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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11 10:14

빛과 그림자 "세트에 갇혀버린 특별기획, 50부작이 너무 버겁다."

더 이상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매력이란 없이 습관으로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드라마가 시시해졌다. 좁은 세트에 갇혀 버렸다. 항상 보는 사람만 본다. 항상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과만 대화를 나눈다. 마치 데자뷰같다. 언젠가 한 번은 본 장면이다. 같은 배경과 같은 구도, 그리고 같은 인물들, 단지 나누는 대화만 다르다. 그것이 반복된다. 창사 50주년 특별기획이라는 말이 다 무색할 지경이다. 중요한 사건들조차 등장인물들의 대사 몇 마디로 지나치고 만다.

장철환(전광렬 분)이 조명국(이종원 분)에게 맡긴 비자금 200만 달러로 인해 두 사람이 충돌하려 한다. 200만 달러란 지금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장철환 자신도 김재욱(김병기 분)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조명국 또한 그런 장철환에게 이대로 죽지는 않겠다며 대항하려 한다. 나름대로 이룬 것도 있는데 과연 그들에게 사람이 없고 세력이 없을까? 하지만 그조차 결국 장철환이 직접 조명국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조명국 또한 다시 장철환을 찾아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조태수(김뢰하 분)는 조폭두목이다. 서울의 중심가를 장악한 전국구주먹이다. 그러나 과연 조태수가 일본에서 돌아와 원래의 세력을 되찾았는지 드라마만을 보아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오기는 한다. 스쳐지나듯 대사 몇 마디로 처리되고 만다. 그런데도 항상 혼자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다. 항상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있었고, 조태수는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도 말 몇 마디로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대신해 처리하도록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조명국의 금고문을 여는 일에조차 조태수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고 있었다.

이혜빈(나르샤 분)과의 데이트 도중 검찰에 체포되는 장면만 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데이트다. 이혜빈과 둘이서만 남녀로서 만나 데이트를 즐기던 중이다. 하지만 조태수 자신도 과거 한지평을 공격하면서 한지평이 방심한 빈틈을 노린 전력이 있었다. 언제 누가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치고 들어올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는가? 그러나 달랑 차 한 대와 조태수와 이혜빈 두 사람, 휑한 가운데 조태수와 이혜빈 두 사람의 클로즈업샷만 쓸쓸하다. 하기는 덕분에 조태수는 흉악한 조폭두목이라기보다는 늦사랑에 정신차리지 못하는 아저씨에 불과할 뿐이다. 과연 지금 조태수가 조폭두목으로서 조폭답게 하는 일이란 뭐가 있던가?

괜히 특별기획이라고 겉보기만 거창했지 실속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도 말 몇 마디로 지나가려는 것 같고. 삼청교육대는 그나마 강기태와 조태수가 끌려가게 될 테니 제대로 묘사될 수 있을까? 삼청교육대를 재현하는 것부터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원래 계획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정혜(남상미 분)가 찍고 있는 영화만 하더라도 최성원(이세창 분)과 강기태가 모두 그녀와 함께 감독으로, 제작자로, 배우로써 첫발을 딛는 데뷔작이었던 '복수혈전'과 그래서 많이 비교가 된다. 오로지 이정혜 한 사람만이 보이고 있는 새로운 영화의 촬영장면과 배경을 달리해가며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출연하던 이전의 영화제작현장과, 성의가 없어졌다기보다는 여유가 없어졌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대충 눈속임으로 때우려 든다.

너무 버거운 기획이었다. 50부작이란. 미리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뒤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동안 대본을 쓰고 대본이 나오면 그에 맞춰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일주일에 두 편, 140분 분량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처음에야 준비기간도 있고 했으니 디테일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사라졌다. 기획단계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소진하고 난 뒤 남는 것은 그때그때 대본을 쓰고 그에 맞춰 장면을 찍는 일일시트콤 뿐이다. 아니 시트콤은 시트콤 나름의 완성도라도 있다. 시트콤만큼 웃기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휑한 영상 가운데 말로만 심각해봐야 우습기만 할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깝다. 사실 지금 드라마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배우들의 열연 뿐이다. 가끔은 흐트러지는 부분도 나온다. 아무것도 없이 바로 연기를 시작하려 할 때 미처 준비가 끝나지 않은 어색함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프로라는 것은 그같은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시청자들에 전하는 그들의 진지함일 것이다. 과연 베테랑들의 열연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는 어떻게 되었을지. 능력에 넘치는 욕심이란 그렇게 자신을 해치고 주위를 피곤케 만든다. 어쩌면 파업의 영향도 있었을까? MBC에게 다시 한 번 50부작이라는 방대한 기획이란 처음부터 무리였구나 깨닫게 된다. 딱 30부까지만 재미있었다.

위기가 찾아온다. 그래도 차수혁과 조명국이 강기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보복을 하려 한다. 그를 막으려 한다. 삼청교육대가 등장한다. 오랜 기억을 떠올린다. 깡패들을 국가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갱생시킨다. 그러나 그 대상 가운데는 무고한 어린 학생이나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가정주부마저 있었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었다. 낙인을 찍고 강제로 수용했다. 하소연할 곳조차 없이 그렇게 그들은 끌려갔고, 갇혔으며, 고통받고, 적지 않은 이들이 죽어갔다. 강기태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간다면 마지막 화제성은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지금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갖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역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통쾌하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것이 검찰 아닙니까?"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준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취조 도중 고문은 당연한 수사의 일환이었다. 심증으로 잡아들여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냈다. 그렇게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은 이들이 도대체 얼마이던가? 그러나 검찰에게는 그것은 실적이 된다. 아니 설사 그것이 잘못인 것을 알았더라도 검찰의 명예를 위해 그것을 덮는다. 검찰에 대한 오랜 불신이 그저 괜한 오해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차수혁의 친구조차 바로 그런 검찰이지 않던가.

이런 재미에 드라마를 끊지 못한다. 도저히 더 이상 처음의 재미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도 드라마를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미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매력은 사라진지 오래다. 습관이 드라마를 부여잡는다. 아주 가끔의 통쾌함이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 되어 준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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