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18 09:11

패션왕 "강영걸의 이기와 이가영이 눈물, 너 혼자 아픈 게 아니라구!"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주인공, 판타지여야 할 드라마의 한계를 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리고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상처 누구에게나 다 있는 거야! 너 혼자 아픈 게 아니라구!"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가 있다. 상처를 안고 상처를 아파하며 살아간다. 존중도 받고 싶다. 인정도 받고 싶다. 사실 강영걸(유아인 분)이 저러는 것도 다 그래서다. 애써 고모와의 이야기를 말하고, 하염없이 자신의 사정만을 강요한다. 차라리 애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가영(신세경 분)은 아니다.

나는 아프다. 그러나 너는 괜찮다.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너는 그래도 괜찮다. 사람이 가난한 것은 몸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서다. 쫓기며 급하다. 여유가 없다. 자기만 불쌍하다. 자기만 가엾다.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은 그래서 답이 없다. 모든 것이 그래서 어쩔 수 없고 정당하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만을 돌아봐주어야 한다. 응석이다.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아픈가를. 내가 얼마나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를. 불쌍하다. 가엾다.

많은 범죄자들이 그런다. 정작 범죄를 저지르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한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환경이 나를 이렇게 내몰았다. 이런 아픈 상처가 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불쌍하다. 가엾다. 불쌍하게 여겨달라. 가엾게 여겨달라. 역시 응석이다. 결국 그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절박함이 시야를 좁힌다. 차라리 짐승과도 같다. 이성이 사라진 이기적인 에고란.

물론 강영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염치가 없다. 철저히 이가영을 무시한다. 이가영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모욕까지 준다. 그래도 괜찮다. 이가영과 자신의 사이니까. 자기가 이가영을 마음속깊이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녀를 위해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더 불쌍하니까. 더 가없으니까. 이가영의 상처는 별 것 아니고, 그러나 자신이 받은 상처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가영이 받은 상처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자신이 받은 상처는 도저히 용서해서도 타협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독선이다. 하지만 그 독선조차 그는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불쌍하니까. 그는 그렇게 가엾다. 자신은 정재혁(이제훈 분)에 대한 감정을 강요할 수 있지만 이가영은 그럴 수 없다. 이가영의 상처야 어떠하든. 자기가 가장 불쌍하고 가엾으니까. 이가영은 별 것 아니다. 자기에 가려 주위를 보지 못한다. 자기에 가려 다른 이를 바로 보지 못한다. 영영 자기 안에 갇힌 채 자기만을 불쌍하게 가엾게 여기며 고집을 부릴 뿐이다. 응석을 부릴 뿐이다. 이가영은 다 받아줄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비루하고 비굴한가. 비겁하기까지 하다.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저열한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를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어리다. 가난한 사람의 순박함이란 어쩌면 세상의 진정한 치열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교활하지도 못하고 영악하지도 못하다. 머리를 굴린다고 굴리는데 그게 금새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미디어를 동원한 최안나(유리 분)와 조순희(장미희 분)에게 얼떨결에 넘어가고 마는 그 모습처럼. 차라리 화려한 최안나는 연민해도 초라한 이가영은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긴다. 그는 위만을 바라본다. 앞만을 바라본다. 정작 자기 발밑을 보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뒤에서 이가영이 울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생각지도 못한다.

어쩌면 자수성가한 사람 가운데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연민과 더불어 성공을 통해 확인한 과도한 자기에 대한 확신. 타협이 불가능하다. 대화란 불가능하다. 만일 그들이 다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조차 돌아보지 않는 그들의 무지와 무모함 때문일 것이다. 딸 신정아(한유이 분)가 뉴욕패션스쿨에서 중퇴하고 곤란해하던 조순희가 문득 이가영을 떠올린 까닭은 무엇일까? 최안나는 과연 조순희에게 무엇을 제안한 것일까? 어쩌면 강영걸은 성공의 댓가로 영영 이가영을 잃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조차 그는 생각지 못한다. 바로 그것을 가난하다 말하는 것이다. 비루하고 비굴하고 비겁한데다 자기연민과 확신에 가득차 있다.

상징적이다. 그토록 이가영을 여자로서 거부하던 강영걸이 노래방에서 이가영을 강제로 끌어안으려든다. 이가영을 강제로 끌어안고 춤을 춘다. 더 이상 이가영에 대한 존중이란 없다. 인정이란 없다. 연민도 없다. 이가영은 자신의 소유다. 자신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따라야 한다. 자신을 불쌍히여기고, 자신을 가엾이 여기고, 그러면서 이가영 자신은 포기해야 한다. 그는 사장이니까. 이가영은 단지 직원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의 비루함은 그렇게밖에 여길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이가영도 존중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다. 그러나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부정한다. 자기만을 고집하며 강요하려 한다. 상처입는다.

그래서 또한 대비된다. 이가영의 이름이 박힌 이가영이 디자인한 옷과, 자기에 코디를 맡기는 정재혁의 존재란. 정재혁에게도 첫경험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기를 온전히 맡긴다. 초라한 것이 싫다. 더 대단해졌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다.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에 대한 연민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진심이 이가영을 흔들리게 만든다. 더욱 이가영을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강영걸이다. 그럼에도 쏟아진 컵라면을 치우려는 이가영의 모습이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이가영은 자신의 모든 미련과 감정을 태우며 강영걸에 대한 의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있을까? 어쩌면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감동받아 우는 사람이 있다. 옆에서는 삶에 지쳐 고단한 잠을 청하는 이가 있다. 세상은 그렇게 나뉜다.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과 그 아름다움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 누군가는 여유를 누리고, 누군가는 그 여유에 잠시의 잠을 청한다. 그것이 정재혁이고 이가영이다. 정재혁이고 강영걸이다. 정재혁이고 최안나다. 동시에 이가영이고 정재혁이다. 강영걸이고 정재혁이다. 최안나이고 정재혁이다. 최안나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을 강영걸에 대한 보복으로 풀고자 하는 정재혁의 저열함은 또한 그의 가난함이다. 그때는 그도 영화를 보며 눈물짓지 못한다. 그들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패션왕>이라는 제목의 원래뜻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자기에게 충실하며 솔직해질 수 있을 때. 그래서 이가영이 주인공이다.

아슬아슬하다. 아니 선을 넘었다.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실에서 보지 못한 만족을 사람들은 드라마로부터 얻고 싶어한다. 멋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평범했으면 좋겠다. 현실의 평범함과는 다른 이상화된 평범함이다. 남자가 그러면 안된다. 인간으로서 그래서는 안된다. 이가영은 눈물짓고 강영걸은 매몰차게 그녀에게 등을 보인다. 울고 있는 이가영 앞에서 최안나와 함께 등을 보이며 멀어진다. 마지막 순간 그래도 이가영을 보듬어주는 배려란 불가능했던 것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수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니다. 그는 어찌되었든간에 주인공이다.

정재혁도 대기업의 2세라기에는 너무 한심하다. 졸렬하고 저열하다. 당당함이 없다. 항상 아버지(김일우 분)에게, 김실장(김병옥 분)에게, 더구나 이제는 최안나와 조순희에게까지 당하고 있다. 당하면서도 자기를 다스릴 줄을 모른다. 이가영을 위하는 진심을 보이는데 그 수단에서 출생에 어울리는 고귀함도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어려움모르고 자란 재벌2세 캐릭터다. 원래는 악역에 어울린다. 강영걸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건달에 어울린다. 그런데 드라마를 볼 맛이 있을까? 처음에는 어느 정도 사람되기를 기다리다가 이제는 욕하기도 지친다. 말하지만 자기를 투사하여 보는 드라마에서 비루하고 비굴한 저열한 캐릭터란 자기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괴롭다.

최안나의 감정선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무나 갑작스럽다. 단속적으로 끊겨 있다. 그것은 최안나를 연기하는 유리 자신의 이해력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장면과 장면을 잇는 것은 여백이다. 대사와 대사 사이, 표정과 표정 사이, 행동과 행동 사이, 유아인도 이제훈도 신세경도 그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은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나 최안나에게서는 대사와 표정이 전부다. 행동이 전부다. 그런데 그것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순희의 의도는 장차 조금씩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강영걸의 좌절을 위해서.

역대 가장 한심한 남자주인공일 것이다. 덕분에 거의 '나쁜남자'급으로 이가영만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자로 인해 고통받는 전형적인 멜로의 순정캐릭터다. 원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엇을 것이다. 그녀는 강하여 홀로 부딪혀 일어설 수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홀로 싸우며 걸어갈 수 있는 여성이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강영걸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도 올곧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답답하게만 보인다. 원래 이렇게 바보같은 여자였던가?

때아닌 심리드라마다. 사회적 성장이 아닌 심리적 성장이다. 인간적인 성장이다. 어려운 것을 굳이 어렵게 그려내려 하고 있으니 정리하기도 쉽지 않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터다. 통쾌한 성공과 화려한 비상을 드라마를 통해 보고 싶어한다.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를 꿈꾸고 싶어한다. 복잡한 이야기는 싫다. 단편에나 어울린다. 너무 무겁다.

질척한 것을 좋아한다. 특히 인간의 내면의 음습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때로 지치고 피곤할 때 명쾌한 판타지를 통해 꿈을 보고 싶은 것은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월요일에는 어울린다. 수목드라마가 아니기를 다행이다. 아쉽다. 고민이 많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