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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10.18 07:50

[김윤석의 드라마톡] 구르미 그린 달빛 17회 "사라진 홍라온과 내용있는 전개, 세자 쓰러지다!"

아무것도 않는 홍라온이 아무곳에도 없을 때

▲ 구르미 그린 달빛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나 그래도 주인공인데 홍라온(김유정 분)의 분량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권신 김헌(천호진 분) 일파와의 싸움이 거침없이 전개되면서 잠시나마 속도감과 긴장감 비슷한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봐야 죽은 김병연(곽동연 분)을 살리고 싸움의 절정에서 김헌에게 세자(박보검 분)가 독살당하는 어이없는 전개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한 주머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주머니가 찢어지거나 아니면 안에 든 것이 망가지게 마련이다. 한정된 분량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하면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버려야 할 때는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긴 그러니까 세자 이영과 홍라온의 사이가 여전히 그 모양으로 지지부진한 것이다. 헤어져야 할 때 헤어지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야 할 때 떨어져 있지 못하고, 그래서 만날 수 없어야 하는 때조차 그들은 만나고 있었다.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자라날 틈이 없다.

차라리 김병연이 죽었다면, 아니 최소한 죽었다고 세자가 여기고 있었다면 동궁전에 난입했던 자객들의 배후를 쫓기 위한 세자의 위장에 시청자 역시 잠시 속아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세자가 타락했다. 세자가 방탕해졌다. 사랑하는 홍라온도 떠나보냈고, 더구나 가장 믿고 의지하던 친구 김병연마저 자신을 배신하고 끝내 죽임을 당했다. 어지간히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충격이 작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시청자가 세자를 안타까워 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김병연과 함께 있는 세자를 보여주며 홍라온까지 김병연의 곁으로 보낸다. 심지어 김병연과 세자가 대화를 나눌 때는 홍라온이 숨어서 듣고 있었다. 

지나치게 친절하다. 드라마와 드라마속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있다. 정작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들의 헤어짐을 견디지 못한다. 상실과 좌절의 고통을 두고보지 못한다. 시청자가 미처 궁금하기도 전에 작가가 먼저 나서서 답부터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을 더이상 어떤 상실도 고통도 겪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가에 따라 평가는 갈린다. 거리거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갑자기 뜬금없어진다. 김헌과의 싸움이 겨우 본격화되려는 순간 약을 먹고 쓰러지는 세자의 모습처럼.

역시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조정에서 자신의 손발 역할을 하던 이들이 죄인이 되어 형옥에 갇힌 채 처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조정에서 세력도 약해졌는데 믿고 있던 자신의 딸 중전(한수연 분)이 저지른 행위가 다시 올무가 되어 목을 조이려 하고 있었다. 왕을 속였다. 왕의 핏줄인 공주를 버리고 전혀 상관없는 비천한 궁녀의 핏줄을 데려다 왕의 아들이라며 모두를 속여 왔었다. 한 나라의 국모인데 원래는 기방에서 기녀들과 함께 자란 천출이라며 딸인 중전이 자신을 협박하고 있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세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과 적대하는 세자가 그 사실을 알고 중전이 버린 공주마저 데려와 돌보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다. 세자를 죽여야 한다. 세자를 죽여야만 이 모든 위기를 피해없이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드라마로서는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지레 터뜨려버린 모양새다. 어느 정도 치열하게 세자와 김헌의 싸움이 이어지다가 한 방에 세자가 김헌을 궁지로 몰면서 지금처럼 극단적인 방법도 동원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그동안 세자와 김헌이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채 세자와 김헌의 싸움이 고조되기도 전에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바로 세자와 홍라온의 사랑씬이 이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싸움이 보다 첨예해지고 치열해지기도 전에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운 세자와 홍라온의 달달한 사랑장면만 보여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중간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세자의 반격에 김헌은 위기에 몰리고 김헌의 위기를 실감하기도 전에 김헌의 무모한 도박이 이어져야 한다. 세자를 암살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기까지 그 과정을 시청자는 함께하지 못한다. 그냥 김헌은 무조건 나쁜놈이다. 모든 것이 해결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홍라온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홍라온에게 원죄가 있었다. 세자에게는 세자이기에 해야만 하는 자신만의 일이 있었다. 그를 위해 아버지인 왕(김승수 분) 역시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 김헌 일파의 눈치만 보다가 새삼스레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세자의 대리청정까지 관철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왕인 자신이 명분이 되어 뒤를 지키는동안 자신을 핑계삼아 한 번 마음껏 역량을 보여 보라. 실추된 왕권을 바로잡고, 바른 정치로 피폐한 백성들의 삶도 보살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조정을 장악하다시피 한 김헌 일파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세자를 위해 그동안 홍라온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아니 아예 홍라온과 함께 있는 동안 세자는 자신의 책임을 위해 얼마나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차라리 도우면 조하연(채수빈 분)이 도왔다. 김윤성(진영 분)으로부터 듣고 찾아온 중전의 친딸을 안고서 찾아가 도발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홍라온은 오히려 세자를 궁지에 빠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홍라온을 인질로 잡고, 홍라온을 빌미로 삼으면서, 오히려 거부하지 못하고 세자 스스로 함정으로 걸어들어가도록 만들 뿐이었다. 홍라온이 사라지고 난 17회는 그래서 너무 노골적이었다. 주인공이지만 홍라온 쯤 빠지더라도 드라마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야말로 하필 드라마의 주인공이 박보검과 김유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나마 내금위 정도는 세자의 명령을 우선해서 따르니 다행이다. 김헌과 그의 일족들이 조정을 장악하면서 정작 내금위는 손을 쓰지 못한 모양이다. 덕분에 죄상이 밝혀지고 증좌가 드러나자 꼼짝없이 김헌의 일족들도 의금부에서 형문을 당할 수밖에 없다. 권신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왕명만 쫓는다. 이런 좋은 신하들을 두고 어째서 왕은 자기 사람이 없다 말했던 것일까. 너무 쉽다. 역시 왕이 한 번 하려 하면 못하는 것이 드물다. 의외로 김헌 일파가 너무 무력하다. 저항도 못하고 김헌이 무리수를 두기까지 저항도 제대로 못한다.

그저 사랑만 할 것이면 이번에도 사랑만 했어야 했다. 헤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역시나 함께였어야 했다. 홍라온이 없어도 전혀 문제없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더 내용있고 빠르게 전개된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사랑만 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사랑만 했다. 하지만 사랑만 할 수 없는 사정들이 있었다. 무시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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