 수 있다. 그는 그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살인미수라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이름을 듣고 절망하여 무릎을 꿇으면서도.

최수미(임정은 분)이 이장일을 조롱하면서도 그를 연민하는 이유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장일에 대한 동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연민이었다. 그는 약하다. 자기보다도 약하다. 약해서 불안하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 가엾어서 그를 놀려주고 싶어진다. 그의 죄를 일깨우고 그로 하여금 선택을 하도록. 자신이 자신을 심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녀의 이장일에 대한 짓궂은 친절은 그래서 모순적이다. 이장일을 끝없이 괴롭히지만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는 않는다. 김선우에게 한지원이 구원이라면 이장일에게는 최수미가 구원이다. 받아들일 용기만 있다면. 그러나 말했듯 이장일은 너무 약하고 그것이 최수미는 가엾으면서도 화가 난다. 그대로 마냥 보고만 있지는 못한다.

최수미는 욕망한다. 이제 화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어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아니 함부로 한다. 그녀의 성공을 담보해주는 그림을 박윤주(김혜은 분)는 분풀이로 함부로 팽개친다. 아직 그녀는 충분히 성공해 있지 못하다. 어차피 그녀의 그림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지금까지 이룬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실은 물질이 지배한다. 물질은 곧 돈으로 계량된다. 최수미가 진노식의 부인이며 박윤주의 어머니인 마희정(차화연 분)에게 접근하려는 이유다. 그녀 나름의 복수다. 김선우의 계획에 편승하는 한 편 그에 휘둘리는 그들 모녀의 모습을 자신의 눈에 담으려 한다. 이장일의 죄가 연민의 대상이었다면 이들의 탐욕과 혼란은 그녀에게 쾌락이 되어 줄 것이다. 그녀는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해 줄까?

긴장감을 높이는 것은 좋은데 너무 비슷한 방식의 연출이 반복되어 사용되며 흥미를 떨어뜨린다. 처음에는 긴장했다. 마음졸이며 불안해했다.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들의 얼굴이 반복되어 교차되고, 배경에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깔리고, 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더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미묘한 표정과 몸짓들이 그들의 내적 동요와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좋은 것도 한두번이다. 그것이 드라마만의 개성이기는 하지만 빈도를 조금 줄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필살기는 필요할 때 한 번 쓰라고 있는 것이 필살기다. 중요했을 이장일과 김선우의 참고인조사장면도 그래서 상당히 힘이 떨어진 듯 느껴졌다.

액션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표정과 말이 주를 이룬다. 배우의 입장에서 그것은 참으로 편하면서도 고된 작업일 것이다. 몸으로는 그다지 힘든 것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표정과 몸짓으로 최대한의 이야기를 표현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엄태웅이다. 과연 이준혁이다. 이준혁이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이장일이 되어 있었다. 연민케하고, 그러면서도 분노케 하고,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끝내 용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떻게 평범한 한 인간이 악으로 빠져드는가 그는 너무나 섬세하게 설득력있게 연기로 보여주고 있었다. 최수미를 연기하는 임정은의 눈빛은 그래서 불안하고 한지원을 연기하는 이보영의 표정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죄가 죄인 것도 모르는 이용배의 무지를 순박함으로 연기해 보이는 이원종이며,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김선우의 두 아버지를 연기하는 김영철과 정호빈, 아마 이들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는 상당히 밋밋한 재미없는 드라마로 끝나지 않았을까? 진정한 배우의 힘을 보여준다.

결국은 동요시키려는 것일 게다. 과거 김경필의 죽음에 대해 다시 수사를 재개함으로써 진노식과 이장일을 동요시킨다. 더구나 당사자인 김선우가 가까이에 있다. 김선우가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다. 불안이 그들을 동요시키고 그들의 행동에 빈틈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장일도 진노식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열쇠는 의외로 한지원이 가지고 있는 최수미의 아버지 최광춘(이재용 분)의 편지에 있다. 오히려 그것이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이장일은 스스로 죄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김선우 또한 그와 함께 죄로 빠져들게 될까? 한지원이 그를 붙잡아 주리라.

익숙해진 탓에 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하며 볼 수 있었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놓칠 수 없어 잠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 편의 문학작품같다. 배우의 연기로 써가는 영상문학이다. 언어가 흐른다. 문장이 보인다. 시청률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재미있다.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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