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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9.24 09:33

[김윤석의 드라마톡] 판타스틱 7회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류해성을 보다"

함께 울어줄 친구와 기댈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 판타스틱 포스터 ⓒJT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판타스틱. 꿈을 꾸려 했었다. 현실을 잊은 채. 현실을 잊은 척.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오늘만을 즐기면서. 그를 사랑하면서. 그에게 사랑받으면서. 행복한 꿈에 잠시 빠져보고 싶었다. 꿈에서 깨고 나면 찾아오는 것은 죄책감과 모멸감, 그리고 더 큰 후회와 절망. 하지만 사람이 꿈꾸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꿈이라도 꿀 수 있기에 사람은 살 수 있다.

하필 나에게는 없을 내일을 인질로 잡는다. 내가 떠나고 나서도 그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다. 곁에 있어 줄 수도, 무언가를 해 줄수도 없는, 오로지 그만을 위한 시간이다. 과연 당장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책임질수도 없는 일들을 그에게 해도 괜찮은 것인가. 자기가 상관할수도 없는 흔적을 그에게 남겨도 좋은 것인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그의 과거가 그 책임을 더욱 시리게 파고든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는 아직 젊다. 그에게는 아직 더 많은 더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지금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그의 젊음에 자신의 칙칙한 절망을 물들이기 싫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젊음을, 희망을 가지고 싶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모멸감에, 그러면서도 어느새 웃음짓고 마는 밝은 희망에, 현실이 고단할수록 사람은 꿈꾸고 싶어한다. 아직도 누군가는 자신을 좋아해준다. 자신의 매력을 인정해준다.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해준다. 백설(박시연 분)에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절박함이 아니었을까. 많은 이들이 간절히 듣고 싶어하는 한 마디다. 당신이 필요하다.

그래도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이기심이었다. 역시 절박함이었다. 막다른 궁지로 몰렸다. 기자가 류해성(주상욱 분)과 사귀는 것을 알았다. 가장 꺼리는 류해성의 소속사 대표 최진숙(김정난 분)이 사진까지 들고 와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최진숙이 자기가 암에 걸린 사실까지 알아 버렸다. 반은 강요에, 반은 동의해서 이사까지 결심했는데 류해성은 오해해 버렸고, 방계약은 사기였다. 오갈 데 없이 이삿짐과 함께 길에 쪼그려 앉아 있으니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온다. 아무에게라도 사실을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다행히 이소혜(김현주 분)에게는 조미선(김진화 분)이라는 오래고도 진실한 친구가 있었다. 기꺼이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친구가 있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사실을 숨기고 혼자서만 앓고 있었던 것인가.

류해성까지 알아버렸다. 오해로 완전히 틀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류해성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류해성을 포기시키려 최진숙은 이소혜의 병까지 그에게 말해버린다. 이번 회차, 아니 최근 많은 드라마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단 몇 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다. 눈빛도 말투도 하다못해 대꾸하는데 작은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암이든 어쨌든 이소혜는 이소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이소혜와 홍준기의 예상이 틀렸다. 동정도 연민도 안타까움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려는 남자가 그곳이 있었다. 그것을 이소혜가 바로 앞에서 지켜본다. 구원이었을까?

이소혜가 시킨대로 담배를 끊으려 필사적인 류해성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삶이란 얼마나 시시한가를 보여준다. 별 것 아닌데 진지하고, 아무것도 아닌데 심각하고, 대단찮고 하찮은 일들에도 괜히 엄숙해지고, 필사적이라고 진짜 목숨까지 거는가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랑이 너무도 간절한 이소혜의 처지와 정확히 대비된다. 그래서 더 감동이다. 아니 어쩌면 이소혜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사랑하기. 대수롭지 않게 사랑하며 만나기. 내일 당장 헤어진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헤어지고 죽을 것처럼 울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하지만 그런 단 한 사람이다.

일상의 무게다. 평범함의 가치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혹은 내일처럼. 가끔 오늘이 언제인가 잊는다. 그냥 뭉뚱그려 지금 여기다. 굳이 미련을 갖지도 않고 미리 수선을 피우지도 않는다. 시시하고 아무 감동도 없는 무료한 시간들이 어쩌면 그렇게 가치없이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간다. 다만 그럼에도 때로 변화없는 일상은 쉽게 흔들리고는 한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 때로는 너무나 큰 일들로 인해. 그런 때에조차 여전히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어쩌면 이소혜에게 지금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일 게다. 그 강함이 이소혜의 절망을 지탱할 기둥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사랑받고 있다. 암까지도 평범하다. 암과 상관없이 그저 평범한 연인이 된다.

하필 암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위사람들이 더 급해지는 것인지 모른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시간도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시간도 너무나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더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그래서 더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홍준기의 일상인지도 모른다. 체념하는 것. 포기하는 것. 양보하는 것. 물러나는 것. 배려라기보다는 그저 겁이 많은 것이다. 이소혜보다 앞서 겪어야 했던 시간들이 그를 겁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언젠가 이소혜에게 고백하려던 감정들을 오히려 보이지 않게 꽁꽁 뒤에 숨긴다. 관찰자로 남는다. 누구보다 이소혜를 이해하는 조언자로 남는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이소혜를 더 절망케 하는 것은 자신을 동정하는 눈으로 보는 최진숙의 존재다. 차라리 전처럼 어르고 달래며 자신을 꼼짝못하고 옭아맸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지 모른다. 같은 눈물이라도 친구 미선의 눈물은 진심어린 걱정을 담고 있었다. 류해성은 그저 한결같이 자신의 병을 말하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마주선다. 진실을 알고 첫만남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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