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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10.15 08:24

[김윤석의 드라마톡] 판타스틱 13회 "홍준기와 삶의 마지막을 위한 축제"

행복한 죽음이라는 역설, 한결같은 류해성이 모두를 지탱하다

▲ 판타스틱 포스터 ⓒJT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판타스틱. 흔히 천수를 다하고 명을 달리한 것을 '호상(好喪)'이라 하여 한 편으로 축하해주기도 한다. 어차피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죽는다. 영원히 살 수 없다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는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래서 미련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남지 않는 죽음이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시한부를 선고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부정하며 저항하고, 분노하며 이유를 찾고,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 타협을 시도하는가 하면, 결국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우울해하다가, 마침내는 모든 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만큼 죽음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생각하고 논리로 추론하기 이전에 그것은 이미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있어 본능과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로 하여금 죽음을 피해 살아가도록 만든다. 살고자 하는 욕망의 반대편에 죽음이 있다. 죽음은 상실이며 종말이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모든 욕망과 바람, 기대, 소망, 추구, 살아있어서 가능한 모든 것들이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때가 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섰을 때다. 남들보다 몇 년을 더 살았다. 또래 가운데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비롯해 몇몇 정도가 고작이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내야 했었다.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봤다. 하나의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그만큼의 절망과 좌절이 쌓여간다.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구나 싶을 때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일까. 기왕에 죽을 것이면 아무 고통도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도록. 아무도 아프지 않게 떠날 수 있도록.

홍준기(김태훈 분)가 처음 암선고를 받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필자로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가끔 단편적으로 홍준기의 회상을 통해 들을 수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턱없이 정보가 부족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서야 지금처럼 웃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살고자 하는 욕망은 남아 있다. 살아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매 순간 새롭게 떠오르려 한다. 그래서 일부러 자기가 간절히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노트에 적어 구체화시킨다. 아마 이것들을 다 해 본다면 그때는 조금 편하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지막에 건넬 말이란 '살아라!' 한 마디면 충분하다.

마지막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기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그동안 홍준기가 나름대로 치열하게 싸워왔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웃어주는 자신을 형이라 불러준 남자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이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 그러나 그 남자가 곁에 있어서 한 편으로 마음놓이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내일이 있다. 내일의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사랑도 있고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고 좌절도 있다. 너무나 눈부신 그것들에 감사한다. 자기는 이제 죽을 것이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오로지 행복한 순간의 기억들만을 남긴다.

이번 회차의 주인공은 홍준기였다. 장차 이소혜(김현주 분)가 겪게 될 장래를 위한 예고편이기도 했다. 마음껏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고, 그저 슬퍼하다가, 끝끝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살아있기에 여전한 바람과 기대와 희망이 그를 흔들리게 하지만 익숙하게 꾹꾹 눌러 달래 놓는다. 이소혜의 곁에는 류해성(주상욱 분)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암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그 남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홍준기가, 그 다음에는 류해성이, 그리고 친구들이 있어주었기에 남들보다 한 발 빠르게, 더 적은 고통과 혼란만을 겪고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혼자서 외롭지 않게, 혼자서만 힘들지 않게,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래 본다. 혹시라도 이처럼 좋은 사람들과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아무리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고 내일을 꿈꿀 수 없다면 숨을 쉬는 것조차 아닐 테니까.

이번 회차의 주인공이 홍준기였다면 드라마를 한결같이 지탱하고 있는 중심은 역시 주인공 류해성이었을 것이다. 슬픔을 슬픔이 아니게 만든다. 아픔도 아픔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언제나 웃고 있다. 언제나 웃으려 하고 있다. 누구보다 아프게 울고 있으면서도 항상 모두와 있을 때는 가장 밝게 기쁘게 웃고 있었다. 강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면 이제는 차라리 구원받는 느낌마저 받는다. 말기암에도 다른 멀쩡한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만난지 얼마 안 된 홍준기에 대해서까지. 누구보다 자신과 관계있는 주위에 열심이다.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백설(박시연 분)의 남편과 시가는 홍준기, 이소혜 두 사람과 정확히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들의 무기는 오로지 거짓과 기만과 위선이다. 진실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간절히 백설의 존재를 필요로 하면서도 오히려 그를 위해 태연히 거짓말을 한다. 함정을 파고 계략을 꾸미며 협박까지 일삼는다. 그렇게 그동안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다. 그렇게 그동안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가져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소중한 것이 있어도 소홀했고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 그들이 소망하는 것들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진정 그들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진욱(지수 분)이 시험하고 있었다. 백설의 친구들이 지키려 나서고 있었다. 단 하나 백설이 소망하는 것을 지킨다.

어쩌면 모든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한 이들을 위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이제와 뭐 어쩌느냐고. 받아들여야 한다면 받아들인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드라마속 인물들처럼 운이 좋지는 않다. 다만 한 사람, 소중한 한 사람만 곁에 있어주더라도. 부럽기도 하다. 얼마 안되는 남은 시간들이 행복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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