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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5 09:34

패션왕 "머물 곳과 돌아갈 곳을 위해서, 이가영에게도 드디어 욕망하는 것이 생기다."

욕망하는 것을 위해 이가영 처음으로 강영걸과 맞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 자식 회사에 나가고 싶으면 나가, 안 말릴게!"

그것은 금구였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이가영(신세경 분)이 강영걸(유아인 분)에게 바라는 것이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함께 있고 싶다. 곁에 있게 해달라. 둘이면 좋다.

아마 공장이 망해서 평생 강영걸과 빚에 쪼들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이가영으로서는 크게 불만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있을 곳이 있고, 기댈 수 있는 따뜻함이 있고, 무엇보다 살아갈 의미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금껏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강영걸과 이가영이 결정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다. 이가영은 강영걸에게 기대면 되지만 강영걸에게는 달리 기댈 곳이 없다. 이가영은 강영걸에게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강영걸은 스스로 자신이 돌아갈 곳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가영만 바라보고는 살 수 없다. 무엇보다 이가영에게 무어라도 더 많은 대단한 것을을 해주고 싶다. 이가영은 강영걸과 단 둘만이면 충분한데 강영걸은 그것으로는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의 사회학적 차이일 것이다. 남자는 자기가 머물 곳은 자기가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이 머물 곳까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어딘가 기대고 돌아갈 곳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댈 수 있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준다. 아직 어린 여동생을 그는 끝내 보살피지 못하고 어이없이 떠나보내고 말았다. 자신이 끝까지 곁에 있어주었다면. 곁에 있으면서 열심히 일해서 치료비만 장만할 수 있었다면.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남자로서의 그의 자존에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 공장과 공장직원들과 특히 이가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가영은 아니다.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가르침이나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조순희(장미희 분)는 그다지 좋은 보호자가 못되었다. 이가영을 배려하지도 세심하게 보살피지도 않았다. 오히려 학대에 가까웠던 조순희의 홀대는 이가영으로 하여금 더욱 있을 곳과 돌아갈 곳에 대해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이기에 그것이 더없이 간절하고 소중하다. 그것을 강영걸이 주었다. 가장 힘들고 가장 필요할 때 강영걸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가영이 강영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아기새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여기고 따라다니듯 그녀는 자신에게 너무나 간절하고 절박했던 첫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그것을 더럽히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가영이 강해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 할 때 그녀는 강해진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강영걸의 입에서 떠나도 좋다는 말이 나온다. 그녀의 어떤 변명도 들으려 하지 않고 그는 선언하고 있었다. 멋대로 하라고. 그녀는 자기가 있어야 할 곳과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느껴오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자기가 있을 곳인가? 자기가 돌아갈 곳이었는가? 강영걸은 최안나(유리 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가영이 보기에는 그랬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려고만 든다. 윽박지르며 누르려고만 든다. 전혀 그녀의 기분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강영걸에게 이가영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절망이다. 정작 강영걸에게 자기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도 가치도 없다.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아무리 말하려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만 자신을 제대로 돌아봐주기를 바란 것 뿐이었는데.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처음으로 이가영도 욕심이라는 것을 가져보게 되었다. 강영걸에게 인정받고 싶다. 존경받고 싶다. 존중받고 싶다. 자기도 강영걸이 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관심을 가지고 자기를 어렵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자기를 필요로하고 욕심낼 수 있도록. 다름아닌 최안나처럼. 그저 강영걸의 곁에 자기가 있을 곳이라 믿고 기다리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그것을 쟁취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자기가 돌아갈 곳이라 마음놓고 있기보다는 스스로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자기만의 힘을 가져야 한다. 강영걸이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것처럼.

그래서 이가영은 처음으로 강영걸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강영걸의 곁에는 더 이상 자신의 자리는 없다. 아니 있지만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단지 강영걸의 곁에 있을 뿐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가치 없이. 어떤 인정도 존경도 받지 못하며. 어떤 존중도 사랑도 받지 못한다. 자기가 있을 곳을 찾기 위해 그녀는 기회를 찾아 떠난다. 자기가 돌아갈 곳을 되찾기 위해 그녀는 처음으로 가슴아픈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강영걸이 상처입은 모습을 보는 것은 그녀 자신도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정재혁(이제훈 분)의 회사라면 그녀에게 충분한 기회와 힘을 줄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는 강영걸이 먼저 반겨 그의 손을 잡아끌리라.

마지막 헤어지는 마당에조차 강영걸은 이가영에게 너는 안된다 말하고 있었다. 이가영 주제에 정재혁의 'J패션'이란 가당키나 한가? 결국 이가영 자신만 상처입고 말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떠나려 한다. 그렇게 얕보이기 싫어서. 대등해지고 싶다. 아니 우위에 서고 싶다. 강영걸이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가영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마냥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 자기가 직접 있을 곳과 돌아갈 곳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 이가영의 욕망이 깨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강영걸과 정재혁, 최안나의 사이에 이가영이라는 욕망의 씨앗이 뿌려진다.

어쩌면 강영걸은 이가영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기 사람이다. 항상 자기의 곁에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표현을 하기 전에 그는 먼저 마음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너무 편했다. 너무 편한 나머지 이가영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쉽게 나가라 말하고 이내 후회하며 당연하다는 듯 아파트를 고르지만 그러나 이미 한 걸음 늦은 뒤다. 어째서 사람은 항상 가장 가까이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당연히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결국은 타인이다. 타인이 타인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

정재혁은 차라리 자신의 감정을 주체못하는 사춘기 소년과도 같다. 겨우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다. 간절하다. 절박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모른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협박하고, 법을 이용해 고소를 하고, 심지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 앞에서 폭력을 휘두른다. 강영걸에게 항복을 선언하는 그 순간에조차 그는 상황을 이용해 이가영을 갇고자 한다. 이가영에게 문자를 보내려 몇 번이고 쓰고 지우는 모습이 귀엽기조차 하다. 어린아이의 잔혹함은 어른의 그것을 능가한다. 진흙을 밟아보지 않은 아이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태연히 사람을 상처입힌다. 그래서 더 소름끼친다.

그러고 보면 이가영 역시 정재혁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 아니던가. 마음이 놓인다. 강영걸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처럼 불안하다면 정재혁은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아무리 남자 혼자 사는 아파트에 쳐들어가 여자가 밤을 지샐 생각을 다할까? 하기는 강영걸이 또 그렇게 길들여놨다. 같은 공장에서 강영걸과 이가영은 숙식을 함께 해결한다. 그동안 보여준 정재혁의 단정한 모습과 강영걸의 난폭한 솔직함이 이가영을 무방비로 만든다. 위험하다. 강영걸이 의심하더라도 할 말 없다. 물론 강영걸도 이미 최안나와 밤새고 들어온 적이 있다.

아무튼 아니나 다를까 강영걸도 편하게 살아 온 인생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깨나 쳐봤다. 거친 바닥에서 나름대로 험하게 구르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권모술수는 강영걸도 쓸 줄 안다. 정재혁이 자기가 가진 밝은 세계의 힘을 이용해 모략을 꾸민다면, 강영걸은 자기에게 익숙한 어둠의 세계의 방식으로 그것을 되갚아준다. 전혀 거리낌이란 없다. 귀하게 자란 정재혁에게 강영걸을 밟아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듯이 험하게 구르며 살아온 강영걸에게 그 정도 돌려주는 건 일도 아니다. 통쾌하다. 누군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역이용한다.

최안나의 수도 꽤 높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집착해 왔던 정재혁이기에 최안나는 누구보다 정재혁의 마음을 잘 안다. 정재혁의 이가영에 대한 감정을 너무나 잘 안다. 정재혁은 필연적으로 이가영에게 집착할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함정을 판다. 정재혁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함정이다. 조순희에게 정재혁이 눈에 거슬려하는 강영걸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한 뒤 정재혁 자신이 그것을 비싼값에 되사도록 조장한다. 잘만 풀린다면 정재혁은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고 이가영은 그와 맞물려 철저히 눈밖에 날 것이다. 대안은 최안나밖에 없다. 마침내 이가영의 존재를 정재혁의 어머니(이혜숙 분)에게 노출시킴으로써 그를 대신해 인정받는다. 다만 사랑이 식는 것은 수순인 것 같다. 마음은 얻지 못했어도 그의 조건은 손에 넣었다.

강영걸의 피해망상이다. 열등감이고 자격지심이다. 정재혁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강영걸이 싫어서도 아니다. 단지 지금이 싫을 뿐이다.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기회를 찾아간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움직인다. 당연한 본능이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환경이 그래서 남들보다 늦게 깨우쳤다. 그녀는 자기 길을 간다. 언젠가 돌아올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서. 단지 이제껏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틀린 울먹임으로 나타난다.

홧김에 마시는 소주는 안좋다. 더구나 혼자 마시는 술은 위험하다. 이가영의 술이 늘었다. 이제는 당당히 혼자서 소줏잔을 기울인다. 스트레스가 많다. 강영걸 때문이다. 정재혁에게는 불쌍하지만 이가영에게 정재혁은 안중에도 없다. 어떻게 돌아오려는가. 이가영이 움직인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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