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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03 13:10

사랑비 "청춘이 수채화로 채색되는 이유..."

올곧은 솔직한 감정들이 켜켜이 색색의 기억을 만든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청춘이 수채화로 채색되는 이유는 순수가 덧칠되기 때문이다. 물처럼 투명한 순수가 색색의 감정을 가지고 덧칠된다. 수많은 꿈과 열정과 사랑과 의지가 올곧은 마음 그대로 서로 엇갈리며 칠해진다. 한 가지 색 위에 또 한 가지 색이 더해지고 그것이 투명으로 산란된다.

서인하(장근석 분)의 이동욱(김시후 분)에 대한 우정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우정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그 뒤에 덧칠해진 김윤희(윤아 분)에 대한 사랑 또한 진심이었다. 백혜정(손은서 분)의 서인하에 대한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추해지지 않는다. 김창모(서인국 분)이 서인하를 때리던 그 순간처럼 모든 것이 진심이고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김윤희의 서인하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그 순간에도 이동욱은 분노하며 또한 사랑한다.

계산하지 않는다. 따지려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위에 두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밑도 없다. 백혜정도 사랑하고 서인하도 좋아하고 이동욱 또한 좋아한다. 백혜정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고, 서인하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싶고, 이동욱의 사랑 또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지 않을까? 이동욱과의 우정도 지키고 싶고 김윤희와의 사랑도 지키고 싶다. 김윤희와 서인하가 같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백혜정 또한 이동욱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슬픈 것일까?

차라리 증오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화내고 미워하고 탓을 돌리고 그렇게 그렇게 적으로써 쓰러뜨리려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것이 때로 답답하기도 하다. 파란색을 지우고 싶다. 노란색이 보이지 않게 하고 싶다. 그래서 빨간색을 덧칠해봐도 보라색이거나 초록색일 것이다. 아직 서툰 청춘은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감당할 수 없은 격정에 군대를 자원한 서인하나, 그런 서인하를 쫓아 무작정 춘천으로 향한 김윤희처럼. 서른이 넘었다면. 아니 스물중반만 되었더라도 그런 무모한 사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말할만한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전력으로 사랑했다면 후회조차 남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새 사랑마저 바닥나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도 한다. 미안하다 말하지만 미안하지 않다. 이동욱에 미안하고 백혜정에 미안하고 김창모에 미안하고, 하지만 그보다 행복하다.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 서인하에게도 김윤희에게도 서로에게 마찬가지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보가 마지막 순간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한다.

늦은 사랑의 고백이었다. 아주 늦은 사랑에 대한 간절한 고백이었다. 눈물을 흘린다. 원망하고 미안하다 말한다. 하지만 그 원망이나 미안함조차 결국은 함께 하는 그 순간의 행복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김윤희는 서인하를 찾아가고 서인하는 그런 김윤희의 손을 부여잡는다. 그럼에도 이동욱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솔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나이 또래의 순수함이 아닐까? 차라리 한 대 맞고 싶다. 차라리 원망을 듣고 미움을 받고 싶다. 이동욱과 마주한 김윤희처럼.

진부함이란 본능일 것이다. 항상 반복되고 있음에도 매번 감동이기에 진부함이란 가능하다. 한두번은 지겹지만 서너번은 진부하다. 한두번은 반복이지만 서너번은 관습이다. 관습은 본능에 복종한다. <사랑비>에 대해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반응이 상당히 호의적인 것은 그래서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70년대는 아름답던 시대였다. 아직 수줍고 서툴고 그리고 비겁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직구였고 직선이었으며 투명했다.

사실 그래서 장근석이 아쉽다. 그는 매우 현대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다. 김시후는 차라리 그 시대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김시후만 따로 떼어 70년대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장근석은 지나치게 캐릭터가 진하다. 애써 힘을 뺀 투명한 연기가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인다. 그는 마치 수채화속의 누군가와 같다. 서인국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나 모르겠다. 그는 가수오디션이 아니라 연기오디션을 봤어야 했다. 서인국과 김시후의 주위만 70년대가 되어 있다.

백혜정의 고집스런 눈물이 좋다. 상처입고 터덜거리던 이동욱의 허탈한 등이 좋다. 짐짓 화가 나 이불을 펴고 눕는 김창모의 토라짐도 좋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서로가 그리워 어두운 거리에서 마주치는 서인하와 김윤희 두 남녀가 좋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간격이, 몸짓과 몸짓 사이의 여백이, 그리고 감정과 감정 사이의 여운이, 물처럼 그렇게 투명하게 덧칠된다. 70년대를 옮겨놓은 듯 그러나 담채의 영상이 감동과 여운을 더한다.

중독과도 같다. 분명 1순위는 아니다. 원래는 다른 드라마를 본다. 그러면서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다. 늦게라도 보게 된다. 한적한 시간에 한가롭게 혼자서만 보았으면 싶다. 여전히 사랑은 두렵다. 사람의 감정이란 버겁다.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아름다운 이유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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