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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18 07:59

남자의 자격 "양준혁의 멋진 예능신고식"

웃음과 예능의 의미 !

 
얼마나 황당했을까?

"나 내려줘, 다시 뛰게!"

김국진 15km, 이정진 14km, 윤형빈 16km...

"5km만 더 뛰면 증서 주는데..."

차라리 그게 더 영광스럽지 않을까?

"나 오늘 페이스면 기록 냈다고!"

완주를 하든 기록을 갱신하든 어느 것이든 성취감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감탄할 것이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가서 내세울 한 가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몰래카메라...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동안 달려온 시간과 거리는 어떻게 되는가? 그 노력은?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납덩이마냥 무겁고, 그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10km가 넘게 한결같이 달려온 그 과정들은?

하지만 그것이 바로 예능이니까. 웃음일 것이다. 재작년 2009년 고창 하프마라톤에서의 재현이었다. 이경규는 투덜거리면서도 계속 달리고 있고, 윤형빈은 김태원을 보살피다가 이윤석을 지나 양준혁에 이르러 박수로써 응원하고, 이윤석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레이스를 계속 하고,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감동이었다. 그런데 어떤가?

이윤석이 달리다 말고 고통을 호소하며 마사지를 받는데 오히려 웃음을 흘리고 있다. 김국진이 양준혁과 나란히 달리고, 윤형빈이 다가와 박수치고 노래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피식피식 웃음만 짓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1등으로 완주하고 싶다는 이정진에 대해서도,

"도대체 왜?"

그렇게 하찮다. 그렇게 우습다. 그 결심들이. 그 다짐들이. 그 노력들이. 그 역경들이. 그 과정들이. 그 고통과 눈물이.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이가 죽어 비통한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문득 코미디프로그램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실패로 인한 좌절과 고난으로 인한 절망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도 TV에서 보여지는 코미디프로그램에 마음껏 웃고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그런 까닭에서다. 페이소스라 한다. 가슴 저 밑에서 치미는 격정. 그것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다.

그것이 웃음에는 있다. <무한도전>에서도 노홍철은 말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어서 행복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근심과 걱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기에 행복하기도 하다. 웃음의 힘이다. 그래서 코미디란 어쩌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과 안타까움을 때때로 웃음으로 승화시켜 보여준다. 비하하고 모욕주고 골탕을 먹이는 것은 그래서 웃음의 가장 흔한 소재다.

당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화가 난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다. 어떻게 되려는가?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인가 모르기 때문에 재작년 마라톤편은 감동이었던 것이다. 그 고통과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그 무게가 가슴에 와 닿으며 묵직하게 걸리는 것이 감동이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 하니까. 결국 몰래카메라이고 뛰지 않아도 뛰는 것이라 하니까. 감동이기보다는 괜한 고생을 한다는 우스움부터 느낀다.

화가 나지만 화가 나기 때문에 우습다. 억울하지만 억울하기 때문에 우습다. 김국진이 화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김국진이 화를 내기 때문에 우습다. 김국진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윤형빈이 억울해하며 원망하는 그 모습이. 당사자야 어떠하든.

다만 거기에도 어느 정도 정도가 있다. 왜? 어째서 몰래카메라는 실패하고 말았는가? 너무 스케일이 컸다. 마라톤이란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무엇이다. 너무 크다. 너무 길다. 작년 이맘때 1주년 특집으로 이경규 몰래카메라를 시도했을 때도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았었다. 끝나고 웃고 넘어가기엔 너무 크게 벌린 것이 아닌가. 이제 50대가 되는 이경규로 하여금 24시간을 속여 굶게 만들었으니. 몰래카메라라고 그저 웃고 말기에는 너무 크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마라톤이다. 굳이 몰래카메라임을 멤버들에게 알리고 양준혁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을 구출한 시점에서 양준혁이 달리는 모습을 따로 편집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묵묵히 레이스를 이어가는 의지.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은 자신과 싸우는 그 투지와 용기. 그것을 과연 몰래카메라라 그렇게 웃고 넘어갈 수 있을까?

원래 몰래카메라라는 자체가 그랬다. 소소한 일상 가운데 반전을 주어 웃기는 것이었다. 그저 짓궂은 장난 정도로 여길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남을 속이고 골탕먹이는 내용이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호응케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 끝나고 '이제까지 당신이 겪어 온 모든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에 불과했습니다.'라고 했을 때 마주 웃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에 비하면...

만일 처음 계획했던대로 4km지점에서 멤버들 모두에게 몰래카메라임을 알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김국진을 화냈을까? 그래도 윤형빈은 억울해 했을까? 4km 정도는 감수할 수 있으니까. 14km, 15km, 16km는 너무했다. 그동안 아무 의미없이 고생만 했다는 것 아닌가? 차라리 완주하면 그게 낫겠다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 정도라면 굳이 의미없는 행위였다 해도 감수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마라톤을 10km이상 달리고 난 뒤라는 것은 화가 나고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보면서 웃다가도 문득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습기보다 오히려 불편했던 사람들도 그런 것들을 예민하게 느껴버린 때문이엇을 것이다. 너무 크다.

하기는 너무 크다 보니 통제가 제대로 안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마라톤대회라는 자체가 이경규 개인의 의지나 아이디어에 의해 어떻게 되기에는 너무 크고 변수가 많다. 그것을 이경규가 일일이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몰래카메라를 의식해서 마라톤이라는 환경 자체를 통제하려 들었다가는 실제 마라톤을 목적으로 출전한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었을 것이다. 양준혁 한 사람만도 미안한데 그 많은 사람들더러 '몰래카메라였습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에 대회의 스케일 만큼이나 이경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결국 초반에 기회를 잃고 상황이 더욱 꼬여버린 이유가 되었다.

몰래카메라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의 이윤석과 이정진, 김국진, 윤형빈의 황당해 하는 모습이란. 그리고 꼬일대로 꼬여버린 몰래카메라에 과연 어떻게 몰래카메라임을 양준혁에게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버린다. 아예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알리지 말까? TV로 보라고? 아니면 문자로 하거나. 혹은 앞잡이인 전현무에게 떠넘기거나. 한 바탕의 왁자한 이야기들이. 몰래카메라로 인한, 그것을 소재로 한 한 바탕의 떠들썩함이 시간을 꽉 채워 버린다.

어쨌거나 그렇더라도 재미있기는 재미있더라는 것이다. 우습기도 우스웠다. 그러자는 예능이었으니까. 그러자는 코미디였을 것이다. 몰래카메라였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돌발상황에 놀라고 당황하고 힘들어하고 곤란해 하고. 굳이 누구라 해서가 아니었다.

"설마 아직도 다들 양준혁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심지어 VJ들마저 뜻밖의 돌발상황에 당황해하며 곤란해한다. 역시 같이 멤버들과 마라톤을 뛰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고 어쩔 줄 몰라한다. 그것이 이유니까. 원래는 양준혁의 그런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상황들이 멤버들의 그러한 모습들을 보이고 말았다.

누가 승자인가? 결국은 모두가 패자가 아니겠는가? 아니 패자라기보다는 희생양이다. 자기 탓으로 예정보다 한참을 더 뛰고 말았던 - 심지어 양준혁과의 상황을 만들겠다며 굳이 추월해 달리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괜히 더 달리고 말았던 이경규처럼. 재작년과는 달리 김태원도 자기 뜻이 아닌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6km를 더 뛰고 말았고, 김국진과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에게 양준혁의 몰래카메라임을 알리는 순간 그것은 그들 자신의 몰래카메라가 되고 말았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경규로서는 작년 몰래카메라의 굴욕을 결과적으로 통쾌하게 설욕한 셈이었달까? 다만 그것이 무릎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완주한 양준혁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인내하며 자기와의 싸움 끝에 완주를 하는데 거기에 끼어들어가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 노력과 인내를 단지 웃음의 소재로 소비해 버리고. 한두 사람도 아닌 만 명의 출연자 앞에 그들의 대회를 단지 몰래카메라의 수단으로 - 웃음을 위한 수단으로 그 고통과 노력과 인내와 성취감을 웃음거리로 소비해 버리고 만다면 불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웃고 말았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코미디와 웃음의 본질일 테고. 악하다기보다는 짓궂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얼마든지 웃음의 소재로 쓸 수 있다. 그것이 코미디다.

너무 크게 갔다. 너무 감당할 수 없이 크게 간 탓이었다. 상황이 꼬여버린 것도. 결과적으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온 것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웃을 수 있었다는 것은 웃음에 대한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었고 웃겼으며 그래서 씁쓸함과 한 조각의 생각이 남았다.

바로 이것이 웃음이다. 바로 이것이 예능이다.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들 예능인들 아닐까? 코미디언들일 것이다.

때로 누구나 밝히기 꺼려할 만한 사적인 내용들마저 웃음을 위해 내던지고 굴리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드러내고, 감추고 싶은 비밀을 밝히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마저 꺼내어, 스스로 망신을 당하고 굴욕을 당하고 억울한 지경에까지 내몰리면서도. 20km가 넘는 하프마라톤코스를 달리고서도 단지 그것이 몰래카메라이며 웃음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래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거의 자기 자신을 내던져가며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순수한 희생이다. 타인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한.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기쁨과 성취감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러고 보면 썩 괜찮은 신고식 아니었을까? 예능이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려 한다면. 예능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도록 하려면. 자기란 없다. 오로지 웃음을 뤼한 수단으로써의 자기가 있을 뿐이다. 그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양신 양준혁은 예능인 양준혁으로써 <남자의 자격>에도 훌륭히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양신일 테지만 <남자의 자격>에서는 예능인 양준혁이다.

천의무봉한 예능이라 할 것이다. 오히려 여기저기 기운 자리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이는. 티끌이머 흠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예능이 아닌 이렇게 실수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그것을 스스로 당황스러워하며 은폐를 기도하더라는 것이. 그것이 재미를 주었다. 웃음을 주었다. 웃음의 본모습이다. 지금도 그렇게 웃고 있음에도 말이다.

재미있었다. 유쾌했다. 막판 골인지점에서의 이경규와 김태원, 이윤석의 발연기의 향연이라는 것이. 물을 뿌리고 땀을 흘린 척 힘겹게 결승점을 통과하던 이경규와 서로 부축해가며 쓰려지려는 모습을 보인 김태원, 이윤석과. 다만 양준혁에게 몰래카메라임을 알리는 순간 만큼은 그리 편치는 않더라는 것은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제작진이 편집해 놓은 그의 레이스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완주하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또한 1년 반 전 지금 멤버들이 보였던 모습들이었기에. 그렇더라도 그것도 예능이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그래도 카메라는 계속 돌지 백 걸음 뛰고 또 백 걸음 뛰고..."

멋진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경규의 말처럼 이미 기존의 멤버들은 1년 반 전 모두 지금의 코스를 뛰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거리는 같았다. 역시 마찬가지로 김태원은 당시 병원에서 막 퇴원했던 관계로 중간에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 밖에는 모두가 다 완주에 성공하고 있었다. 이제 비로소 양준혁도 훌륭한 <남자의 자격>의 멤버다. 더불어 예능의 의미와도 함께.

아무튼 다음주가 드디어 무인도 미션이다. 기대하는 미션이다. 아마 2009년에도 한 번 방송을 통해 언급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당시 김태원의 건강상태와 일기상태가 여의치 않아서. 다른 경쟁프로그램에서 한 번 소재로 썼던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또 <남자의 자격> 멤버들에게는 그들만의 개성이 있을 테니까. 의외로 이런 미션에 강한 김태원에 기대하며.

큰 웃음과 작은 감동과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아주 약간의 묵직한 깨달음. 이것이 예능이구나. 이것이 웃음이구나. 그래서 찾아오는 또 다른 감동. 그렇게 그들은 웃긴다. 그리고 우리는 웃는다. 소소하고 깨알같은 장면들이 어느새 <남자의 자격>이구나 느끼게 해 주었던. 바로 <남자의 자격>이었다.

마라톤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지금도 남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덕분에 크게 웃을 수 있었으니까. 이경규마저 어느새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그 힘에 감탄한다. 또 일주일을 기다린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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