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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16 08:58

넝쿨째 굴러온 당신 "너무나 여우같은 차윤희, 더 이상 며느리가 우는 시대는 지났다!"

지혜롭게 용기있게 며느리로서 자기자리를 찾고 지키려는 차윤희가 매력적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바로 얼마전 총선이 끝났다. 정치라는 것이 그렇다. 사람은 두 사람만 모여도 정치를 한다. 누가 주도권을 쥐는가? 누가 우선권을 갖는가? 어떻게 같은 결론에 대해 서로 납득하고 이해를 구하는가?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란 룰이며 그 룰이 지배하는 위계다.

이를테면 시집살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신고식이다. 무리 안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온다. 무리의 위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한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가? 바로 얼마전까지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한참 우위에 있었다. 새로운 여성이 무리에 포함되며 남성을 중심으로 그 위계를 정하게 된다. 룰을 정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당연히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이미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는 남편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며느리를 억압하고 강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배경으로 나이어린 시누이가 위세할 수 있는 시절도 지났다. 그러나 습관이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이기만을 원한다는 한만희(김영란 분)의 말에 민지영(진경 분) 역시 이렇다 할 대답을 못한다.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전통의 관습을 존중한다. 그러면서 슬쩍 새로운 가치와 행동을 제시한다. 며느리인 차윤희(김남주 분)에게 제사준비를 시키려 할머니(강부자 분)와 시어머니(윤여정 분)에게 고자질하던 장양실(나영희 분)과 말숙(오연서 분)의 시도에 대해 자기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방귀남(유준상 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며느리로서 제사준비를 위해 자기 일마저 제쳐두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그러면 어째서 제사준비는 남자만 해야 하는가 하는 한 차원 높은 현답으로 대꾸하는 식이다.

설마 부모자식사이에 서로 격식을 차리고 거리를 둘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부모자식사이라도 결코 침범받고 싶지 않은 그들만의 생활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거부하지만은 않는다. 시어머니의 양식에 호소한다. 일단 거절하고 다시 시어머니 엄청애가 그것을 물어왔을 때 설마 시어머니가 그렇게 하겠느냐며 비록 현관 비밀번호는 알려주더라도 미리 연락하고 올 것을 조심스레 주문한다.

차윤희는 확실히 여우다. 그토록 시집살이를 싫어한다. 시집식구들을 부담스러워한다. 자꾸만 거리를 무시하려 드는 그들의 오지랍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30년만에 처음으로 올리는 할아버지의 제사에서 사랑하는 아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남편에게 애써 눈치를 주는 전통적인 가치와 방식에 대한 이해도 있다. 그것이 더욱 그녀를 곤란케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혜롭게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도 안다. 적절한 줄다리기 끝에 적당히 양보하며 자신의 몫을 챙길 줄도 안다.

시누이가 모함한다고 마냥 당하기만 하는 며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누이가 부당하게 위세를 부리려 하면 되갚아준다. 시어머니가 위계를 내세우려 하면 적당히 양보하면서 실리를 챙긴다. 결과적으로 이기는 것은 그녀다. 하지만 져주어야 할 때를 알기에 이겨도 밉지 않다. 그렇게 불편해하면서도 정작 목욕탕을 나오면서는 다정하게 시할머니의 팔짱을 낄 수 있는 그런 선량한 진심이 그녀의 세속적인 이기를 가려준다. 이만하면 그런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그토록 싫어하는 시집살이이건만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남편 방귀남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비록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최대한 시집식구들도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킨다. 내 것은 지키되 남의 것도 존중해준다. 그런 과정이다. 그런 드라마일 것이다. 그녀가 주인공이다. 그녀가 드라마의 중심이다.

어째서 정치란 때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과열되고 하는가?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이유와 같다. 돈을 따려고만 한다. 잃으려 하지 않는다. 잃으려고 하지 않으니 더욱 집착하고 그만큼 도박에 빠져들고 만다. 한 번이라도 따거나 잃게 되면 본전생각에 더욱 도박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 양보가 싫다. 타협이 싫다. 그것은 지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겪어야 할 불편이나 불이익이 어쩐지 억울하고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올케 차윤희에게 약세를 보이고 싶지 않다. 시누이다. 차윤희의 남편의 그것도 무려 30년만에 다시 찾은 누이다. 이기고 싶다. 우위에 서고 싶다. 밀리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자신의 엄마까지 끌어들이고 만다. 말숙이 차윤희와의 관계에서 고집을 부리는 이유다. 시어머니 엄청애는 바로 며느리 차윤희와의 주도권싸움에서 밀렸을 경우 30년만에 겨우 찾은 아들과의 사이에도 영향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15회에서 허리를 다친 엄청애와 방귀남의 집 거실에서 방귀남과 차윤희가 함께 나란히 누워 자면서 보인 미묘한 신경전은 그것을 보여준다. 아들이고 남편이다.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결국 양보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방귀남은 눈치가 없다. 굳이 주위를 살피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올곧게 자기 길만을 간다. 그런데 그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바르고 올곧다. 대개는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으면 민폐가 된다. 대신 차윤희의 친정오빠 차세중(김용희 분)는 너무 눈치가 빠르다. 차세중은 비교적 현실적이다. 어머니 한만희와 아내 민지영 사이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며 편을 들어준다. 방귀남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현실에 없는 캐릭터이기에 차윤희가 겪는 시집살이의 어려움마저 현실이 아닌 것처럼 사소하게 넘어간다. 심각할 수 있는데 여유롭게 웃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유준상 정도일 것이다. 섣부르게 누구의 편을 들거나 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사랑하는 아내 차윤희의 편이 되어준다. 그러나 누구보다 선하고 성실하다.

이숙(조윤희 분)과 천재용(이희준 분) 사이가 심상치않다. 천재용이 이숙에게 마음이 있다. 그는 아이다. 오히려 관심이 있기에 괜히 놀려주고 괴롭혀주고 싶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짐짓 자신을 꾸미기도 한다. 이숙은 어떨까? 천재용 엎에서 괜한 말과 행동을 보인 탓에 그녀 또한 천재용과의 잦은 만남이 어색하기만 하다. 면접에서는 떨어진 것일까?

이름까지 속이고 만나는데 말숙이 진짜로 차세광(강민혁 분)에게 진심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직까지 차세광에게 말숙이란 게임의 대상일 뿐이다. 말숙을 유혹해서 그녀의 가식을 낱낱이 벗기려 한다. 그러나 그의 뒤에는 차윤희가 있다. 게임은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말숙이 진짜 차세광에게 제대로 길들여지고 있다.

팬이라면서 윤빈(김원준 분)이 지금 놓인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숙(양정아 분)의 마음도 알 것 같다. 모두가 아는 것을 그녀만 모른다. 윤빈이 더 이상 인기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만 애써 모른 척 무시하려 든다. 딸 민지가 사실을 전해도 그녀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이돌의 이유일 것이다. 꿈을 꾸게 한다. 잠시라도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과거 쫓아다니던 인기스타로부터 위로받고자 한다. 그런데 윤빈은 꿈속에서 현실로 발을 딛는다.

더 이상 꿈만 꿀 수 없는 현실이 처절하다. 비참하다. 김장훈마저 까메오로 나섰다. 윤빈과 비슷한 무렵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제는 퇴물이 되어 버린 가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설 무대란 있다. 당장은 소소하지만 그들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 새로운 삶을 출발한다. 드라마의 공식대로라면 윤빈에게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마지막 기대가 있다. 윤빈의 판타지가 필요한 이유다.

방정배(김상호 분)와 띠동갑아내 고옥(심이영 분)과의 사이에 어떤 위기감이 감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귀남이 보인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완벽한 남자다. 비교가 된다. 여전히 남편 방정배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방귀남과 같은 남편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방정배 역시 아내 고옥을 사랑한다. 변화가 있을까? 어쩌면 피해자다. 하지만 고옥에게도 새로운 기회는 찾아온다.

사실 보통의 남자들에게 있어 그다지 와닿는 내용은 아니다. 시집살이에 대한 체감이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까지 시집살이를 시키려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있는가? 그러려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남자는 잘 모르는 세계다. 때로 차윤희가 얄밉고 이제는 말숙으로 인해 차윤희가 불쌍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코 꺾이는 법이 없는 차윤희의 당당함과 영리함이 통쾌하기도 하다. 고부갈등이라는 소재는 물론 그 표현방식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유쾌하다. 고부갈등에 대한 고민이나 이해 없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이 실체는 드러났다. 장양실이 과거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가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차피 그다지 중요한 내용도 아니다. 중요하다기에는 방귀남이 장양실과 과거 사기꾼과 만나는 장면을 우연히 보고 있었다. 역시 계기가 되리라. 화해의 계기다. 진실을 용서를 위한 전제다.

결코 지지 않는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악의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얄밉기는 하지만 이기만 내세우지도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려 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여우는 영리하다. 차윤희는 현명하다. 매력적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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