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10.20 08:34

[김윤석의 드라마톡] 공항 가는 길 9회 "강요당하는 모성, 어쩌면 거짓말의 이유"

점점 더 구체화되어 가는 이유들, 이면을 상상해 보다

▲ 공항 가는 길 포스터 ⓒ스튜디오 드래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공항 가는 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 진실을 알고 난 뒤의 일들이 두렵다. 그래서 애써 거짓말로 진실을 감추려 한다. 이제는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러나 진실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이기에 거짓말도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진실에 쫓기며 거짓으로 도망치며 어느 순간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무엇으로부터 숨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마주한다.

문득 서도우(이상윤 분)의 아내 김혜원(장희진 분)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아직 철모르던 어린 시절의 한때 실수였다 여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섣부른 사랑에 더구나 미처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엄마까지 되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려 했을 때 갓태어난 아이는 모성이기보다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로 여겨졌을 수 있다. 아예 잊으려 했다. 남편이라 부를 수도 없는 아이 아빠에게 맡겨 놓은 채 아예 잊고 새롭게 출발하려 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진정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만났을 때 잊고 있던 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면 김혜원은 그 딸에게 어떻게 해야 했던 것일까?

어째서 모든 여성들은 어머니여야만 하는 것일까? 어째서 여성들은 어머니이기만을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남성들은 굳이 아버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딸 때문에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던 최수아(김하늘 분)의 사정이 그래서 김혜원의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아버지 박석진(신성록 분)은 아예 딸을 방치하고 있었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내인 최수아보다 더 오래 더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눠 왔던 송미진(최여진 분)의 말이 신경쓰인다. 자존감이 너무 없어서 젊은 여자를 유혹하여 그를 통해 자존감을 채우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딸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 아내에게 지나치게 무심하고 냉정했다.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못해도 자기 책임이다. 마치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애니(박서연 분)의 친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상의도 않고 어느날 갑자기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던 사람 앞에 딸이라며 무작정 등떠밀어 보내면 어쩌란 것일까.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배아파 낳은 딸이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 헤어져 지내왔다면 받아들이기까지 충분한 준비와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딸의 존재를 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면 어쩌려는 것이었을까. 흔한 이야기처럼 딸의 존재로 인해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면. 김혜원의 두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유다. 필사적으로 딸의 존재를 인정받으면서 자신의 존재 역시 거부당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여전히 사랑하는 서도우가 사랑할 수 있는 자신으로 남기 위해서.

아빠들은 무책임했다. 박석진이나 애니의 친아버지다. 어쩌면 서도우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애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애니에 대해 알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죽은 애니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자신을 위한 이유만들기가 아니었을까? 아내를 미워해야 하는 이유, 아내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 그로고도 자신이 정당할 수 있는 이유들을 위해서. 

어떤 비밀들은 지나고 나면 전혀 비밀도 아니게 된다. 서도우의 어머니 공은희가 젊어서 처음으로 만든 조각보처럼. 아마 애니도 그래서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애니가 그토록 반발하면서도 결국 엄마의 강압적인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서도우 아빠가 엄마와 자신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사랑하게 되기를. 사랑해주기를. 그러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있는 엄마의 전남자이자 애니 자신의 친아빠의 존재마저.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만일 그 사실을 서도우가 알게 된다면 엄마도 자신도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만 거짓말을 잘하면 두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 애니가 두려워한 현실이다.

핑계를 찾는다. 박석진은 친구의 남편이다. 오히려 박석진과 한때 동거까지 했던 사이였기에 더욱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만 했었다. 자신이 아닌 친구를 선택한 박석진에 대한 오랜 원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박석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때마침 한지은(최송현 분)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왜 하필 김혜원과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도록 박석진을 불러내는데 그곳이 박석진의 호텔방 앞이었던 것일까? 갑작스레 박석진에 대한 동정심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최수아와 서도우의 아마도 불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마음가는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박석진의 방을 나와 잠시 걷다가 이내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간다.

아내보다 더 편한 사이다. 박석진의 아내에 대한 마음이 나름대로 진심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자존감이 약하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자기에 대해 상대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부끄럽고 약하고 추한 모습까지 모두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에 비하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에 송미진은 아내보다 더 편하게 대해도 된다. 문득 궁금해진다. 상당히 괴팍할 정도로 세련되고 개인주의적인, 평소 며느리 최수아에게 무심하다가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말리며 나서는 시어머니의 존재까지 더해 과연 박석진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가정에서 어떻게 자랐기에 저런 비틀린 인간이 되었던 것일까? 연민에 가깝다. 어쩌면 송미진의 박석진에 대한 감정 역시 그를 너무 잘 알기에 가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을지 모른다. "그만두라!" 친구 최수아는 물론 박석진을 위한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단순하게 보면 한없이 단순하다. 남편 박석진은 아내 최수아와 딸 효은(김환희 분)에게 너무 무심하고 불성실하다. 아내 김혜원 역시 남편 서도우를 지금껏 속여오고 있었다. 남편 박석진이 나쁘다. 아내 김헤원이 나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 최수아와 남편 서도우는 위로를 찾아 서로에게 이끌리고 있다. 그들에게 서로는 도피처이자 안식처다. 주위에서도 하나둘 그들의 관계를 인정해준다. 그들의 남편과 아내와 관련한 지독한 진실들이 드러날 때마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선량하다. 최소한 누구나 선량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선량하지 못한 것은 그 선량함의 방향이 다른 것 뿐이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새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시작한다.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