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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4 09:16

패션왕 "곤궁한 바닥에서 젊은 그들의 욕망이 만나다."

이가영의 순수와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람은 곤궁해져봐야 근본을 돌아보게 된다."

얼마전 예능인 김구라의 인터넷방송시절 막말이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결국 논란 속에 김구라가 스스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잠정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일단락되었었다. 김구라라고 하는 한 개인의 인성과 인격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구라 자신이나 주위에서 한결같이 변명삼아 하는 말이 있었다. 워낙 어렵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노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말한다. 사흘굶어 도둑질 않는 사람이 없다고도 말한다. 가난에는 도덕이 없다. 공자도 그래서 예란 뭇백성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 말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빈민가에서 발견된 참혹할 정도로 충격적인 현실에 대해 어느 사회학자는 제 4세계라는 말로써 보편의 상식과 가치로부터 유리된 또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현실의 소외와 단절이 가치와 양심의 유리를 불러온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양심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가?

산다는 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다. 삶이야 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원리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목숨을 이어가는 것만이 삶인가? 그러면 어째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을 선택하는가?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 각오로 죽는 것이다. 존엄이며 자존심이다. 삶의 의미다. 때로 그것은 사랑이 되고, 야심이 되고, 탐욕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부대끼며 살아간다. 산다는 것이다.

그저 숨만 부지하면 되는 것이라면 강영걸(유아인 분)이 그렇게까지 성공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재혁(이제훈 분) 역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여지없이 흔들리고 만다. 단정하고 반듯한 외모와는 다르게 최안나(유리 분)와 이가영(신세경 분)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추악하기 이를데 없다. 그나마 그가 가장 폼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강영걸과 함께 있을 때 뿐. 그렇기 때문에 정재혁 앞에서 강영걸은 더욱 곤궁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욕망을 연마해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아직 그들은 탐욕할 것이 많은 젊음일 것이다.

강영걸의 이가영에 대한 감정이란 아무것도 갖지 못한 가운데 유일하게 가진 한 가지에 대한 집착이다. 정재혁의 이가영에 대한 감정이란 것도 결국 모두를 가진 가운데 한 가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갖지 못했고,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졌다. 그래서 강영걸의 이가영에 대한 집착은 비루하고 정재혁의 이가영에 대한 감정은 비겁하다. 강영걸은 염치없고 정재혁은 비열하다. 결국은 한 가지다. 그들은 탐욕한다. 그래서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지켜야 하는 가치다. 더 소중한 다른 것이 나타나기까지.

강영걸의 최안나에 대한 감정이란 따라서 자기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정재혁의 최안나에 대한 감정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당연한 소유욕이었다. 그래서 강영걸은 정재혁에게 상처입은 최안나를 동정하고, 정재혁은 강영걸의 동정을 받는 최안나를 경멸한다. 더럽혀졌다. 그래도 나의 것이다. 태연하게 상처입힌다. 너따위와 나와 같느냐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녀의 어린시절마저 모욕한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너는 모를 것이라고. 그것은 배반자에 대한 응징이다. 그는 결코 최안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최안나에 대해서는 그다지 나온 것이 없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중요한 배역을 맡은 유리의 아쉬운 연기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감정이 디테일하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녀의 눈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고, 그녀의 마음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생각하는 것은 얼추 대사와 행동을 통해 보여진다. 그녀는 정재혁을 탐욕한다. 아마 강영걸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정재혁은 불우하던 그녀의 삶에서 유일하게 축복받은 단 한 가지 그녀의 것이었다. 꿈이고 동경이고 구원이었다. 결코 이대로 놓아 버릴 수는 없다. 그녀 역시 바닥을 보여준다.

하기는 이가영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강영걸이 시키는대로 도둑질도 했다. 강영걸이 정재혁을 배신하려는 것을 침묵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가영은 강영걸바라기다. 최안나와 함께 밤을 지새는 강영걸이 싫다. 조순희(장미희 분)와 계약을 맺으려는 강영걸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셌다. 하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정재혁을 따라나서려는 순간 자신을 붙잡는 강영걸의 우악스런 손길이 그녀를 주저앉힌다. 다른 것은 필요없다.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가지 말라고 붙잡아주면 된다. 생일이라고 직접 차려준 생일상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이가영은 강영걸을 탐욕하지 않는다.

이가영이 강영걸, 정재혁, 최안나 등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일 것이다. 그녀는 강영걸을 바란다. 하지만 탐욕하지는 않는다. 강영걸을 강제하거나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강영걸의 말이 맞다. 그녀는 어리다. 아직은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 더구나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조순희에게 억압받으며 억눌린 채 살아왔었다.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갖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 억지로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녀가 순수해 보이는 이유다. 무르고 바보같다. 아니 무르지는 않다. 무르다면 결국 강영걸의 변덕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조순희 앞에서나 최안나 앞에서나 정재혁에게도 그녀는 당당하다. 유일하게 당당하지 못한 것이 강영걸일 뿐이다. 그녀도 사랑하는 청춘이다.

극한의 바닥에서 원초적인 네 가지 - 아니 세 가지 감정이 서로 얽힌다. 탐욕하는 당연한 삶의 본능들이 서로 얽히며 충돌한다. 그 중심에 이가영이 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되돌린다. 이가영과 함께 있을 때 강영걸은 순수를 되찾는다. 그가 가진 단 한 가지일 테니까. 그래서 정재혁은 이가영 엎에서 원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그가 갖지 못한 단 한 가지일 터이므로. 최안나 또한 이가영 앞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가영이라는 거울에 비친 세 군상의 모습이랄까? 이가영 자신은 그다지 능동적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음에도 항상 이가영이 드라마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가영이 드라마의 중심이다.

아무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상당히 불편해지고마는 작품일 것이다. 또한 필자 자신의 저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은 어떤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당연히 탐욕한다. 탐욕하기에 집착하고, 집착하기에 절박하고, 절박함이 자신의 원칙과 가치마저 깨뜨린다. 상식과 양심, 윤리마저 부식시키고 만다. 두 가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과 끝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가영을 제외하고 강영걸과 정재혁, 최안나는 모두 원래의 자리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서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가영의 뚱한 표정이 매력적이다. 속에 쌓인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면 울컥하는 것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쉽게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단하고 완고하다. 강영걸과 정재혁은 모두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눈빛이나 표정이 울상을 짓고 있다. 울고 있는 아이와도 같다. 가지고 싶은데 갖지 못하는 고집스런 어린아이다. 최안나는 울고 있으면서 울음을 감추려 애쓰는 아이일 것이다. 흐끅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연출이 산만하다. 장면의 배치나 전환이 정신없다. 인물들의 억눌린 감정만큼이나 연출 또한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물들의 감정인데 그것이 어수선한 연출과 만나며 이해하기가 난감해진다. 일관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모습이야 말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혼돈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출마저 일관성없이 혼란스럽다면 시청자가 알아서 정리하고 이해해야 한다. 시청자는 즐기기 위해 드라마를 보지 고뇌하기 위해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오락드라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역량부족이거나.

결국 강영걸이 마침내 욕망을 이루려는 순간에마저 정재혁의 탐욕과 집착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정재혁의 꿈을 강영걸이 이미 훼방놓은 바 있다. 시커먼 진흙탕속을 질척이며 뒹군다. 그들을 서로를 연마하면서도 서로를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아주 친한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어느 한 쪽은 죽어야만 하는 적이 되거나. 그것은 운명이다. 어쩐지 한구석이 먹먹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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