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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6.10.08 14:41

[권상집 칼럼] 영화 ‘아수라’는 왜 성토의 아수라장이 되었나

현실성 없는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단순 폭력이 만들어낸 아수라장 같은 스토리

▲ 아수라 티저 포스터 ⓒ사나이픽처스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2016년 개봉된 영화 중, 평론가와 영화 업계에서 가장 기대가 높았던 작품은 압도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었다. <곡성>이 크랭크업된 이후 영화업계와 4대 메이저 배급사들 사이에서 ‘대단한 영화가 곧 나온다’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호불호가 조금 엇갈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작품성이 괜찮은 영화, 국내에서 실험적인 시도가 반영되었던 영화로 <곡성>은 인정 받았고 나홍진 감독은 단기간에 주목 받는 차세대 감독에서 대한민국의 대표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평단과 영화업계가 아닌 관객들의 기대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아수라>였다. 지난해 5월, 정우성과 황정민, 유오성과 김남길(맨 처음 거론된 배우들)이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에 의기투합하기로 하면서 관객들 사이에서는 ‘시작부터 1000만 관객’, ‘신세계와 내부자들을 뛰어넘을 영화’라는 기대가 확산되었다. 특히, <비트>와 <태양은 없다>로 흥행 호흡을 맞춘 배우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15년 만의 재결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또 다시 한국형 느와르 작품의 흥행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였다. 올해 초부터 주요 영화사 및 포털 사이트에서 ‘대체 촬영이 완료된 아수라는 언제 개봉하느냐’는 문의가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온 것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기대와 호응을 대중으로부터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올해 1월 25일 영화 <아수라>가 크랭크업한 이후, 여름방학 및 추석 연휴 같은 이른바 대목 기간을 지나 개봉했을 때 영화업계를 좀 아는 사람들 또는 영화를 좀 많이 본 관객들은 한번에 “아수라가 예상보다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았구나” 라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다. 참고로, <아수라>의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배급사이다. CJ뿐만 아니라 주요 배급사들은 영화의 내부 시사회 및 검토를 거쳐, 개봉일을 최종 결정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작품의 흥행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면 개봉일을 주요 대목 기간을 고려해서 결정한다. 지난해, 1341만의 관객을 모았던 영화 <베테랑>은 당초 지난해 5월 개봉이었다. 그러나 CJ는 이 영화가 엄청난 흥행이 될 것으로 자체 판단, 과감히 여름방학인 8월 5일 개봉으로 일정을 갑자기 변경시켰다. 즉, 영화의 작품성, 흥행성이 좋다고 판단되면 배급사는 무리를 해서라도 개봉일정을 방학 또는 추석 연휴에 배치시킨다.

영화 <아수라>가 1월 말에 이미 촬영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도 아니고 추석도 아닌 9월 말에 개봉되었다는 건, 배급사 역시 <아수라>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물론, 아수라 팀은 크랭크업 때부터 올해 하반기 개봉을 강조했지만, 정말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성이 좋으면 CJ는 9월 말이 아닌 겨울방학으로 이 영화를 후진 배치시켰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수라>의 개봉일인 9월 28일 일정을 보고 ‘이 영화는 기대보다 그림이 안 나왔을 것이다.’라고 댓글을 단 일부 네티즌들은 영화계 산업 논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첫 날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갈수록 관객이 저조한 망작의 길을 걷고 있는 <아수라>는 현재 400만은커녕 300만 돌파도 힘들어 보인다.

많은 평론가 및 언론은 영화에 대한 부진을 보고 ‘느와르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도 증대’, ‘영화 속 황정민이 연기한 안남시장 박성배가 왜 그토록 재개발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곽도원이 연기한 김차인 검사는 왜 그토록 박성배를 잡기 위한 건지 구체적인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개봉 전, 주연배우들이 단체로 MBC <무한도전>에 나와서 홍보하는 바람에 기대치가 꺾였다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비판까지 덧붙여진다. 그러나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박성배 시장이 왜 재개발에 집착하고 김차인 검사는 왜 박성배 시장을 끝까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잡으려고 했는지 아주 잘 나와 있다. 이런 점을 꼬집어 영화의 흥행 부진을 생각했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 시장은 대규모 거액 프로젝트를 통해 자본 획득에만 집착하는 노회한 3류 정치인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스폰서 인생을 살아온 박성배 시장이 재개발에 집착하는 건, 수천억이 넘는 대규모 이익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영화 속 김차인 검사는 지방대 출신의 소위 말해 연줄 없는 무명 검사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박성배 시장을 잡기 위해 필생의 노력을 다한 건, 그나마 자기를 믿고 있고 박성배 시장의 반대편에 선 부장검사의 눈에 들어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학벌, 족보를 가장 강조하는 검찰에서 지방대 나온 김차인 검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박성배 시장의 재개발 집착과 김차인 검사의 안남시장에 대한 집착은 충분히 개연적인 설명이 된다.

그리고 국내 느와르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로 인해 영화의 부진을 비판한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반응도 틀렸다. 단적인 예로, 영화 <아수라>는 개봉 첫날 47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느와르 영화의 첫날 개봉 최다 관객 신기록을 세웠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내부자들>을 지켜본 관객들의 피로도가 쌓인 게 아니라 <아수라>에 대해 높은 기대를 하다가 산으로 가는 스토리, 툭하면 나오는 개연성 부족한 폭력으로 관객들이 등을 돌렸을 뿐이다. 한마디로 ‘아수라는 못 만든 영화’라는 결론을 관객들이 이미 내렸기 때문에 흥행이 저조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단언해도 된다. 이미 네티즌들은 ‘맛없는 뷔페요리’, ‘시간이 가는 줄 너무나 잘 알고 본 영화’,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만 강력 추천’이라는 조롱으로 영화 <아수라>의 완성도를 비판하고 있다.

김성수 감독은 ‘악인들의 세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지속적인 폭력의 끝을 조명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성수 감독은 진짜 악인들의 세계를 모르는 것 같다. 진짜 악인들, 그리고 권력을 지향하는 자들은 절대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수많은 인맥과 자본으로 교묘하게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은밀한 거래와 협박을 통해 한 순간에 날려 버린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내부자들>은 이런 면을 조금 더 잘 부각시켰고 인물들 간의 위협적인 대화를 통해 긴장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영화 <아수라>는 여전히 주요 인물들이 만나기만 하면 서로 주먹질하며 싸우기에 바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빠진 10대 중고생 권력싸움 같아 유치해서 못 볼 지경이다. 국내 고위공직자, 권력자, 검찰과 경찰이 저렇게 싸운다고 예상했다면 김성수 감독은 사회 공부 다시 해야 한다.

인구 48만의 소도시 시장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검찰에 대항하는 모습, 그리고 검찰에 대해 폭력과 살인교사 등을 벌이는 영화 속 박성배 시장을 보고 필자가 알고 있는 일부 법조인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나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주인공 한도경 형사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지만 영화는 2시간 12분 내내 10대들의 유치한 주먹 서열 정하기에 급급하다 성급히 마무리 된다. 필자의 지인 중 한 명은 이 영화를 보고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감독이 악인들의 세계를 그리고 싶은 건 알겠는데 정말 악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고 어떻게 상대를 주저앉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고 만든 것 같다.” 옛날부터 ‘드라마는 작가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이라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을 모아놓고 90년대식 단순 폭력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안타깝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악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는데 김성수 감독만 여전히 1997년 영화 <비트>의 시각으로 악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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