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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6 09:09

적도의 남자 "답답한 김선우와 한지원, 이장일과 최수미가 서로 엇갈리고 마는 이유..."

갈수록 조여드는 자신의 죄에 이장일 떨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답답하다. 떠보는 건 김선우(엄태웅 분)와 이장일(이준혁 분)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실을 감춘 채 거리를 두고 맴돌며 서로를 살피는 모습은 김선우와 진노식(김영철 분) 정도면 족하다. 굳이 김선우와 한지원(이보영 분)까지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이장일과 진노식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복수의 대상이다. 응징의 대상이다. 과거 그들이 저질렀던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한다. 그들의 죄를 떠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들의 죄를 알고 있음을 감춰야 한다. 심판을 위해 모른 척 주위를 떠돌며 계속해서 그들의 죄를 일깨운다. 스스로에게 일깨운다.

하지만 한지원과의 사이는 단지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하필이면 김선우가 귀국하는 것과 때를 맞춰 이장일이 한지원이 알 수 있도록 꽃다발을 보내온다. 김선우는 반가움에 없어 한지원을 의심하고. 우연과 솔직하지 못한 망설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김선우의 일방적인 자기애로 인한 오해다. 그동안의 절박함이 그로 하여금 단단한 껍질속에 숨어 웅크리도록 만든다. 한지원으로 인해 상처입고 싶지 않다.

한지원을 사랑한다. 그러나 한지원으로 인해 상처입고 싶지는 않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한지원과의 좋은 기억 뿐이다. 그대로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라리 한지원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게는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껏 믿고 간직해 온 한지원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현실로부터 보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연 한지원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가? 한지원은 지금도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는가?

그러나 김선우는 솔직하게 묻지 못한다. 두려우니까. 무서우니까. 겁나니까. 그래서 혼자서 상처입기 싫어 꽁꽁 싸매고 자신을 감추려 든다. 그렇다고 아예 멀어질 수는 없으니 항상 주위를 맴돌며 가시처럼 한지원을 상처입히는 것으로 자신의 뒤틀린 의혹과 욕망을 해소하려 한다. 갓 이성에 눈뜬 초등학교 남학생과 같다. 절망과 같은 어둠에서 겨우 빛을 되찾고 다시 만나게 된 한지원이다. 그러나 그 비겁한 오해가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든다. 김선우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로 인해 기다림의 끝에 또다른 절망을 맛보아야 하는 한지원은 어쩌라는 것일까?

한지원은 갈수록 막다른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김선우가 전혀 그녀를 아는 체 않는다.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것 같다. 사진은 잃어버렸을 수 있다. 하지만 목소리까지 잊어버린 것일까? 김선우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꾸만 이장일이 그녀에게 접근해 온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김선우가 오해하는 빌미가 된다. 혼자서 하는 오해지만 그것은 결국 한지원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어지간히 외고집에 옹골찬 성격이 아니라면 견디기 쉽지 않으리라. 어쩌면 가장 강한 캐릭터다. 사람이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장일과 최수미(임정은 분)가 서로 엇갈릴 밖에 없는 이유다. 이장일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최수미는 자신을 사랑한다. 그들은 그토록 닮아 있다. 현실에 절망하며 더 나은 현실을 위해 탐욕하고 집착하는 그 상처투성이의 모습이. 그래서 최수미는 이장일이 반갑다. 그러나 이장일은 그런 최수미가 부담스럽다. 최수미에게 이장일은 동지다. 그러나 이장일에게 최수미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나약하고 추악한 부분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최수미가 이장일이 죄를 짓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쌍동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보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자기 자신의 가난하고 가련한 한 부분이다. 어쩌면 그것은 양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본연의 수치심이었을 것이다. 이장일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무언가였다. 최수미가 사실은 실존인물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의 전개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상당히 호러의 분위기로 흘러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이장일은 아버지에게 구속되어 있다. 그의 꿈은 오롯한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증오한다. 아버지로 인해 강요된 자신의 삶을 욕망하면서도 혐오한다. 그는 김선우를 동경한다. 김선우의 여유와 당당함을 꿈꾼다. 김선우를 내리치던 순간 그는 자신마저 내리치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한 부분을 내리쳐 죽이고 있었다. 죄를 깨달았을 때 그는 추위에 몸을 떤다. 두려워서. 그것이 끔찍하도록 혐오스러워서.

그에 반해 최수미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있다. 아버지 최광춘(이재용 분)은 그녀를 구속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에게 아버지란 경멸의 대상이다. 저주의 대상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믿을 수 있다. 그런 자신만을 의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김선우를 동경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다. 김선우는 타인이다. 친구이지만 결국에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전혀 거리낌없이 돌아설 수 있는 타인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이장일로 하여금 최수미에게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닮았지만 서로 다르다. 그보다 혐오감과 공포를 부추기는 것은 없다.

오해로 인해 사건은 더욱 꼬여간다. 한지원에게는 최수미의 아버지 최광춘이 보낸 편지가 있다. 당시 김선우의 아버지 김경필의 죽음에 대해 최광춘이 목격한 사실을 적은 편지다. 지금 김선우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김선우가 진노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된다. 원수인 진노식이 사실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문태주(정호빈 분)는 김경필이 보낸 편지를 감춘다. 한지원에 대한 오해와 이장일에 대한 증오로 김선우가 이장일이 자신을 내리친 사실을 감출 것을 지시하면서 사건의 재조사는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최수미 또한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장일의 주위에 맴돌고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일을 꾸미는 것은 남자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항상 여자다.

김선우와 한지원의 관계회복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 어쩌면 지금 김선우와 한지원이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김선우와 한지원의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 김선우에게 한지원으로부터 최광춘의 편지가 건네진다. 편지에는 최광춘이 목격한 모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너무 쉽다. 더구나 앞으로 4회나 더 연장된다. 시간을 끌 필요가 있다. 김선우가 진실을 아는 것은 조금 뒤라도 좋다. 그리고 최수미는 그 사이 이장일에게 주어진 징벌이며 저주일 터다. 최수미를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하고 죄의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진노식이 이장일을 유혹해온다. 아니 이미 이장일이 진노식을 일부러 의식하고 거부하려던 순간 그는 진노식과 공동운명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굳이 진노식이 나서지 않아도 진노식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겉으로는 진노식을 거부하면서도 결국은 진노식을 위해 동료검사의 수사를 방해한다. 진노식이야 말로 그가 지은 죄의 증거다. 그는 아버지가 지은 죄의 댓가로 진노식의 후원을 받으며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자신의 손으로 내리치고 말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가장 탐욕하던 것을 얻었다. 그는 결코 진노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더욱 추악한 아버지의 죄를 알고 난 다음에는 더욱.

진노식의 감이 좋다. 그는 김선우가 선의로 자기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김선우를 보는 순간 문태주를 먼저 떠올린다. 의심한다. 그는 자신의 죄에 익숙하다. 악의로써 자신을 두르고 자기를 지키며 살아왔다. 약혼녀의 무덤 앞에서도 그는 증오를 말한다. 굳이 자기로 인해 죽은 약혼녀의 무덤을 찾고, 질투하던 문태주의 흔적을 찾으며 증오를 말한다. 그것은 그가 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둘러친 가시갑옷이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는 모두에게 악의의 독기를 보인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한다.

진노식의 그같은 본능적 경계를 뚫어야 한다. 하지만 진노식에게도 약점은 있다. 김선우가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그는 잠시지만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진노식은 약한 사람이다. 약하기에 더 독하고 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들일지 모르는 김선우를 앞에 두고 - 정확히 가장 사랑하던 사람의 아들에게 그는 자꾸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가 과거 저지른 죄가 그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심판이란 그런 것이다. 악의로써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와 악을 되돌리는 것이다. 김선우는 과연 진노식을 심판할 수 있을까?

아무튼 답답하다. 이렇게 답답할 수 없다. 진노식과 이장일과 있을 때는 긴장감이 넘친다. 피까지 차갑게 식어버리는 듯하다. 설마 진노식의 의붓딸인 박윤주(김혜은 분)와도 대학시절 친분이 있었을 줄이야. 의도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유독 한지원과 만나면 불필요한 줄다리기가 보는 이를 피곤하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이 의도가 읽힌다. 여기에 이장일까지 한지원과 얽히게 된다면 꽤나 이야기가 지저분해질 수 있다. 그 선을 얼마나 어떻게 지키는가가 중요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하다. 이장일을 증오한다. 그러면서도 연민한다. 자신의 죄를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저 아무일없이 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아주 오래된 그날의 기억처럼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를. 아마 이장일 역시 김선우가 돌아온 뜻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추위에 떤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의 양심이다. 그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다. 하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정과 눈빛으로 전하는 이준혁의 연기란 정말... 엄태웅과 더불어 서로의 연기력을 연마하며 과시하려는 듯하다. 다이아몬드를 연마할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 뿐이다. 두 배우만으로도 드라마가 꽉 들어찬다. 김영철은 사치스럽다.

선이 굵다기보다는 깊다. 음험한 저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이장일이 최수미를 통해 보게 되는 무엇일 것이다. 김선우가 한지원을 통해 보려 하는 무엇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장일과 김선우 모두 한지원을 욕망한다. 스콜이 쏟아지는 적도의 밤처럼 끈적거린다. 긴장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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